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청소노동자 전원 고용 승계' 거절… 투쟁 장기화 조짐

박재령 기자 2023. 5. 2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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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임금 삭감되더라도 전원 고용 승계"
EBS '협의 불가' 방침… "용역업체 소관, EBS 권한밖"
언론개혁시민연대 "전형적인 악덕 원청업체의 행태"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대규모 적자로 '비상경영'을 선언한 EBS의 청소노동자 중 3인이 계약 연장 불가 통보를 받자 노동자들이 임금이 삭감되더라도 전원 고용 승계를 요구했지만 EBS가 “인력 고용은 EBS 권한 밖”이라며 사실상 거절의 뜻을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측은 EBS가 정부의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어겼다며 언론단체들과 함께 규탄 기자회견을 예고했고 언론개혁시민연대는 EBS를 겨냥해 “모든 책임을 하청에 떠넘기는 전형적인 악덕 원청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 EBS 일산 사옥 ⓒEBS

미디어오늘 취재를 종합하면, EBS는 지난 23일 임금이 삭감되더라도 전원 고용 승계를 요구한 공공운수노조 측 제안에 '협의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현재 과업지시서 상 예산으로는 전원 고용 시 최저시급에 못 미칠 수 있는 문제가 있어 노조가 EBS에 과업지시서 내용 변경을 요구했지만 EBS가 사실상 협상 불가 의사를 밝힌 것이다. EBS 측은 26일 미디어오늘에 “용역업체의 인력 고용은 EBS 권한 밖의 사항으로 업체 소관임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EBS 측은 이어 “근로자 모두가 시간을 줄여 함께 근무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으니 근무 인원을 다시 조정해달라는 공공운수노조 요청을 신규 용역업체에 전달했다. 하지만 이후 용역업체가 근로자들을 면담한 결과 근로자 중 일부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이에 민길숙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사무국장은 26일 통화에서 “어제 전체 조합원 논의를 했고, 지금은 대승적 차원에서 전원 고용 승계에 맞춰 인건비 조정안을 유지하자고 모두가 동의했다”고 밝혔다.

EBS가 협상에 나서지 않는 것을 놓고 일각에선 EBS가 타 용역업체로 이번 문제가 옮겨갈까 우려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EBS의 한 인사는 26일 통화에서 “EBS가 관리하고 있는 용역업체만 760개 정도 되고 1년 예산도 1000억 원에 달한다”며 “전체적 비용 절감에 나선 EBS가 섣불리 타협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측은 홍정민,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과 소통하며 공영방송인 EBS가 정부의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호 지침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을 승계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공공기관의 경우 지침 준수 여부에 따라 경영평가 페널티가 이뤄질 수도 있다.

공공운수노조 경기지부는 지난 16일 성명에서 “EBS는 경영 적자 등 어려움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주장했다.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을 정확히 알지 못해 나온 망언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김태봉 전국언론노동조합 EBS부지부장은 26일 통화에서 “청소 노동자들은 최저 시급을 받으며 우리 회사에서 다른 이들과 같이 근무하던 노동자”라며 “(청소 용역은)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에도 지정된 업종 중 하나”라고 말했다.

▲ EBS 로비에서 선전전을 벌이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경기지부 EBS 분회. 사진=언론개혁시민연대

EBS를 향한 비판은 노조를 넘어 언론단체로까지 번졌다. 언론노조 EBS지부와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본부가 연달아 비판 성명을 낸 데 이어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 19일 <내가 쓸고 닦은 EBS에서 동료들과 일하게 하라!>라는 성명에서 “EBS는 신규 입찰을 하면서 업무와 비용을 효율화했을 뿐 인력 운영은 용역업체 소관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EBS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이다. 모든 책임을 하청에 떠넘기는 전형적인 악덕 원청의 행태”라며 “EBS는 청소노동자 해고 사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청소 용역비를 삭감해 인력을 감축하고, 근무 시간을 축소해 노동자를 쥐어짜도록 한 건 다름 아닌 EBS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련 기사 : "공영방송 사회적 책무 강조하면서 뒤에선 힘없는 노동자 내쳐"]

이번 청소 노동자 감원 과정에서 일었던 부당노동행위 의혹에 대해서도 노조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계약 연장 불가 통보를 받은 3인은 각각 분회장, 부분회장, 사무장으로 선출된 이들로 의도적으로 노조 간부를 노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처음 명단을 특정한 현장 관리소장과 용역업체, EBS는 모두 책임을 부인했고 공공운수노조는 용역업체를 상대로 법률원을 통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관련 기사 : EBS 미화노동자 감원 과정 부당노동행위 의혹 불거져]

[관련 기사 : EBS 미화노동자 감원 3명 모두 노조 간부… 노조 “명백한 부당노동행위”]

▲ EBS분회 김민숙 부분회장은 지난 19일 EBS를 출발해 국회의사당을 거쳐 서울역에 도착하는 행진 투쟁을 벌였다. 사진=공공운수노조 경기지부 EBS분회.

원활하지 않은 노사 협상에 투쟁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일 계약 연장 불가 통보를 받은 3인은 EBS에 출근하며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선전전을 이어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경기지부 EBS분회 김민숙 부분회장은 지난 19일 EBS를 출발해 국회의사당을 거쳐 서울역에 도착하는 행진 투쟁을 벌였다. 공공운수노조와 언론노조는 언론시민단체와 함께 오는 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EBS 사옥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EBS는 지난 2월 공청회에서 비용 절감을 위한 계약파견직 감원 정책을 내놨고 구성원들은 이에 “3년 내 계약파견직 100% 감원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25일 EBS가 낸 입찰공고를 보면, 3명 감축 외에도 청소 오후조 근무시간이 8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어 오전조 업무량이 늘었고 노동자들 임금도 저하됐다. 김태봉 부지부장은 지난달 사내 게시한 글에서 “미화 노동자는 '사람을 줄이려면 일할 시간을 늘리던가, 일할 시간을 줄이려면 사람을 늘려야 하는 게 아닙니까'라고 호소한다”며 “현재 미화 노동자가 한 달에 받는 임금 실수령은 230만 원대다. 위 절감안이 실행되면 이마저도 약 60만 원 이상 줄어든다. 말 그대로 일은 더하고 돈은 적게 받으라는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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