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 향연 [전이서의 건축시선]

sketch no.43 @yseochun

사람들에게 집을 그려보라고 하면,

사각박스를 그리고, 가끔 삼각형의 지붕을 그린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그리던 박공지붕을 지금의 한국사람들은 그릴지는 모르겠다. 사각형은 아파트 또는 빌딩, 삼각형의 지붕을 가지는 것은 관념적으로‘집’이라고 그린다. 한국사회에서만큼은 그런 듯하다) 그리고 ‘창’과 ‘문’을 그린다.

왜 사람들이 집을 상징하는 외곽선을 그리고 잊지 않고 그리는 것이 ‘창’일까?
유추해 보면, ‘창’은 내부와 외부의 ‘소통’으로 상상하기 때문인 듯하다. ‘문‘도 있지 않아?라고 묻는다면, 문은 자신이 들어가고 나가고 하는 자신의 움직임과 연상되는 요소로 상상의 외부와의 소통과는 다른 차원이다. ‘문’이 자신이 움직이는 활동과 관계된다면 ‘창’은 ‘자신이 보는 시선‘과 관계된다. 다시 말해 ‘보는 것, 보이는 것’을 지배한다. ‘창‘은 외부에서 집이 보이는 모습도, 내부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을 다르게 만든다.

sketch no.69 @yseochun

사람들의 집에 대한 인식차원에서 ‘건물 외곽선, 창, 문’ 이 세 가지가 집을 그리는 최단선인 듯하다. 이 세 가지 요소만으로도 우리의 시각에 들어오는 집은 다른 인상을 준다. 이러한 이유로 서구의 고전적인 건축물들은 입면을 다르게 보이게 하기 위해 창주변에 나름의 여러 요소들을 넣어 왔다. 이것은 당시 구조적 구축의 한계상 일정한 크기로 일률적으로 창을 낼 수밖에 없어서 장식으로 다름을 표현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고전건축에서 파사드는 중요한 건축디자인요소가 되었고, 건물입면을 좌우한다.

sketch no.63@yseochun

근대건축으로 넘어오면서 창을 장식으로서의 다름을 추구하기보다 창자체가 주는 다른 경험에 집중하게 되었다. 물론 이 바탕에서 건축구축술이 향상되어 가로로 긴 창을 낼 수 있고. 세로로 긴창, 그리고 벽전체가 유리면인 커튼월이 등장이 가능했다. (여기서 커튼월은 커튼이 아닙니다. ^^ 커튼처럼 벽전체를 유리로 덮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커튼월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쉽게 우리말로 풀이하면 ’ 전면 통창‘ 정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창‘은 가장 기본적으로 당연히 기능에서 출발했다. 건물 내부에 빛을 들이고, 환기를 위한 장치가 필요해서 인간은 벽체로 만드는 집을 지으면서 창을 뚫기 시작했다.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안전을 위해 세워진 벽에 창을 냄으로서 인간은 그것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향연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창가자리요”

우리는 흔히 창가자리를 선호한다. 음식점을 가던, 카페를 가던, 도서관을 가던 본능적으로 창가를 먼저 찾곤 한다. 예약의 경우 제일 먼저 차는 자리가 창가자리이고, 호텔의 경우 그 창가가 어떻게 바깥세상과 면해있느냐에 따라 가격 훨씬 높아진다. 이처럼 창은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는 원초적인 건축장치이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 근대이전 ‘창’이 주는 빛은 신의 손길과 같았을 것이다. 구조적 한계 속에 만들어진 창의 통해 들어오는 빛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성함을 지녔다. 이러한 창이 주는 빛은 지금보다 훨씬 인간의 감성을 건드렸을 것이고, 의존적이며 종교적이었을 것이다.

1808년 파리콩고드 광장에 2000개의 전지 탄소아크가로등(*험프리 데이비 Humphry Davy탄소에 전류를 흘려 빛을 발생) 출현은 그야말로 사람들에게 번개를 만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신에 의존하던 낮의 빛에서 밤의 세계가 열린 인간의 힘을 본 시작이었다.

더 나아가 1851년 영국 만국박람회에 등장한 거대한 ‘유리의 성’ 수정궁(*철과 유리로 된 거대한 모듈식 건물)에서 근대(모더니즘) 건축가들은 564m 벽전체를 유리로 만들어 실내 가득히 빛을 들였다. 이는 건축 역사의 한 단계 진보를 의미했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계기였다. 특히나 창에 있어서는 ‘신의 시선‘에서 ‘주체의 시선‘으로 옮겨오는 계기였다.

