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없어도 우울증 약 처방 2분 만에··· ‘약 자판기’로 악용되는 비대면 진료

이혜인 기자 2024. 11. 2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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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없지만, 우울증 약 A를 처방받아보기로 했다. 스마트폰을 켜고 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앱)을 켰다. ‘정신질환’→ ‘우울’ 순으로 보기를 클릭하자 ‘우울 진료비 평균 6300원’이라는 홍보문구와 함께 진료 가능한 의사 리스트가 떴다. 한 가정의학과 의원이 5분 안에 진료가 가능하다고 해 클릭하고, 짧게 증상을 적었다. ‘기운이 없고 마음이 답답.’

5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를 한 의사가 증상을 물었다. “한 달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어요. 예전에 A라는 약 먹어봤는데 괜찮았으니, 처방해주세요”라고 거짓으로 증상을 말했다. 의사는 임신가능성과 약 알레르기 여부를 묻고 바로 처방을 해줬다. 다른 약 복용여부나 자세한 증상 확인은 없었다. 전화부터 처방까지 걸린 시간은 약 1분40초였다.

지난 18일 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봤다. 우울증 증상을 거짓으로 적어도 2분 만에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원하는 약을 먼저 선택(오른쪽 화면)하고 의료진을 고르는 시스템이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 화면 갈무리
‘약 자판기’처럼 쓰이는 비대면 진료 앱

기자가 지난 18일 이용해본 비대면 진료 앱은 ‘만능 약 자판기’ 같았다. 대면으로 병원을 찾을 때 증상에 맞는 병원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받지만, 앱에서는 순서가 반대였다. 특정 약과 원하는 용량을 먼저 선택하도록 돼 있고, 그 약을 처방가능한 의료진이 진료비가 낮은 순으로 정렬돼 나온다. 요새 화제가 된 다이어트약 ‘위고비’는 체질량지수 30 이상인 성인 비만 환자에게 처방이 가능하나, 전화 진료를 선택하고 체질량 지수를 거짓으로 말해도 얼마든지 처방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기자가 이용해본 A의원은 각종 질환 수십 개를 소개에 써놓고 관련 약들을 전부 처방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마치 ‘약 백화점’처럼 홍보하고 있었다.

건강보험 적용을 통해 약을 싸게 제공받기 위한 통로로 비대면 진료가 악용되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인공눈물(히알루론산나트륨 점안제)은 안과질환 급여가 적용돼 처방받으면 일반 상점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인공눈물 싸게 사는 법’이라는 글에는 ‘라섹하고 인공눈물 달고 사는데 닥터나우로 처방받고 실비처리하면 확실히 저렴하다’고 적혀 있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는 이같은 소비자들의 심리를 겨냥해 메인 페이지에 ‘비대면 진료 어플로 인공눈물 처방받는 법!’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에 등록된 의원들은 다양한 약을 손쉽게 처방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 의원(왼쪽)은 수십 개의 질환을 나열하고 관련 약을 처방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플랫폼(오른쪽 사진)은 이용자가 약을 선택부터 하고 의원을 고르는 구조로 돼 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 화면 갈무리
비대면 진료 원칙 안 지켜도 처벌 규정 없어, “초진은 허용 안해야”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2월에 처음 도입됐다.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된 후, 지난해 6월부터 정식 시범사업으로 전환됐다. 시범사업이 도입될 때는 재진 환자에게만 허용하도록 하는 제약 조건이 있었으나, 올해 2월 지침을 한 차례 개정하면서 초진 환자까지 허용 범위가 넓어졌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환자들의 의료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허용 이유였다.

복지부가 지난 4월 의료기관들을 대상으로 내놓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지침’을 보면, 초진 환자에게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동일 의료기관에서 6개월 이내 대면진료 경험이 있는 경우’에만 비대면 진료를 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취약지역 거주자·취약계층 등 의료접근성이 낮은 경우에 대해서만 대면진료 경험이 없어도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도록 규정했지만 현장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향정신성의약품, 마약류, 오·남용 우려 의약품, 사후피임약 등에 대해서는 비대면 진료로 처방이 불가하지만,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다시피해 처방을 막기 어렵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부적절 처방 사례를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적발 시 행정지도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실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2년부터 올해 4월 말까지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해 적발된 건은 고작 2건뿐이었으며 1건은 단순 행정지도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득보다 실이 훨씬 큰 상태라고 지적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의 이동근 사무국장은 “도서산간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한 제도인데 전혀 효능이 발휘되지 않고 있다”며 “오남용이나 부적절한 의약품 사용에 대한 것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의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청구 현황’을 보면, 2023년 6월~2024년 4월 비대면 진료 이용건수 1만2892건 중 6348건(49.2%)가 서울과 경기에 몰려있다. 이 사무국장은 “플랫폼 업체, 후발 주자로 시장에 진입한 의원과 약국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무분별한 처방이 이뤄지고 있는데, 정부는 바이오 산업 진흥을 하겠다는 취지로 비대면 진료제도 도입을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백명재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비대면 진료의 장점이 분명히 있지만, 최소한 초진은 대면으로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내년에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나오는 오남용 사례 등은 면밀하게 보고 있다”며 “시범사업 기간 나온 문제점들을 보완할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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