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마케터로 살아간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소비자의 눈높이는 높아졌고, 경쟁해야 할 상대는 이제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사람들의 시간을 차지하는 모든 것이다. 콘텐츠는 넘쳐나고, 길이도 다르고, 플랫폼도 다르고, 타깃도 다르다.
“이걸 내가 굳이 봐야 하나?” 고민하는 이들을 ‘기꺼이’ 보게 만들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 개봉작이든 OTT 공개작이든 배우들이 직접 뛰는 프로모션은 여전히 중요하다. 관객이나 시청자 입장에서는, 공개 한 달 전쯤부터 배우가 여기저기 등장하는 것이 마치 예고편처럼 느껴진다. 그 기대감은 은근히 쌓여 있고, 실제로도 배우들이 움직여야만 뭔가 찍히고, 퍼지고, 클릭된다.
예전에는 배우들이 방송 3사의 주요 예능 프로그램에 쏠리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청률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자연스럽게 유튜브로 무대가 옮겨갔다. 구독자 수, 조회 수, 댓글 반응이 직관적인 KPI(핵심성과지표)로 작동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 배우가 그 채널에 나왔어”만으로도 점심시간 대화가 되곤 했다.
이 공식조차도 이제는 예전만큼 먹히지 않는다. 유튜브 채널은 많아졌고, 숫자는 늘어났지만 ‘화제성’은 예측 불가능해졌다.
마케터 입장에서는 점점 더 숫자보다 감이 중요해지고 있다. 무대만 바뀐 게 아니라, 작동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이제 중요한 건 단순한 노출이 아니라, 출연 자체가 화제가 되느냐다.
최근 배우 손석구는 디즈니+ 시리즈 ‘나인퍼즐’ 홍보를 위해, 본인의 팬으로 알려진 유튜버 짐미조의 채널에 출연했다. 영향력 있는 채널은 분명하지만 큰 예산이나 구독자 수가 중요한 기준은 아니었다.
“손석구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예상 밖의 등장 하나로 커뮤니티는 들썩였고, 실제로 프로모션 효과도 컸다. 물론 일부 팬들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진정성 있는 태도로 상황을 정면 돌파했다.
요즘은 의외성 하나가 두 자릿수 시청률보다 더 강력한 카드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짤’과 ‘화제성’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소비한다. 낯선 프로그램에 톱배우가 출연하면 캡처되고, 밈이 되고, 커뮤니티를 순환한다.
‘TV쇼 진품명품’, ‘가요무대’ 같은 소위 기성세대의 무대에 젊은 배우가 나왔을 때 유독 반응이 뜨거운 것도 그런 이유다. 출연 자체가 웃기고, 그 맥락이 낯설수록 이야기거리는 늘어나고, 이야기 속에 진심은 빛이 난다.
공포 영화 배우가 공포 전문 채널에, 멜로 배우가 연애 예능에 나오는 건 너무 뻔하다. 지금 필요한 건 결이 충돌하는 순간이다.
흔히 말하는 ‘서프라이즈 효과’나 ‘인지 부조화 유도’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어라? 왜 저기서 저걸 하지?'라는 의문을 유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궁금증 하나가 ‘굳이’를 ‘기꺼이’로 바꿔주는 열쇠가 된다.
'어디에 나왔는가'보다 '왜 거기에 나왔는가'가 훨씬 중요해졌다. 그 의외성이 밈이 되고, 화제가 되고, 결국은 관객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말은 쉽지만, 수십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을 두고 이런 파격을 시도하려면 솔직히… 마케터 입장에서는 벌써 머리가 지끈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