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비수도권 청년의 서울 이직 경로 분석: 남자는 경호, 여자는 병원으로 간다
지난 10여 년간 비수도권에서 서울로 이직한 20~34세 청년들이 많이 택한 업종 중 하나가 ‘인력공급업’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력공급업이란 흔히 ‘아웃소싱’ ‘파견’이라 불리는 업종이다. 비수도권 청년 남성은 서울의 ‘경비 및 경호 서비스업’, 비수도권 청년 여성은 서울의 ‘병의원’으로 다수 이직하는 패턴도 발견됐다.
〈시사IN〉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고용보험 가입 경력직 노동력의 월별 이동 현황’을 입수했다. 이미 공개된 자료에는 빠져 있던 성별과 연령이 포함된 데이터로, 첫 직장이 아닌 ‘이직’의 패턴을 통해 한국 청년 남녀가 어느 지역 어떤 업종으로 이동하는지 알 수 있는 자료다. 도시 데이터 분석가 신수현씨의 도움을 받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지난 10여 년간 청년층 이직은 증가 추세이며 특히 여성의 이직 비중이 높아졌다. 20~34세의 연간 이직자 수는 원래 남성이 더 많았으나 2022년을 기점으로 여성이 더 많아졌다(〈그림 1〉, 1~12월 합산, 월별 중복 포함).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데에는 여성들의 고용보험 가입이 크게 증가한 영향도 있지만, 다른 주목할 지점도 있다. 바로 여성 청년층의 지역 내외 일자리 이동 패턴이다. 남성의 경우 ‘같은 시군구 내’에서 이동하거나 ‘같은 광역시·도 내’에서 이동하기보다 ‘다른 광역시·도’로 이동하는 경향이 비교적 강하다. 여성은 같은 광역시·도 내에서 이동하는 이들이 여전히 가장 많지만, 지난 10여 년 사이에 다른 광역시·도로 이동하는 이들이 가파르게 늘었다(〈그림 2〉 참조).
다른 시·도로 이직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경‘ 인구, 그러니까 서울로 일터를 옮기는 청년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그림 3〉을 보면, 비수도권에서 일하다가 서울로 이직한 20~34세는 2015년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으며(2019~2020년 제외), 2023년에는 여성의 연간 상경 이직자 수가 남성을 따라잡았다. 여성은 비수도권에서 경기·인천으로 가기보다 곧바로 서울로 직행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최근의 수도권 인구집중이 ‘2015년 이후’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가속화되었다는 인구이동 데이터 분석과 일맥상통하는 결과다(〈시사IN〉 제843호 ‘청년의 서울 집중 핵심은 20대 여성’ 기사 참조).
상경 이직이 완전히 대세가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자리를 비수도권에서 서울로 옮긴 노동자 수에서 서울에서 비수도권으로 이직한 노동자의 수를 뺀, 서울로 ‘순이동’한 노동자 수 추이를 나타낸 게 〈그림 4〉다. 통념과는 달리 2011년부터 2021년까지는, 비수도권에서 서울로 이직한 숫자보다 서울에서 비수도권으로 이직한 숫자가 꾸준히 더 많았다. 이게 달라졌다. 2022년과 2023년, 서울의 일자리는 비수도권에서 온 20~34세를 빨아들였다. 역전을 추동한 것은 역시 20~34세 여성이다.
이것은 첫 직장을 서울에서 점점 더 많이 얻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르바이트든 본격적인 직장 생활이든 간에, 비수도권에서 고용보험 가입 이력이 있었던 청년들이 서울에서 일자리를 다시 얻게 된 경우를 의미한다(계약기간 1년 이상 기준). 이들이 왜 서울로 향했는지 알려면 어떤 일자리로 이직했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2011년부터 2023년까지 비수도권에서 서울로 가장 많이 이직한 ‘예전 (재직) 업종-현재 업종’을 추린 결과가 〈그림 5〉와 〈그림 6〉이다.
비수도권 청년, ‘파견직’ 일자리가 빨아들였다
남성은 상위 20가지 이직 패턴 중 12가지, 여성은 11가지 패턴이 일자리를 옮길 때 ‘인력공급업’으로 이직한 경우다. 인력공급업이란 흔히 ‘아웃소싱’ ‘파견’이라 불리는 업종이다. 청년들이 서울로 이직해서 얻는 일자리 대다수가 비정규 파견직인 것이다. 인력공급업체에 속한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은 파견업체와 맺지만 고객사에 보내져서 그곳의 업무 지시를 받는다. 한국에서는 파견으로 최장 2년까지만 일할 수 있다. 2023년 하반기 기준 파견 노동자가 가장 많이 종사하는 업무는 ‘사무 지원(27.6%)’이다. 파견 허용 업무를 하는 이들의 평균임금은 월 232만원 수준이다(고용노동부, 2023년 하반기 근로자 파견사업 현황).
