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국씨엠과 아주스틸, 그 뒷이야기…"질적성장·자금 수혈 윈윈"

동국씨엠 1285억 원에 아주스틸 인수 화제
빅딜 공 세운 오너 4세 장선익, 첫 경영 데뷔작
'DK컬러비전 2030' 100만톤 체제 조기 달성
단순 생산 능력 확대 아닌 '양보다 질' 의지
2대 주주 가네마쯔 자금회수설…"SI로 가능성 낮아"
동국씨엠 CI.

동국씨엠이 업계 4위인 아주스틸을 인수한다고 발표해 화제다. 인수가는 1285억 원으로 아주스틸의 지분 56.6%이다. 동국씨엠은 앞서 최근 투자로 지난 2021년 S1CCL(300억 원)에 이어 올해 FCL(150억 원)을 투자해 컬러강판 업계를 놀라게 한 바 있는데, 이번 인수 투자는 그 4~8배가 넘는 규모다. DK컬러비전 2030의 일환으로 2030년까지 컬러강판 사업을 현재 85만 톤, 1조 4000억 원 규모에서 2030년까지 100만 톤, 2조 원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도 앞당겼다.

아주스틸 인수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동국씨엠은 인수 당시 "그간 컬러강판 내수 시장 성장 둔화 속 지속 성장을 위한 전략적 대안이 필요한 시점 동종 업계와의 결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 실현 기반을 마련할 전망이다"면서 "직원 100% 고용 승계를 통해 사업 안정성을 유치한 채 부산·김천·구미공장 등 각 거점 역할을 명확히 해 운영 역량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고 밝혔다.

동국씨엠이 밝힌 '거점 생산'과 '직원100% 고용 승계'를 놓고 보면 어느 정도 실마리가 풀린다.

해피딜(Happy Deal)

이번 딜에서 주목할 포인트는 장선익 동국제강 전무의 활약이다. 이번 매각건에 장선익 전무는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인수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한 달가량 소요됐다. 아주스틸의 기업 가치를 확인하고 매각 체결까지의 '빅딜'을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동국씨엠과 아주스틸 임직원들은 당사자들과 프로젝트 리더들을 제외하고는 공시 당일날 매각 사실을 알았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

장선익 동국제강 구매실장(전무)./ 동국홀딩스

장 전무는 동국제강그룹 장세주 회장의 장남이자 '오너 4세'다. 지난해 지주사 전환이 마무리된 후부터 장 전무가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동국인베스트먼트를 통해 4세 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주를 이뤘는데, 이번 아주스틸 인수의 막후에서 큰 역할을 하며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이 표출됐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동국씨엠이 매출 1조 원에 가까웠던 알짜 회사를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아주스틸 이학연 대표가 신념과 강단으로 키워온 회사를 비교적 적은 경영권 프리미엄만으로 보내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아주스틸이 매각을 추진했던 이유는 '재무부담을 떠안을 수 없어서'라는 것이 분명하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아주스틸의 부채비율은 380%에 육박하면서 '관리 부실'로 인한 매각 추진이 불가피했다.

그런데 동국씨엠은 인수후보군 중에서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양수인이 대주주 측에 시가를 초과해 지불한 웃돈(할증액)인 경영 프리미엄도 높이 쳐주지 않았다. 동국씨엠이 인수를 결정한 6일 아주스틸 종가는 6240원을 기록했는데, 구주 가격은 6989원으로 종가 대비 약 12% 높게 책정됐다. 통상 최대주주의 지분거래시 신주는 시세보다 낮게, 구주는 웃돈(경영권 프리미엄)을 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양사의 계약은 경영권 프리미엄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이학연 대표는 아주스틸 인수에 앞서 두가지 매각 조건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었다. 직원 100% 고용 승계와 일괄 매각이다. 회사 매각에 있어 단순 인수합병(M&A)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사업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마지막 경영 방침의 일환으로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윤희성 한국수출입은행장이 경북 구미시에 위치한 아주스틸을 방문, 컬러강판 생산 현장을 둘러보면서 이학연 아주스틸 대표의 설명을 듣고 있다./아주스틸

아주스틸 내부 관계자는 "회사만을 위해 희생했던 분으로 직원들 중 가장 먼저 출근하셨던 것은 물론, 상장 후에도 배당금을 한동안 받지 않으셨고, 연봉도 최근 인상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매각이 되더라도 아주스틸이 흩어지지 않고 더욱 경쟁력 있는 회사로 성장해야한다며 주변에 묻고 스스로 되물으며 고민하셨다"며 "직원들 역시 유통회사부터 출발해 근속연수가 긴 분들도 많기 때문에 고용 100% 조건을 만족해줄 수 있는 곳을 찾으셨다"고 말했다.

아주스틸에 딸린 4개의 손자회사와 35개가 넘는 사업목적에 더해 직원들까지 모두 책임진다는 것은 양수인에는 부담스러운 조건이다. 그러나 장 전무는 모두 수용했다. 인수자로서 '사겠다'가 아닌 '품겠다'는 의사로 이 대표를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특히 컬러강판 1위 기업으로서 아주스틸을 처지와 방향을 이해하고 진정성 있게 접촉했던 부분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수자였다.

