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CCTV에서도 돌솥비빔밥이 조선족 특색 음식이라고 자국민 세뇌중이네 ㅋㅋ

https://tv.cctv.com/2024/03/16/VIDEHwq4bs8Wufrq8m5EOtpD240316.shtml

01.png 중국 CCTV에서도 돌솥비빔밥이 조선족 특색 음식이라고 자국민 세뇌중이네 ㅋㅋ

米饭 石锅 溏心蛋

쌀밥, 돌솥, 반숙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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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上微甜口的灵魂辣酱
약간 달달한 맛의 영혼 고추장을 더해
03.png 중국 CCTV에서도 돌솥비빔밥이 조선족 특색 음식이라고 자국민 세뇌중이네 ㅋㅋ
几种元素组合在一起
몇몇 종류의 요소를 같이 조합한
04.png 중국 CCTV에서도 돌솥비빔밥이 조선족 특색 음식이라고 자국민 세뇌중이네 ㅋㅋ
经典的朝鲜族特色美食
경전적인 조선족 특색 미식
05.jpg 중국 CCTV에서도 돌솥비빔밥이 조선족 특색 음식이라고 자국민 세뇌중이네 ㅋㅋ
石锅拌饭的风味 跃上舌尖
돌솥비빔밥의 풍미는 혀끝으로 뛰어오릅니다
한국에서 맛보기 전에는 돌솥비빔밥 먹어본 적도 없었으면서 무슨 조선족 특색 음식;;
심지어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에서도 2014년이 되어서야 한류 편승해서 돈벌이 할라고 내놓은 음식이 돌솥비빔밥인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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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솥비빔밥은 전주에 있던 오래된 비빔밥 전문 식당인 '중앙회관'의 사장 남궁성 씨가 1969년에 개발한 음식

https://month.foodbank.co.kr/section/food.php?mode=view&uid=230&type=oldest&food_num=1&PHPSESSID=85b652ccb8e82826df3a60edccb4dd38

  

전주 중앙회관은 서울이 아닌 전주에서 출발했다. 1959년 전주 고사동에 故구화엽 씨가 개업한 ‘신신식당’이 전주 중앙회관의 모태로, 전주의 평범한 먹거리였던 콩나물 비빔밥을 보다 맛있고 영양가 높게 제공하려 다양한 재료를 첨가한 것이 비빔밥의 시작이었다. 이후 1969년 아들인 남궁성 씨가 2대 수장이 되어 중앙동으로 이전하며 중앙회관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손으로 직접 깎은 곱돌을 사용한 것도 이 즈음이다. 그 전에는 뚝배기에 비빔밥을 담아 팔았는데 금방 식어버리는 단점이 있어 고민하던 중 전북 장수 곱돌로 교체한 것. 전주 중앙회관 비빔밥만의 조리법도 기존의 비빔밥과는 차별화된 맛을 내는데 한 몫 했다. 이곳 비빔밥은 특별 제조한 ‘맛나니’ 양념장으로 비벼져 나오는 것이 특징. 붉게 비벼진 밥 위로 올린 고기와 채소를 손님들이 다시 한 번 비벼 먹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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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솥밥은 즉석에서 소량으로 밥을 지을 수 있고, 곱돌 특성상 온도가 고르게 유지되므로 식사를 마칠 때까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별도의 그릇에 밥을 퍼낸 뒤 솥에 물을 부으면 눌은밥과 숭늉을 더불어 즐길 수도 있다. 조선 중기의 문인 최립崔岦(1539~1612)은 『간이집簡易集』에서 돌솥으로 “차도 끓여 먹고 약도 겸해서 달여 먹고, 떫은 쇠나 비린 구리 그런 솥에 비할쏜가”라는 기록을 남겼다. 또한 18세기 이후에 쓰여진 『박해통고 博海通攷』·『규합총서閨閤叢書』·『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등에도 밥과 죽은 돌솥을 사용하는 것이 제일 좋고, 무쇠솥·구리솥 순이라고 적고 있다. 이것으로 볼 때 그 당시 곱돌솥은 무쇠솥이나 구리솥에 비해 상품上品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귀한 용기에 지은 돌솥밥이 일반 음식판매점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1970년대 무렵인 것으로 보인다. 전라북도 전주의 경우에는 중앙회관이라고 하는 비빔밥 전문식당에서 돌솥비빔밥을 처음 개발하였다. 이 식당 주인은 다른 비빔밥 전문점과의 차별화 전략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고객들이 비빔밥을 따뜻하게 오래 먹을 수 있도록 그릇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1969년에 드디어 전국 최초로 곱돌그릇 개발에 성공하였고, 아예 ‘전주 곱돌비빔밥’을 상표등록 하였다. 이 비빔밥은 일명 돌솥비빔밥으로 불렸다. 기존 비빔밥이 채소와 고기류를 넣어 비빈 것이라면 전주 중앙회관의 비빔밥은 여기에 은행, 잣, 밤, 대추 같은 영양식 재료를 추가하였다. 이는 기존 비빔밥을 한층 고급화한 것으로, 1970년대 초반에는 전주 지역을 넘어 서울 지역에까지 선풍을 일으키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돌솥밥 혹은 돌솥비빔밥은 사치스러운 음식으로 인식된 듯하다. 당시 대한요식업중앙회는 혼분식 정책을 자율 이행하기 위한 실천 사항으로 즉석 돌솥밥 판매를 일체 폐지하였고, 이를 3회 이상 어길 시에는 당국에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돌솥밥이 사치스러운 음식이라는 낙인을 걷어내게 된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이 무렵 우리나라 쌀 자급률은 90%를 웃돌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 드디어 해방되었다. 그리하여 1980년대 종로 뒷골목에 있던 종각식당에서는 점심시간에 150여 명의 손님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식당이 대중의 인기를 끈 것은 단순한 돌솥밥이 아닌 대추·밤·잣과 함께 육류·해산물·채소류 등 재료를 넣어 영양분을 듬뿍 담았기 때문이었다.

 

https://www.kculture.or.kr/brd/board/640/L/menu/735?brdType=R&bbIdx=12069

1960년대 중반 전주우체국(현재 경원동우체국)의 비빔밥 골목은 비빔밥을 판매하는 식당들끼리 서로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각 식당들은 고유의 레시피로 손님을 끌어 모으고 있었고, 중앙회관 또한 자신만의 고유한 비빔밥 개발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식당 주인들이 조리법에 관심이 두고 있었던 때에 남궁성 사장은 비빔밥을 오랫동안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고, 결국 장수에서만 생산된다는 곱돌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남궁성 사장은 1969년 드디어 곱돌그릇 개발에 성공하였다. 중앙회관은 이 곱돌그릇에 비빔밥을 담아 판매하면서 ‘전주곱돌비빔밥’이라는 이름으로 상표등록까지 마쳤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중앙회관 비빔밥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고, 고객들이 줄서서 사먹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또한 사람들은 이 비빔밥을 ‘전주곱돌비빕밥’이 아닌, ‘돌솥비빔밥’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 마침 ‘팔도민속전’을 기획하던 신세계백화점의 눈에 띄는 바람에 중앙회관 비빔밥은 서울에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처럼, 당시 중앙회관 돌솥비빔밥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던가 보다. 현지조사에 의하면, 돌솥비빔밥이 나오면서부터 손님들이 유독 뜨거운 것을 더 찾는 바람에 다른 식당에서도 유기그릇을 뜨거운 물에 담근 뒤 비빔밥을 담아 내보내는 등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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