인력공급업 외에 주요 이직 업종으로는 남녀 공히 ‘음식점업’이 꼽히는 가운데, 성별에 따른 차이도 발견된다. 20~34세 남성은 상대적으로 ‘경비 및 경호 서비스업’으로의 이직 비중이 높다. 취업시장 내 청년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주주야야비비’로 불리는 3교대 근무를 하면 월 280만원(세전) 정도를 받을 수 있고, 하루 8시간씩 3일간 경비원 신임 교육을 듣고 이수증을 발급받으면 취업할 수 있어서 진입이 비교적 쉬운 편”이다. 보안·경비 아르바이트를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편돌이(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낮잡아 이르는 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2016년 한 해에는 비수도권에서 ‘선박 건조업’에 종사하던 20~34세 남성 703명이 서울의 ‘인력공급업’으로, 296명이 서울의 ‘경비 및 경호 서비스업’으로, 287명이 ‘기타 음식점업’으로 이직했다. 해양플랜트로 촉발된 조선업 위기가 절정에 달한 시기, 비수도권을 떠나 서울에 온 청년들이 어떤 일자리로 흩어졌는지 보여준다.
반면 2011년에서 2023년까지 20~34세 여성이 비수도권에서 서울로 가장 많이 이직한 업종은 ‘병원→병원(9903명)’이다. ‘의원→의원(6135명)’뿐 아니라 비수도권 ‘병원’에서 서울의 ‘의원’으로 이직(4209명)하기도 한다. 병원이나 의원은 비수도권에서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 중에서 질이 나쁜 일자리라고 하기 어려운데, 이런 업종에 종사하는 청년 여성마저도 비수도권을 등지고 서울로 향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의료 취약지에서 의료 인력을 구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일부 의료기관 경영난이 악화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향후 병의원 여성 인력의 서울 유출이 더 가속화될 여지도 있다.
조선소 청년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난 10여 년간 조선소를 비롯한 전통적인 제조업 일자리는 줄고, IT 산업 일자리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 같은 산업의 변화는 이직 데이터에서도 나타난다. 2011년에서 2023년까지 소프트웨어 개발업에 종사하며 비수도권에서 서울로 이직한 20~34세 남성은 5565명, 여성은 2442명으로 ‘청년 상경 이직’ 일자리의 상당수를 IT 개발 업종이 차지한다.
조선업 위기 이후 이 산업에 종사하던 청년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지역, 어떤 업종으로 갔을까? 조선업 고용 위기가 정점에 달한 2016년 한 해 동안 울산 동구에서 조선업에 종사하던 34세 이하 남성들이 타 지역으로 이직한 결과를 살펴보면, 경남 거제(1158명)·울산 남구(185명)·울산 울주군(157명)의 같은 ‘조선업’ 일자리로 옮겨간 이들이 많다. 업종을 바꾼 경우 현대자동차가 있는 울산 북구의 ‘자동차용 엔진 제조업(288명)’ ‘자동차 차체용 부품 제조업(94명)’ ‘자동차 제조업(62명)’ 등 인근 지역 제조업체로 이동했다. 같은 해 서울 강남구의 ‘경비 및 경호 서비스업(48명)’으로 이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멀지 않은 곳에서 이전과 비슷한 업종인 조선업이나 제조업 일자리를 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보다 한 해 앞선 2015년 조선업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거제의 34세 이하 남성 조선업 종사자들 역시 울산 동구(861명), 전남 영암(319명), 경남 통영(197명) 등 인근 조선소로 다수 이동했다.
그런데 이렇게 청년들이 각기 흩어진 뒤, 최근 몇 년 사이 조선업 위기가 다소 완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업 노동시장에는 청년층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울산 동구에서 조선업에 종사하는 고용보험 피보험자의 세대별 구성을 보면, 2015년에는 30~34세가 8880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2024년에는 이 숫자가 2725명으로 내려앉았다. 그 대신에 40~44세가 6251명으로 꼭짓점을 형성하게 되었다(〈그림 7〉 참조).
이병락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울산 동구에서는 지금 20~30대 내국인 노동자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올해 7월 말 기준 동구에 거주지가 등록된 외국인이 약 9000명이라고 한다”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예전에 그나마 조선소에 20대 후반~30대 초반 노동자가 있었던 건, 현대중공업이 자체 교육원을 운영하면서 ‘여기서 교육받은 뒤 하청업체에서 2년 넘게 일하면 정규직에 지원할 수 있다’고 희망 고문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젊은 노동자들도 안다. 현대중공업 생산직 정규직은 잘 채용하지도 않고 뽑더라도 10명, 20명에 불과하다는 걸. 이주노동자까지 합하면 하청 노동자가 2만5000명~2만8000명인데 그중에 10명 뽑는다면 누가 오겠나.”
10월4일 HD현대중공업 이상균 대표이사에게 ‘정규직 채용 확대 요청서’를 전달한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울산동구)은 “청년들이 지역에 원하는 일자리가 부족해서 서울로 이직하는데, 정작 불안정성이 크고 처우가 좋지 않은 일자리로 옮겨갔음을 고용보험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이런 자료를 정책 수립에 적극 활용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위계 구조에 개입하고, 지역에서도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에 취업하며 재능을 쏟으면 그에 맞는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중앙정부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좀 더 자세한 분석은 10월11일 발행되는 〈시사IN〉 제892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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