이번 딜은 '해피 딜'로 동국씨엠와 아주스틸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다.

두 기업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사업 계획에 따라 이번 딜을 성사시켰다. 재무 부담에도 컬러강판, 알루미늄, 태양광 등에서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공격적 투자를 추진해온 아주스틸은 동국씨엠에 있는 그대로로 넘겨져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진짜 이유는 '양보다 질'

동국씨엠 ‘Metal Trend 2024·2025' 현장 사진./동국씨엠

동국씨엠이 이번 인수로 얻을 효과는 많지만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컬러강판 사업에서의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번 아주스틸 인수를 예정대로 마무리하면 동국씨엠은 중장기 전략 'DK컬러비전 2030'을 계획했던 것보다 빨리 달성하게 된다.

동국씨엠의 컬러강판 시장 점유율은 29.7%에서 34.4%까지 늘어나고, KG스틸과 양강 체제였던 시장에서 주도적 지위를 굳히게 된다. 생산능력만 보면 기존 85만톤 체제에서 아주스틸 연간 생산량 30만 톤을 더하면 공언했던 2030년 100만톤 체제를 훌쩍 넘는다.

아주스틸은 독보적인 영상·생활가전 부문과 폴란드 컬러강판 생산시설, 멕시코 오븐공장과 트레일러 컨테이너 몰딩·압출 공장, 방화문 및 엘리베이터 도어 등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이번 인수건으로 자동 취득한 아주스틸 폴란드 공장은 동국씨엠의 첫 해외 컬러강판 생산공장이 생기는 셈이다. 아주스틸 폴란드 공장은 지난 4월 가공부문에서 첫 매출이 발생했고, 오는 9월 컬러강판 라인의 시운전을 앞두고 있다.

동국씨엠이 채무 부담을 지면서 아주스틸을 인수한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아주스틸이 컬러강판 전체 업계에서 차지하는 점유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지난 상반기 기준 아주스틸의 컬러강판 판매 실적은 약 5만5천톤 정도였다. 이 기간 동국씨엠이 35만톤 기록한 것과는 6배 이상 차이가 난다.

지난 6월 동국씨엠이 약 6만톤 수준을 판매한 것과 비교하면 아주스틸의 반년 실적은 동국씨엠의 한 달 실적에도 못 미친다. 또 아주스틸(4.7%)보다 작은 생산 규모인 디케이동신(5.7%)과 디씨엠(4.5%)과도 전체 점유비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정도로 컬러강판 시장에서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동국씨엠이 좀 더 큰 그림을 보고 아주스틸에 베팅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 큰 그림으로 꼽히는 게 바로 CGCL(Combined Galvanzing and Color Coating Line)라인과 앱스틸의 시장 지배력 확대다.

아주스틸 김천공장 전경./ 아주스틸

아주스틸의 CGCL 설비는 CGL과 CCL을 결합한 설비로 열처리와 도장, 착색이 한번에 가능한 생산라인이다. 이 설비는 이종설비의 결합으로 공정에서의 생산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실현할 수 있다. 특히 CGCL공장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간 46,032tCO2-eq 수준으로, 기존 설비 대비 28.0% 절감하는 등으로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2023년 탄소중립 선도 플랜트 지원 사업장으로도 선정되기도 했다. 또 동국씨엠이 아주스틸 인수에 대해 "설비·공정 관련 R&D 역량을 확충해 ESG관점의 친환경 기술 발전에 힘쓸 것"이라고 밝힌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아주스틸 인수 전 동국씨엠은 도금라인 추가 도입을 고민해왔다. 동국씨엠은 현재 CGL 4기와 CCL 9기 설비를 보유하고 있는데, 컬러강판 설비가 원판 소재인 도금강판을 생산하는 설비보다 두 배 이상 많았던 것이다. 냉연도금제품 외부판매 역시 전체 냉연판재류 판매의 40%로 큰 비중을 차지했던 만큼 컬러강판을 위해 내부재로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을 만들어내는 데는 부침이 컸다.

CGL 추가 증설에는 통상 부지 매입부터 설비 안정화까지 수천억에 이르는 비용과 장시간이 투입된다. 설비 확충에 있어서도 국내 공급만 더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동국씨엠은 투자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매물로 나온 아주스틸의 CGCL로는 안정화를 이뤄 바로 생산이 가능한데다 시간과 비용은 물론 과잉 생산에 대한 부담도 해소할 수 있다. 설비 추가 증설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아주스틸 인수가 대안이 됐다는 것이다.

또 이 설비는 아주스틸이 가전보다는 건자재 물량 확대에 집중하면서 증설한 것으로, 박물화와 디지털프린팅(TDP) 인쇄 기술까지 활용 가능하다. 특히 인테리어용 디자인판넬 등 인·익스테리어 시장 공략이 가능하다. 동국씨엠은 이탈리아산 명품 벽지, 강화유리, 대리석 등을 럭스틸의 경쟁 상대로 삼고 있었던 만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주스틸이 '2024 코리아빌드위크'에서 공개한 'DM Board' 라인업./ 아주스틸

CGCL 획득은 동국씨엠의 '다품종 소량생산'에 속도를 붙여줄 것으로 보고 있다.

