'파묘' 장재현 감독 "김고은,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하는 무속인에게 도움받아" [인터뷰M]
K-오컬트 장르의 선구주자로 불리는 장재현 감독을 만났다. 장재현 감독은 이번에 '파묘'라는 영화로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의 쟁쟁한 배우들을 거느리고 스크린에 복귀했다.
영화 '검은 사제들'로 544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장재현 감독은 이후 '사바하'로 퇴마에 이어 무속신앙을 들여다보는 영화를 만들어 오컬트 장르를 철학적으로 해석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묘'와 관련된 무속신앙과 동아시아권의 토속신앙을 접목해 대중성까지 가미한 '파묘'를 만들었다.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때부터 무속에 푹 빠져 있었다. 그때 무속인의 아이덴티티로 두 사제의 이야기를 풀었는데 이후 무속 신앙에 더 관심이 생겨 '사바하'도 만들었고 무속신앙의 피날레를 만들고 싶어 아껴둔 모든 아이디어를 이번 영화에 쏟아냈다."며 무속신앙이라는 소재에 굉장히 오랫동안 매료되어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며 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는 어릴 때 무덤 이장의 기억 때문이라며 회상을 했다. "어릴 때 매일 놀던 뒷산의 오래된 무덤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고 무속인이 굿을 하고 땅을 파는데 그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때의 흙냄새도 뭔가 달랐던 거 같고 다 썩은 100년 넘는 관을 끌어올리는데 그 관이 궁금해서 보고 싶으면서도 보고 싶지도 않는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 그런 묘한 감정이 '파묘'의 중요한 시작이라 생각했다."며 요즘은 화장을 하는 바람에 익숙하지 않은 관습인 이장의 경험이 이 영화의 시작이 되었음을 알렸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료조사를 병행한다는 장재현 감독은 "시나리오 쓰다가 막히면 돌아다니면서 자료조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의 골격을 잡는다"라며 2년 반 동안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작업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하드 한 호러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 그는 "그런데 딱 코로나 시기가 왔다. 어렵게 마스크를 쓰고 극장에 갔는데 답답한 게 싫어서 영화의 방향을 바꿔 화끈하고 체험적인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느라 주인공도 바꿨다. 원래는 미국에서 이 사건을 의뢰한 '박지용'이 주인공이었다. 피해자가 주인공인 호러영화를 하려다가 전문가가 이야기를 파헤쳐가는 이야기로 바꾸었다."라며 좀 더 대중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자료조사를 하면서 무속인들과의 친분도 두텁게 쌓았다는 장재현 감독은 "친한 무속인 중에서 30대가 꽤 많고 그중에 잘 나가는 무속인도 많다. 이번 작품을 하며 도움을 받은 분은 60대 후반인데 그분의 며느리가 진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무속인이라더라. 그 며느리는 경력이 5년밖에 안되는데도 제가 봐도 레벨이 다르더라. 그분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굿 장면 촬영 때 뒤에 살짝 나오기도 하시는데 그분의 굿을 보러 다니면서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다."며 무속인과의 에피소드를 밝혀 솔깃하게 했다.
무속인에게 자문을 구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저희를 이용해 홍보를 할 수도 있을 텐데 이 분은 클래스가 남달랐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고 저와 고향이 같아서 어렵게 허락을 받았다. 김고은도 편하게 있다가도 무속인선생님이 오시면 각 잡고 서 있을 정도로 대단한 분"이라는 설명을 했다.
감독은 "풍수사나 장의사는 꼬장꼬장한 꼰대 세대다. 그런데 요즘 무속인들은 유튜브도 하고 트렌디한 MZ들이더라. 그래서 어른 세대가 딸 아들뻘되는 무속인들과 협업하는 걸 그리고 싶었다. 또 이 두 세대가 함께 갓난아기를 구하지 않나. 이 손자 세대가 살아갈 시대라는 결을 만들고 싶었다."며 최민식, 유해진의 조합인 1세대, 김고은, 이도현 조합인 2세대, 영화 속 아기인 3세대가 조화롭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음을 이야기했다.
