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세를 거스르지 않은 성벽, 세월이 숙성시킨 풍경
남한산성 성벽 길을 걷다보면 보석 같은 연주봉옹성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을 듯하다.
유난히 무더운 여름을 뒤로하고 어느덧 9월의 문턱이다. 최근의 여름 날씨는 무덥고 습한 날씨가 여러 날 지속되는 일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런 날씨와 일상에 지칠 때면 도심에서 멀지않은 남한산성에 종종 올라간다.
얼마 전 토요일 아침 일찍 등산화를 챙겨 신고 남한산성을 향했다. 경기도 광주 남한산에 위치한 남한산성의 옛 길, 광주가 고향인 나는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가끔 남한산성에 있는 약수터에 왔던 기억이 난다. 구불구불 울창한 숲속 길을 따라 차를 달리다 보면 일상에서의 힘든 기억들이 금세 사라진다. 남한산성에 오르는 길은 여러 방향이 있지만 나는 광주 방향 쪽으로 진입해서 동문을 지나 남한산성 로터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북문 쪽 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이른 아침에도 무더운 날씨였다. 숲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연주봉옹성 입구에 도착했다. 높은 성벽 밑에 아주 은밀한 작은 암문이 나온다. 좁은 암문을 지나니 탁 트인 또 다른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산등성이의 굴곡을 살려서 축조한 성벽,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성벽 길을 따라 연주봉옹성 정상에 올랐다. 망루와 봉화대 역할을 했던 옹성이다.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에는 아차산, 하남시도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온다. 실로 아름다운 옹성이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속해 있다.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 산성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남한산성은 우리나라의 대표 산성으로 신라 주장성(672)의 옛 터에 기초해 산성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현재까지 보수해 오면서 약 1,000년 넘게 고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는 80~100년생 소나무들의 울창한 군락지를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소나무숲에 잠시 앉아 하늘을 보면 가슴속 깊이 맑은 산소가 가득 차는 느낌이다. 조금 전까지 무덥던 날씨가 무색할 만큼 시원하다.
남한산성은 우리나라에서 시설이 잘 정비된 곳으로 험한 지형을 활용해 성곽과 방어 시설을 축조한 7~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전 단계를 잘 볼 수 있는 좋은 사료로 인정받아 2014년 6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됐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이곳으로 피신한 인조는 1637년 세자와 함께 삼전도에서 치욕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남한산성은 성 밖에 덧대어 축조한 이중의 성벽인 5개의 옹성이 있다. 입체적인 성벽으로 다른 성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국내 유일의 탁월한 설계라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은 이 옹성을 그린 그림이다.
나는 그동안 남한산성을 소재로 작품을 많이 그렸다. 남한산성에는 5개의 옹성이 있는데 그중 하나인 연주봉옹성으로 성벽을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뛰어난 시설물이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형미가 뛰어난 건축물이다.
연주봉옹성을 뒤로하고 걷다 보니 소나무 숲길을 지나 초록의 이끼가 잔득 덮인 작은 서문이 나온다. 남문, 동문, 북문 중 서문의 규모가 제일 작다. 인조가 청나라 진영으로 갈 때 이 서문으로 나와서 항복했다고 한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수어장대가 보인다. 수어장대 입구 문 앞에는 늙은 향나무가 지지대에 기대어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듯 누워 있다. 아름다운 조형미가 돋보이는 수어장대를 잠시 둘러보고 숲속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아픈 역사가 깃든 남한산성은 수많은 이야기와 아름다운 풍경들을 품고 있다.
한국화가 박진순
인천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인천대학교와 경기대학교에서 교수 활동.
1994 대한민국미술대전특선(국립현대미술관).
2006 서울미술대상전특선(서울시립미술관).
2006 겸재진경공모대전특선(세종문화회관).
한국미술협회. 서울미술협회. 동방예술연구회 회원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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