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발굴한 한국독립영화 추천
지난 9월 3일,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라인업이 발표되었다. 아시아 및 세계적인 거장의 신작부터, 개봉을 앞둔 한국영화 화제작,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신작 시리즈와 영화들이 대거 초청되어 영화팬들의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 같은 화제작, 기대작뿐 아니라 한국영화의 미래를 책임질 한국독립영화 역시 꾸준히 발굴하고 있다. 뉴 커런츠와 한국영화의 오늘-비전이 대표적인 섹션인데, 여기서 신진 감독들의 독립영화 데뷔작 혹은 초기작들이 상영된다. 부산에서 첫 공개되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일반 극장 개봉에서도 대단한 성과를 거둔 작품이 많은데, 대표적인 몇몇 작품들을 꼽아본다.
벌새 - 2018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넷팩상, 관객상)
2019년 <기생충>이 한국영화 사상 첫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타면서 떠들썩했던 그때, 지금 소개할 이 작품 역시 칸만큼 화려하진 않아도, 전 세계 영화제에 초청되며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갔다. 그 작품이 바로 <벌새>다. 2019년의 한국영화 최대 발견은 <기생충>과 <벌새>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 같은 결과는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예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2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에 초청된 <벌새>는 상영 첫 회부터 예사롭지 않은 반응을 일으켰다. 영화가 끝난 후 여기저기서 박수소리와 함께 많은 이들의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렸다고 한다.
<벌새>는 1994년을 배경으로 14살 은희의 성장담을 그린 작품이다. 제목처럼 누군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 작은 날개 짓이었지만, 은희에게는 자신의 인생 전부 같았던 선택과 사건들을 공감 있게 담아낸다. 여기에 가정 내의 성별 차별과 폭력 등 사회적인 문제도 예리하게 돌아본다. 은희 역을 맡았던 박지후의 신예답지 않은 연기력, 그런 은희에게 큰 힘이 되었던 학원 선생 영지를 연기한 김새벽의 존재감이 영화의 감동과 메시지를 책임진다. 특히 시대의 비극과 한 개인사를 연결하며 많은 슬픔을 건네면서도, 희망의 한 조각을 되짚어보는 마지막은 긴 여운으로 다가왔다.
한공주-2013년 1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바탕으로 만든 <한공주>는 2013년 1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을 통해 세계 최초로 공개되었다. 아무 잘못도 없이 이리저리 전학 가는 주인공 공주. 보는 관객은 알고 있지만 차마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그는 수영을 배우며 조금씩 일상을 회복해간다. 그럼에도 낯선 이가 두렵고, 새로운 시작이 어렵다. 하지만 영화는 공주가 친구들을 만나 마음의 문을 열고, 한동안 나와는 별개라고 생각했던 행복을 찾는 모습을 통해 작은 희망을 건네기도 한다.
<한공주>는 사건의 피해자인 주인공을 사려 깊게 따라가면서 이야기의 밀도를 높인다. 어떻게 피해자가 살아가는지,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절박한 모습에 우리는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을지 계속해서 되묻는다. 아쉽게도 영화는 관객의 바람과는 별개로 공주의 희망을 처절하게 부순다(실화가 바탕이기에 더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하지만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함성 소리가 지금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세상의 공주들에게 작은 희망과 응원으로 다가가길 영화는 힘주어 말한다. 이 영화의 진심을 단 하나도 흘림 없이 꾹꾹 담은 천우희의 인생 연기는 개봉 10년이 넘는 지금 봐도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족구왕-2013년 1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독립영화는 지루하고 어렵다? 이 같은 편견을 신나는 족구 한 판으로 깨부순 영화가 있었으니, 청춘 낭만 에너지 가득한 영화 <족구왕>이다. 2013년 1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에 상영된 <족구왕>은 복학생 만섭이 동료들과 교내 족구대회에 출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소재나 캐릭터의 특징 등이 여러모로 B급 취향 가득한 서사로 러닝타임 내내 즐거움을 준다. 주인공 만섭 역을 맡은 안재홍을 비롯해 황승언, 박호산 등이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단순히 웃기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학업과 취업의 압박으로 청춘의 낭만이 사라지는 시대를 꼬집는 풍자가 웃음 속에서도 뼈를 때린다. 후반부 족구 결승 장면도 압권이다. <소림축구>의 족구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영화 곳곳에 놓여 있는 만화적인 설정과 코미디가 보는 내내 기분 좋게 만든다. 엔딩에 나오는 페퍼톤스의 ‘청춘’, 신의 선곡 수준이다. 여러모로 기존 한국독립영화과 다른 결을 보여주며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동안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파수꾼-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뉴 커런츠 상)
질풍노도 시기 세 청춘의 리얼 스토리, 그래서 마음까지 리얼로 아픈 영화, <파수꾼>이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파수꾼>은 언제나 함께했던 세 친구의 우정이 여러 가지 이유로 균열되는 과정을 섬세하고도 냉정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실제 고등학생을 캐스팅한 듯한 주연배우들의 생활 연기, 오버하지 않으며 현실감 있게 이들을 담아내는 연출력 등 2010년을 대표하는 독립영화, 아니 한국영화의 최고의 발견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부산에서도 <파수꾼>은 큰 인기를 끌었다. 상영 당시 “또 고등학생 이야기야?”하며 별다른 기대 없이 영화를 봤다가 너무나도 훌륭한 완성도와 가슴 저린 엔딩으로 영화제 기간 동안 엄청난 입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 결과 부산국제영화제의 실질적인 최고 작품상인 '뉴 커런츠' 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이제훈, 박정민은 한국영화의 대표 배우로 거듭났으며, 윤성현 감독은 이후 <사냥의 시간>과 쿠팡플레이 시리즈 <뉴토피아>를 연출하며 색다른 이야기를 계속 보여주고 있다.
바람-2009년 1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바람>은 2019년 1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폼 나게 살고 싶었던 주인공 짱구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겪는 여러 일들을 웃음과 감동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주연을 맡았던 정우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부산 로컬라이징의 특색과 함께 학창 시절의 추억을 계속해서 소환한다. 특히 “서른마흔다섯이다” “그라믄 안돼” 등 아직도 인터넷 밈으로 유명한 사투리와 명대사는 <바람>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짱구 주변의 개성 넘치는 친구와 선배 등 캐릭터 맛집의 재미도 함께 자아낸다.
하지만 <바람>이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은 이유는 후반부의 감동이 크다. 주인공 짱구가 점점 야위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영화는 학창 시절의 소동극에서 가족드라마로 전환된다. 마지막 떠나간 아버지를 바라보며 울부짖는 짱구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터트리고, 배우 정우의 엄청난 연기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여담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 때 정우와 가족들이 이 작품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정우의 경험이 들어간 자전적인 요소가 있다). <바람>은 영화의 재미와 감동뿐 아니라 보석 같은 배우들도 많이 발굴했다. 짱구 역을 맡은 정우를 비롯해 손호준, 유재명 등은 이 작품을 계기로 <응답하라> 시리즈에 캐스팅되면서 본격적인 이름을 알렸다. 여기에 <기생충> <오징어 게임>의 음악을 담당한 뮤지션 정재일의 천재적인 솜씨도 <바람>에서 들을 수 있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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