‘가로로 긴 수평창'

지금은 가로로 긴 창이 뭐? 그거 그냥 디자인을 그렇게 하면 되는 것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근대에 들어와 건축의 구축법이 진보하면서 가능해진 창이다. 서양 근대건축의 상징과도 같은 창이다. 이것은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로 시작되었다. 내부에서 외부의 풍경을 자신이 걷는 속도에 따라 파노라마 뷰로 조망이 가능한 창이다. 르 꼬르뷔지에는 가로로 긴 수평창을 통해 영화의 장면이 흐르듯 세상을 볼 수 있는 건축장치로 고안하였다.

sketch no.30 @yseochun

특별한 조망을 위해 고안된 가로로 긴 수평창은 그 위치에 따라 공간의 질을 다르게 만든다. 가로로 긴 수평창이 벽 높은데 계획되면 (* 보통 ‘고측창‘이라고 부른다) 층고가 높아 보이는 효과가 있으며, 땅에 묻히는 공간들에 적용되면 지하에 자연채광을 들일 수 있는 창이다.

‘바닥에 깔리는 가로로 긴 수평창’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설계할 때 매우 선호하는 창으로 그 효과가 상당히 드라마틱하다. 가로로 긴 수평창이 하부 바닥에 계획되면 바닥면에 채광이 깊게 들이운다. 이는 공간이 넓어 보이는 효과뿐 아니라 바닥면의 질감이 빛에 비쳐 이제까지 인식하지 못하던 빛의 질감이 드러나게 된다. 바닥면이 외부공간으로 연장될 때 상부에는 벽으로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면서 외부의 자연조경을 내부로 끌어들일 수 있다. 건물이 조밀하게 붙어있는 도심 한복판에서는 외부의 지저분한 풍경을 차단할 수도 있으며, 사람의 시선의 높이에 그림을 많이 걸어야 하는 갤러리로 쓰일 공간에는 작품에 간섭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자연채광을 들이는 창이 된다.

‘세로로 긴 창’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세로로 긴 창은 바닥과 천장에 빛이 드리워 세로의 폭에 따라 폭이 좁으면 숭고한 빛의 연출이 가능하고 폭이 넓으면 방의 크기와 볼륨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창이다. 수직으로 서는 인간과 같은 방향으로 저항감이 없는 창이기도 하다. 세로로 긴 창이 연속되어 배치되면 고전적인 맛이 느껴진다.

sketch no.32 @yseochun

‘하늘로 열린 천창‘

벽에 창을 내기 어려운 곳, 특히나 경사로 된 벽이 모이는 높은 곳에 하늘로 열린 천창을 계획하면 이제껏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그림자의 향연을 만날 수 있다. 지금도 천창을 내는 일은 구조적으로 기술적으로 많은 고려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하늘로 열린 천창의 시초는 아주 오래되었다. 2000년 전 판테온 Pantheon 신전의 오클로스 Oculus (*판테온 돔의 지름이 45m, 오쿨루스의 지름이 9 m 된다. 놀랍지 않은가?)에서 시작되었다.

높은 층고의 천창아래 서면 자신의 존재를 가늠하게 된다. 그리고 하늘과 온전히 대화를 하는 기분이 든다. 비가 오면 그 물방울이 맺히는 형상에, 투투두득 빗방울 소리에 자연과 합일되는 순간을 맞는다. 세상과 접신하는 느낌이 온다.

sketch no.36 @yseochun

이렇듯 창은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는 요소이다. 현대로 오면서 기술의 발달로 창을 디자인 의도대로 뚫고, 확장하고, 연속하면서 창을 통한 공간경험은 깊고도 넓어졌다.

오늘 내가 늘 보던 창가에 한번 서서, 아님 창대에 걸터앉아 이 창은 무슨 의미를 지녔는가 느껴보면 어떨까?


#지식토스트


글. 전이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이자 교육자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건축시선을 통해 더 나은 삶과 도시를 만드는 건축적 감각을 전하고자 글을 쓰고 있다.

*브런치스토리http://brunch.co.kr/@eunchun
*instagram : chun_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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