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닉5가 2,000만 원" 정부와 현대차가 만드는 전기차 가격 대폭락 시나리오

최근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이른바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내연기관차 대비 턱없이 높은 초기 구매 비용과 화재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소비자의 발길을 돌리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이러한 정체 국면을 타개할 산업계와 정부의 승부수가 바로 ‘배터리 구독 서비스(BaaS, Battery as a Service)’다. 차량 가격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 소유권을 차량과 분리해 초기 구매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만약 출고가 약 4,700만 원인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에서 2,000만 원 상당의 배터리 가격을 제외하고 정부 보조금까지 적용한다면, 소비자는 2,000만 원 안팎의 실구매가로 전기차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사실상 '반값 전기차' 시대의 서막이 열리는 셈이나, 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가격 논리를 넘어선 구조적 혁신이 요구된다.

▶ 낡은 규제의 틀을 깨라: 자동차관리법 개정과 제도적 혁신

그동안 배터리 구독제가 공전해온 근본 원인은 낡은 법 체계에 있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은 배터리를 자동차에 종속된 하나의 ‘부품’으로만 간주해, 차량 등록 시 소유권이 차주에게 귀속되도록 규정해 왔다. 이로 인해 차체는 개인이 소유하고 배터리는 기업이 빌려주는 ‘분리 소유’는 법적 불모지에 머물러 있었다. 실제로 기아(Kia)는 일반 소비자 대상의 배터리 구독 실증 사업을 추진하다가 법 개정 지연과 규제의 벽에 부딪혀 사업을 중단하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이는 산업계의 혁신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제2의 타다’식 리스크였다.

정부는 뒤늦게나마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2년 8월 국토교통부 규제개혁위원회의 자동차등록령 개정 의결과 2023년 법제화된 ‘배터리 식별번호 등록제’는 배터리를 독립적인 자산으로 인정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는 배터리를 단순 부품이 아닌 ‘관리 대상 자산’으로 인식해 배터리 교환형 모델을 안착시킨 중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중국의 니오(NIO)는 이미 BaaS를 통해 초기 구매비를 25% 절감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럽 진출을 위해 스테이션 건설 비용을 낮춘 ‘파이어플라이(Firefly)’ 브랜드를 선보였다. 인도의 MG 모터 역시 킬로미터당 요금을 내는 렌탈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글로벌 BaaS 시장은 ‘소유’에서 ‘이용’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 현대차부터 스타트업까지: BaaS 생태계 구축을 위한 산업계의 총력전

법적 토대 위에 비즈니스 모델을 올리려는 산업계의 움직임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스타트업 ‘피트인(Pit-in)’이 참여하는 실증 사업은 단순한 실험을 넘어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피트인은 2025년 7월부터 안양 지역 법인 택시를 대상으로 배터리 교체(BSS) 및 구독 서비스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기아 EV6 택시의 경우, 배터리 소유권을 분리하면 보조금 포함 약 1,86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구매가 가능하다. 특히 기아의 니로 플러스 PBV 모델은 배터리 가격을 최대 3,000만 원까지 제외할 수 있어, 운영 비용에 민감한 B2B 시장에서 총소유비용(TCO) 절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술적 고도화 역시 병행되고 있다. SK온은 한국자동차진단보증협회와 협업하여 ‘배터리 잔존가치 평가 기준’ 마련에 착수했다. 자체 개발한 ‘BaaS AI’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배터리 수명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가치를 표준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는 중고 전기차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배터리를 담보로 한 금융 상품 설계의 핵심 데이터로 활용될 전망이다. 최근 현대차가 선보인 캐스퍼 일렉트릭의 ‘배터리 케어 리스’ 상품 또한 잔존가치를 선반영해 리스료를 낮춘 모델로, BaaS가 일반 소비자 시장으로 연착륙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 장밋빛 전망 뒤의 그림자: 구독료 부담과 금융권 ‘대박’ 논란

그러나 배터리 구독제가 소비자에게 반드시 경제적 혜택만을 제공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날카로운 시각에서 보면 이 제도는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혁신이 아니라, 금융사의 새로운 수익 창출 수단이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매월 지불하는 수십만 원의 구독료는 장기적으로 차량 할부금과 다를 바 없는 채무 부담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5년 이상의 장기 리스 이용 시, 소비자가 지불하는 구독료 총액이 실제 배터리 가액을 훨씬 상회하게 되어 금융사가 약 1,000만 원에 달하는 과도한 이익을 챙기는 ‘금융 함정’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정부 보조금 지급의 적절성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보조금은 본래 소비자의 구매 장벽을 낮추기 위한 공적 자금이나, 배터리 소유권을 가진 금융사가 이를 수령하게 될 경우 이는 사실상 기업에 대한 특혜이자 세금 낭비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보험업계 역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차량 소유주와 배터리 소유주가 분리되면서 사고 시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이 매우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서 발생한 주행 중 배터리 탈락 사고와 같은 사례가 국내에서 발생할 경우, 단순 운행 사고인지 배터리 체결 결함인지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만 피해를 볼 우려가 크다.

▶ 배터리 구독제의 성공 조건: 투명한 정보 공개와 범정부적 컨트롤타워

배터리 구독제가 전기차 시장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시장의 투명성과 안전망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로 분절된 정책 기조를 하나로 묶을 ‘범정부 컨트롤타워’의 확립이다. 부처 간 칸막이 행정으로 인해 보조금 산정 기준과 취득세 부과 방식이 제각각인 상황에서는 시장의 혼선만 가중될 뿐이다.

더불어 배터리 수명 및 안전 데이터(SOH)의 공유 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현재 제조사와 구독 업체가 독점하고 있는 배터리 건강 상태 데이터를 공신력 있는 ‘독립적 잔존가치 평가 기관’이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사고 시 수리비 분쟁을 예방하고 구독료 산정의 합리성을 확보해야 한다. 결국 배터리 구독제의 성패는 소비자가 느끼는 경제적 실익이 리스 비용보다 크다는 것을 증명하고, 사용 후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재활용 산업으로 연결하는 순환 경제의 고리를 완성하는 데 달려 있다. '반값 전기차'라는 구호가 금융사의 배만 불리는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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