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상반기 맛있는 편의점 도시락 6

안녕, 한국 편의점 음식에 관심이 많은 객원 필자 김정년이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편의점에 모여 앉아 ‘간편식 도시락’을 먹는 분들을 만난다. 집 주변에 주택단지 재개발이 한창이라, 새벽 근무를 마친 분들이 인근 상가에서 아침식사를 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건설 현장 주변에 24시간 함바집 문이 활짝 열려있음에도, 많은 건설업계 종사자분들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즐겨 먹는다. 가끔 그들의 밥상머리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집밥만 못하지만, 그래도 형편없는 급식보다 낫다.” 맛평가가 생각보다 후하다.

고물가 시대를 맞아 식당 대신 편의점을 찾는 분들이 크게 늘었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여섯 달 동안 약 20여 종의 도시락을 직접 시식했고, 그중에서 리뷰할 가치가 있던 도시락 6종을 엄선했다. 요즘 편의점 도시락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GS25는 ‘엄마가 해준 집밥’, CU는 ‘극한의 가성비’, 세븐일레븐은 ‘밥맛 향상과 반찬 밸런스’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 점 참고해서 본문 읽어주시길.


1. 가성비 대전

각 편의점을 대표하는 인기 시리즈 중에서 추렸다. 밥과 반찬의 균형이 그럭저럭 잘 맞는 5,000원대 도시락. 2024년 편의점 도시락은 ‘집밥’이 대세다. 5첩 내외 반찬가짓수에서 한국 가정식을 떠올리게 하는 반찬조합이 눈에 띈다. 기사식당이나 가정집 냉장고에서 낼 법한 부반찬이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가운데, 밥솥에서 방금 꺼낸 듯한 쌀밥식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GS25
혜자로운) 통통쏘야불고기

축구에 빗대고 싶다. 뚜껑을 따면, 음식이 1-2-3 포메이션으로 담겨 있다. 칼집을 낸 프랑크 소시지와 간장 양념을 친 볶음 고기는 도시락이라는 운동장에서 미드필더 역할을 맡으며 집밥 분위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부반찬 쓰리톱은 어묵, 볶음김치, 마카로니 샐러드. 3인방의 위력은 전자레인지에서 가열 조리를 했을 때 한결 더 나아진다. 구색을 참 잘 맞춘 도시락이다. ‘혜자로운 집밥’ 시리즈는 찰기를 머금은 밥, 촉촉한 계란프라이, 한정식집을 연상케 하는 풍성한 반찬 종류가 특징이다. 경쟁사 도시락 상품 기획에도 큰 영향을 미친 시리즈다. 2010년대 출시작 ‘김혜자 도시락’의 맛과 비교하면 밥양을 늘리고 도시락 속 핵심 반찬의 품질을 높였다. 편의점 도시락 입문자에게 추천한다. 가격은 5,000원.

CU
백종원백반한판

*사진은 리뉴얼된 ‘NEW 백반한판’입니다

기사식당 한상차림이 떠오르는 도시락이다. 주반찬은 고기. 제육 불고기 2종, 치킨너겟, 해물완자, 옛날 소시지. 나물이 부반찬으로 들어가긴 하지만, 고기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고기반찬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확실한 메리트를 주는 도시락이다. 급식의 기운이 강한 편이다. 형편없다는 뜻이 아니다. 도시락에서 대량의 식재료를 한꺼번에 조리할 때 나타나는 특유의 풍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표 반찬인 제육볶음의 경우, 고기가 입안에서 곧장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이는 양념된 분쇄육을 커다란 냄비에서 한꺼번에 볶을 때 나는 식감이다. 양념맛은 유쾌했으나 식감은 그렇지 못했다.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구성이 훌륭한 제품이라 고기반찬 디테일이 조금 아쉬웠다. 백종원 대표와 실무자 선생님들이 조금 더 분발해 주시길 바란다. CU 간편식을 대표하는 백종원 시리즈라 개선이 기대된다. 가격은 4,700원.

세븐일레븐
한끼연구소) 밥먹자얘들아

2024년 3월, 세븐일레븐은 자사 도시락 브랜드를 ‘한끼연구소’라는 이름으로 통합했다. 패키지 디자인을 개선하고 제품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였다. 소비자가 몸소 느낄 수 있는 변화는 ‘밥맛 개선’이다. 한끼연구소 시리즈는 공통적으로 밥의 찰기가 적당하고 식감은 부드러운 편인데, 이는 쌀품종인 ‘삼광미’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배우 김수미의 집밥 요리 레시피를 옮겨 담은 도시락으로 알려져있다. 튀김, 볶음, 나물, 구이 등 반찬이 고르게 분배된 스테디셀러 도시락. 편의점 도시락을 자주 먹는 분은 잘 아시리라. 가열 조리하면 맛이 뒤떨어지는 반찬이 섞이는 경우가 있다. 이 도시락은 구색을 갖추려 억지로 끼워 맞췄다는 인상이 드는 음식이 없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다. 이 도시락을 ‘한끼연구소’ 시리즈를 대표작으로 소개하는 이유다. 가격은 4,900원.