동국씨엠의 생산능력은 지난 2011년 럭스틸 론칭 이후 현재까지 기존 4기에서 9기까지 컬러강판 생산라인을 증설했다. 생산능력은 49만 톤에서 85만 톤까지 73%가량 확장했다. 하지만 대규모 설비 증설에도 동국씨엠의 생산량은 되레 줄고 있는 추세다. 2011년 약 64만 톤에서 2023년 66만 톤으로 기존과 같았다. 지난 5년간 추이를 보더라도 △2019년(71.8만 톤) △2020년(71.7만 톤) △2021년(71.8만 톤) △2022년(64.8만 톤)△2023년(65.5만 톤)으로 뚜렷한 공급 변화는 없었다. 단순히 생산 능력을 늘리는 것이 아닌 프리미엄 제품에 특화된 생산 라인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아주스틸이 신규 개발한 영상가전용 복합섬유판넬(CFM)과 에코블랙(eco Black)제품의 실제 적용 사례./ 아주스틸

아주스틸의 가전사업 부문에도 동국씨엠의 눈길이 쏠렸다.

동국씨엠은 냉장고와 세탁기와 같은 백색가전을 위한 고급 컬러강판 생산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이번 인수로 앱스틸(동국씨엠 가전용 컬러강판 브랜드)에 영상가전용 제품 포트폴리오를 추가할 수 있게 됐다.

아주스틸은 프리미엄 영상가전용 컬러강판의 제조·가공에 특화한 기업으로, 국내에선 유일한 공급선을 갖추고 있다. 가전산업이 좋을 때는 영상가전 부문이 회사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벌어다주는 캐시카우였다. 제품력도 상당한 수준이다. 회사가 생산하는 케이스탑과 백커버, 이너플레이트 제품은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첨단기술제품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생활가전 부문에서의 기술개발은 덤이다. 아주스틸은 삼성전자의 서남아향 꽃무늬 글라스펫(Glass PET)과 LG전자의 공조기 PCM 프라이머+1중분체 개발 등을 오는 9월 중으로 마칠 예정이다.

최대 변수인 2대주주 가네마쯔

동국씨엠의 아주스틸 인수는 올해 안으로 마무리된다. 일단, 동국씨엠의 인수 무산은 크게 걱정되지 않는 분위기다. 그간의 전례를 살펴봐도 동등한 위치에 있는 기업이 아닌, 하위에 있는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수직적 거래에 규제가 걸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아주스틸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이학연 대표는 공시가 있는 다음날 실무진 회의를 통해 "회사를 위한 최선의 방안은 무엇인지, 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며 "매각 절차가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아주스틸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가지 변수는 2대주주인 일본 가네마쯔상사의 매각 이후의 태도다. 가네마쯔는 아주스틸 설립 이전부터 이 대표와의 각별한 인연으로 우군으로 확실하게 힘을 보태왔다. 지배구조에서 2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번 인수안에 대해 새로운 기준이나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본 도쿄 치요다구에 위치한 가네마쯔 주식회사 본사 전경./가네마쯔

일본 가네마쯔상사는 현재 전자,자동차,항공, 식품, 철강 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 2019년부터는 아주스틸과의 자본제휴를 맺고 있다. 아주스틸이 상장에 성공한 후에는 관계회사를 별도 설립해 일본 건축자재 시장 확장의 교두보를 마련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원재료 매입 거래에서 한국가네마쯔를 통해 신용장 개설과 같은 여신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아주스틸은 한국가네마쯔로부터 2019억원 규모로 원재료를 매입했다. 주요 매입처 비율로는 25.1%로, 포스코인터내셔널 아메리카(15.8%)나 현대제철 멕시코(10.4%)보다 높았다.

눈여겨 봐야할 점은 가네마쯔상사가 전략적 투자자의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재무적 투자자(FI)는 투자 후 차익과 함께 자금 회수(Exit)를 목표로 하지만 전략적 투자자(SI)는 본인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투자를 이용하는 전략을 취한다.

아주스틸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투자 회수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네마쯔상사의 입장에서는 정보통신 부품, 자동차 소재, 철강 사업 부문이 아주스틸의 다양한 사업 부분들과의 시너지가 유효한 상태이기 때문에 투자금을 유지하는 것이 실리를 지키는 선택이 된다.

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아주스틸이 경영난을 겪은 이후 가네마쯔상사는 아주스틸을 더 꼼꼼히 챙겨왔다고 한다. 매각설을 던진 메시지가 작지 않지만 수년간 경영에서 동행 체제를 이어왔던 만큼 주인이 바뀌든 바뀌지 않든 아주스틸을 더욱 경쟁력 있는 회사로 만드는 여러 방안을 연구할 것이라는 관망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

Copyright © 철강금속신문 .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