영화 '파묘'에 대해 공포영화도 아니고 호러영화도 아니라는 장재현 감독은 "이번에 베를린 영화제를 갔더니 외국 기자가 제 영화를 '그로데스크 한 신비로움'이라고 표현하더라.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이번 영화는 동아시아적인 그로데스크 한 신비로움에 몰두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워낙 오컬트 장르의 대가로 알려져 있었기에 장재현 감독의 이번 작품을 기대한 오컬트 마니아들은 약간 실망할 수는 있을 것이다. 장재현 감독은 "그런 호불호는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있었다. 저도 준비하는 단계에서 비주얼적인 고민이 많았다. 어떤 시각에서는 크리처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대사와 이미지는 반드시 주제를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든다. 그렇기에 '험한 것'의 존재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신비롭게 하려 했다."라며 후반부의 연출 포인트를 밝혔다.
장면마다 의도가 분명했다는 그는 "무속 퍼포먼스나 기술을 찍을 때 다른 미디어에서 가끔 멋있게만 다루는 것도 있던데 저는 정확한 목적이 없는 씬은 찍지 않는다. 비주얼보다 목적이 보이게 무속 장면을 만들었다."라며 김고은의 색다른 면모를 보게 했던 굿씬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대살굿의 경우 일하는 사람을 보호해 주는 굿이다. 처음에는 화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신을 받는다. 신이 제대로 들어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칼로 자기 몸을 긋는 것이다. 시뻘건 숯에 손을 넣는 것도 그걸 확인하는 과정이다. 신이 왔으니 안전하다는 걸 표시하는 퍼포먼스였다. 그렇게 신이 왔으니 그다음부터는 일하는 사람을 보호해 주기 위한 퍼포먼스를 한다. 그래서 일꾼들이 땅을 파면 대신 돼지를 베며 살을 쳐 주는 것이다. 또 자기에게 온 신을 대접하기 위해 말피를 먹는 것"이라며 김고은이 작품에서 펼쳤던 굿의 장면장면마다 어떤 의미가 있는 행동이었는지를 해석했다.
장재현 감독은 "이 작품을 말끔하게 3막의 구조로 만들 수 있었지만 작가적 욕심이 있었다. 스토리에도 등장하는 '토끼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말처럼 이 이야기도 허리가 끊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6막의 구조로 만들어졌다. 사실 주변에서는 이런 구조에 대해 반대가 심했지만 작가적인 욕심에서 포기할 수 없었다"며 작품의 구성까지도 치밀하게 계산하고 의도한 바가 있었음을 알렸다.
어쨌거나 언론시사 이후 '파묘'는 엄청난 호평을 받았고 역대급 예매량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실 관람객의 평도 "심장이 졸리다가 벅참. 심장 아픈 영화" "그냥 무섭기만 한 것보다 의도 있는 연출이 기막힘" "존잼. 오컬트인데 리얼 힙함. 김고은 연기 진짜 완벽" 등의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 장 감독은 "무엇보다 발전했다는 말을 듣는 게 목적이다. 이전 작품보다 항상 진보해야 한다는 게 감독으로서의 사명"이라며 가장 듣고 싶고 기분 좋은 평을 밝혔다.
그는 "사실 '검은 사제들'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얇고 캐릭터만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사바하'는 이야기가 헤비해 캐릭터가 손해 봤다는 말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본능적으로 그 둘의 절충안을 찾게 된 거 같다."라며 전작들의 아쉬운 평을 참고해 이야기도 있고 캐릭터도 보이는 작품을 만들려고 칼을 갈았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며 "'파묘'에 대한 칭찬은 고맙고 감사하다. 흥행은 어찌 될지 잘 모르겠는데 극장가가 좀 잘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보통 감독이라면 다른 감독의 작품을 그렇게 응원하지 않는데 요즘에는 다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것 같다. 한국영화는 다 극장에 가서 본다"며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 웃음을 안겼다.
동시 개봉과 내한까지 하며 여심을 훔치고 있는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듄'애 대해 "나도 '듄' 팬이다. 영화하는 사람이 '듄'을 싫어할 수 있겠나. 잘되면 좋겠다"라는 팬심도 드러내는 장재현 감독이었다.
iMBC 김경희 | 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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