2. 압도대전

2024년은 밥이나 반찬의 양을 크게 늘리거나 특별한 반찬을 밀어붙이는 도시락이 부쩍 늘었다. 이 트렌드는 CU가 이끌고 있다. 2024년 3월, 개강시즌에 맞춰 출시된 ‘압도적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필자는 CU에서 도시락 용기 절반 이상을 볶음밥으로 채우고 그 위에 커다란 훈제 닭다리를 얹은 도시락을 먹었었는데, 양도 맛도 참 극단적이라고 생각했다. 압도는 차이를 만든다. 도시락을 손에 쥐는 순간 단박에 알아챌 차이. 도시락 무게 혹은 반찬가짓수 혹은 자극적인 반찬. 여러분의 중추신경에 각인될 압도적 디테일이 담긴 도시락은 6~8,000원대에서 만날 수 있다. 도전하시겠습니까?

GS25
한상가득도시락(중식편)

밥과 반찬의 구색은 뛰어나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계란 볶음밥. 유산슬과 춘권, 칠리새우와 크림새우, 닭강정과 튀김만두는 중식에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킨다. 아쉽게도 여기까지였다. 냉동식품을 조리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밥과 반찬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반복해서 시식하니 튀김별 편차가 컸다. 튀김이 많아서 에어프라이어 재가열 조리가 최선이었다. 볶음밥은 구제불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출시되는 이유는 중식 도시락의 한계를 조금씩 극복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중식 마니아로서 편의점 업계에서 조금 더 연구개발에 힘써주셨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중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으니까. 가격은 6,500원.

세븐일레븐
한끼연구소)11찬 도시락

편의점 도시락의 수명은 짧다. 신제품이 나오면 평균 6개월 정도 유통된다. 이 도시락은 세븐일레븐의 장수 도시락이다. 무려 9년 동안 살아 남아 20여 번의 리뉴얼을 거쳤다. 계절감을 고려한 제철 반찬 사용으로 용기를 풍성하게 채워 나간다. 떡갈비, 두부구이, 야채 계란말이, 제육볶음 등 호불호를 적게 타는 주반찬과 시금치나물 등의 부반찬이 들어간다. 생선까스나 감자야채볶음처럼 전자레인지에 돌렸을 때 맛과 식감이 크게 변하는 반찬이 섞인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여러모로 반찬을 든든하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 챙겨 먹자. 가격은 5,900원.


3. 캐주얼 도시락

고기를 많이 덜어낸 도시락을 찾았다. 포케나 비빔밥처럼 캐주얼한 도시락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중 마음에 드는 도시락을 2종 소개하…ㄹ…수 없게 됐다. gs25의 혜자로운)콩나물밥정식이 6월 초에 단종됐기 때문이다. 참기름과 양념간장을 넣고 비비면, 단맛이 매력적인 콩나물비빔밥이 나왔고 담백한 두부부침을 얹어 맛있게 먹었는데 도대체 왜! 맛과 구성 모두 뛰어났던 제품이라 몹시 아쉬웠다. 가벼운 한 끼, 속이 편안한 식사가 필요한 당신을 위한 도시락은 다음과 같다.

세븐일레븐
맛장우 곱빼기 비빔밥

편의점 간편식의 인기 레시피 ‘전주식 비빔밥’을 도시락에 담았다. 패키지 커버 모델에 이장우가 등장하면, 양이 많은 도시락이라고 짐작하면 된다. 고기를 적게 쓰고 버섯이나 야채가 많이 들어가 있어 담백한 식사를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필자는 이번 리뷰를 준비하며 지인 5명을 대상으로 도시락 비교 시식에 나섰다. 밥을 따로 모아 그릇에 담아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공통적으로 볶음밥에 불만이 많고 흑미밥의 선호도가 높은 가운데, 백미를 쓴 도시락밥은 만장일치로 세븐일레븐이 1등을 차지했다. 햇반 같은 ‘무균포장 즉석밥’과 수준이 비슷하다는 의견이었고, 더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편의점 3사 중 가장 맛있다는 평가를 얻었던 밥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버무려 먹어보시길. 가격은 5,500원.


2024년 봄에 준비한 도시락 리뷰였는데, 올 여름 단종되는 바람에 소개할 수 없게 된 도시락이 있다. 대체 편의점 도시락은 왜 이렇게 단종이 빠를까? 지난 편의점 김밥 리뷰 작업에 큰 도움을 준 GS25 매니저 ‘L’군에게 속사정을 물었다.

“편의점 MD는 기본적으로 트렌드 변화가 빠르다. 회전율이 낮은 도시락은 금세 단종된다.”는 답을 얻었다. 흐음…완성도가 높지만 대중의 선호도는 낮은 도시락에게는 불리한 구조였군. 편의점 도시락은 자본주의적인 판단이 빠르게 이뤄지는 편이군.

만약 여러분이 앞서 소개한 도시락을 못만나더라도 너무 섭섭해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내일은 내일의 도시락이 있을테니까. 소비자로서 바라는 건 딱 하나. 맛있는 도시락을 만나는 일. “그 돈이면 차라리~~” 타령이 안나오는 그런 도시락을 먹는 일. 멋진 한끼를 선사할 내일의 도시락을 기다리며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