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다 싸다" 990원 착한소주…주류시장 가격 지형 흔들까[현장+]

선양소주 조웅래 회장이 6일 서울 가락동 다농마트에서 ‘착한소주 990’ 출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해당 제품은 360mL, 알코올 도수 16도의 제품으로 국내산 쌀·보리 증류원액을 사용했다. /사진=이유리 기자

“정말 990원이 맞나요. 생수보다 저렴한 것 같은데요.”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몰 다농마트 주류 코너. 흰색 라벨에 선명하게 적힌 숫자 ‘990’이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충청권 주류기업 선양소주가 출시한 ‘착한소주 990’은 화려한 모델 대신 가격 경쟁력을 전면에 내세운 제품이다. 한 병당 990원으로 전국 평균 소주 판매가(1500원대)보다 약 30% 저렴하다.

매대를 찾은 시민들은 생소한 브랜드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제품을 카트에 담았다. 현장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식당 소주 가격이 6000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990원은 상당히 파격적인 수준”이라며 “품질만 괜찮다면 대량 구매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회장이 직접 모델로…마케팅 거품 뺐다

이번 ‘990원 소주’가 가능했던 가장 큰 배경은 고정비와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한 선양소주의 특수한 비용 구조에 있다. 연간 수천억원의 광고비를 집행하는 대형 주류사와 달리 선양소주는 조웅래 회장이 직접 광고 모델로 나섰다. 홍보 역시 대규모 물량 공세 대신 개인 SNS를 활용한 방식에 집중하며 마케팅 비용을 사실상 최소 수준으로 억제하고 있다.

조 회장은 이날 현장에서 “모델료와 제작비, 매체비를 아껴 그 혜택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기업의 보답”이라며 “심리적 저항선인 1000원 아래 가격으로 고물가에 지친 서민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제조 원가와 세금 구조를 고려하면 990원은 제조사 입장에서 ‘팔수록 손해’에 가까운 가격이다. 이러한 부담에도 전국 유통을 단행한 것은 골목 상권 활성화를 위한 상생 모델 구축에 방점을 둔 결정이다.

실제 이번 제품은 편의점, 대형 할인점, 식자재 마트를 제외하고 전국 약 1만 개 동네 슈퍼마켓에 한정 공급된다. 소비자가 저렴한 소주를 구매하기 위해 골목 상권을 방문하도록 유도해 인근 소매점의 추가 소비를 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정책적 지원과 한국수퍼체인유통사업협동조합(KVC)의 유통 마진 최소화 노력이 더해졌다.

대형 제조사가 넘기 어려운 ‘세금·유통 구조’

선양소주의 ‘착한소주 990’은 한정 판매 제품으로 병당 990원, 20병 한 박스 기준 1만9800원이다. /사진=이유리 기자

시장의 시선은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등 주류 대기업의 대응 여부로 쏠린다. 지역 상생 효과와 소비자 반응이 본격적으로 확인될 경우, 대형 주류사들도 가격 전략을 재점검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 대다수는 990원 가격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국산 증류주에 기준판매비율 제도가 도입됐지만 소주 가격에는 여전히 주세·교육세·부가가치세 등 세금이 약 60% 수준으로 반영된다. 실효 세 부담이 높은 구조에서 제조 이익을 사실상 포기하는 가격 정책을 전 제품군에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복잡한 주류 유통 구조도 걸림돌이다. 주류 유통은 제조사→도매상→소매점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각 단계마다 마진이 붙는다. 특히 대형 주류사는 다양한 유통 채널을 동시에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채널에만 맞춘 가격 정책을 적용하기 어렵다. 채널이 많을수록 가격 통일성과 마진 조율 부담이 커져서다.

유통 채널을 슈퍼마켓으로 한정하더라도 가격 인하 여력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주류는 제조사에서 소비자까지 도매상을 거치는 구조인 데다 원재료비와 인건비, 물류비, 각종 세금이 모두 반영된다”며 “유통 단계를 일부 단순화하더라도 990원 수준의 가격을 맞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가 소주 모델이 일반화되기보다는 지역 주류사가 전국 유통망을 확보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상징적 전략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서울 가락동 다농마트 주류 매대에 다양한 소주 제품이 진열돼 있다./사진=이유리 기자

주류 시장 ‘가성비 경쟁’으로 재편될까

그럼에도 이번 실험은 주류 시장에 가격 경쟁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선양소주가 향후 가성비 라인업 확대를 예고한 만큼 시장의 무게추가 브랜드 중심에서 실질적인 가격 경쟁력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고물가 기조 속에서 대형 제조사 중심의 기존 가격 구조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형사들이 전면적인 가격 인하에 나서지 않더라도 유통 마진을 축소한 전용 상품이나 상생형 라인업을 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고물가 상황에서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소비 흐름을 고려하면 기존 브랜드 중심 경쟁에서 실질적인 가성비 중심 경쟁으로 전환되는 신호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 가락동 다농마트 매대에 선양소주의 ‘착한소주 990’이 진열된 가운데 한 소비자가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이유리 기자

이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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