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3〉, 〈7번방의 선물〉의 명품 조연, 뮤지션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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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3〉, 〈7번방의 기적〉, 〈서편제〉…. 한국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독특한 외모와 목소리 톤으로 기억할 배우. 연기 경력 30년, 하지만 낯선 이름, 배우 박길수. 그는 배우이지만, 10년차 뮤지션이기도 하다. 포크음악이라 분류해야겠지만, 어쩐지 타령 같기도 하고 랩 같기도 하다. 품바를 배웠던 경력 때문일까? 블루스 노랫말을 판소리로 전달하는 소리꾼 같기도 하다.
그의 음악은 무엇보다 솔직하다. 수줍은 듯 몸을 웅크리지만, 주체할 수 배우의 광기가 마이크를 뚫고 나온다. 배우를 하다 음악을 하게 됐는지, 음악을 하려다가 연기를 하게 된 건지, 이제는 그도 헷갈린다. 배우 박길수의 음악 이야기이다.
“재니스 조플린, 조안 바에즈처럼 좋은 소리를 내는 가수들을 좋아했어요. ‘빗속의 여인’을 부른 장현, 배호, 최희준, 그보다 더 오래 전 가수인 현인 같은 분들 노래를 들으면 어떻게 저 시대에 저런 목소리, 저런 창법으로 노래했지, 놀라웠어요.”
“저는 제가 가진 독특한 소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소리를 끌어내 보고 싶었어요. 벌써 30년도 넘었네요. 가수가 되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어요. 종로5가에 가면 노래 학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냥 올라온 거예요. 노래도 가르쳐 주고 잘하면 밤무대도 서게 해 준다니까, 돈 벌이도 되겠다 생각한 거지요.”
“을지로3가 감자탕 집이 많았는데, 거기서 서빙도 하고 배달도 하면서 학원을 다녔어요. 몇 달 뒤에 원장님이 무대에 서게 해준다면서 의상비, 편곡비 해서 돈을 더 내라더라고요. 그게 저한테는 너무 큰 액수였어요. 그래서 노래 학원을 그만두고 다른 방법을 찾다가, 스포츠 신문에서 연기학원 광고를 보게 된 거예요.”
“그게 1989년도가 아닐까 싶네요. 하도 오래 전이라…. 연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식당 일만 하면서 20대를 보낼 수는 없으니까 뭐라도 해 보자 하고 연기학원에 등록을 했어요. MTM이라고 꽤 큰 학원이었는데, 40대 이상에서는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걸요? 6개월 교육 과정이 끝나고 연기 선생님이 연극에 넣어줬어요. 〈혀〉라고 이호재 선생님이 출연하시는 작품이었는데, 그냥 사람 때리고 슥 지나가는 역할이었어요. 그거 딱 한 장면이라 연기라고도 할 수 없었지요.”
“그 무대가 끝나고 〈바쁘다 바뻐〉라는 연극을 하는 극단에 들어갔어요. 그냥 대학로를 걷다가 단원 모집 포스터 보고 찾아간 거예요. 오디션도 없고, 월급도 없고, 누가 들어오겠다고 하면 알아서 오든 말든 내버려두는 식이었어요. 참 시시하지만, 거기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하게 된 거예요. 이후로 작품을 몇 개 하다가 아리랑 극단이란 곳으로 갔고, 거기 단원들이 〈서편제〉에 엑스트라로 대거 출연하면서 얼떨결에 영화를 하게 됐지요. 전부 다 우연이었던 거예요.”
“처음으로 좀 굵직하게 맡았던 배역이 〈넘버3〉였어요. 송강호 배우한테 살인청부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그 역할 이후 연극보다 영화를 더 많이 했고, 〈나의 결혼 원정기〉도 꽤 기억에 남는 작품이에요. 그러다 〈7번방의 기적〉 이후로는 우정출연 말고는 연기를 안 하고 있어요. 만나는 연출마다 웃겨 달라고 하거든요. 제가 웃긴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연기가 참 어려워요. 익살스런 연기를 하는 데 지치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불러주는 곳이 없게 돼 버렸네요.”
“정인기라고 연기하는 친구가 있는데 저와 동갑내기예요. 어느 날 그 친구가 기타를 배우고 있다면서 같이 다니자고 하더라고요. 둘이 기타를 배우면서 노래를 만들고 공연을 했어요. 〈기타만 메고 다녔지〉, 〈지가 무슨 한대수인 줄 알고〉, 〈뭐 없나〉 그런 노래들인데, 그게 다 둘이서 막걸리 마시다 만든 음악이에요.”
“연습은 안 하고 맨날 기타만 메고 다니는 거 아니냐, 우리가 뭐 한대수, 밥 딜런이라고 평화를 노래하고 있는 거냐, 오늘 뭐 재밌는 일 없냐, 누가 술 먹자고 불러주는 사람 없나, 그런 얘기들이에요. 마포구 성산동이라고, 3년 정도 동네 가수로 활동했는데, 정인기가 드라마, 영화 일로 바빠졌어요. 어느 날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네가 나보다 노래를 잘하니 너는 이제 성산동을 떠나 홍대로 가라. 거기서 솔로를 해라. 그래서 혼자 홍대 클럽 문을 두드렸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바다비, 씨클라우드라는 공연장이 있었어요. 직업은 연기고, 노래는 취미 수준인데, 정말로 혼자 홍대 클럽에 서게 되니까 굉장히 설렜어요. 설레는 게 참 좋았어요. 홍대 클럽이란 게 돈벌이는 전혀 안 돼요. 불러주는 데도 없어서 알아서 공연을 잡아야 하고요. 젊은 친구들은 사랑 노래를 하는데, 나는 사랑 노래가 없고, 게다가 프로 음악인이라고 하기에 기타를 너무 못 치고요. 인디음악에서는 아주 유명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형은 기인 같아요. 그 말에 정말 부끄럽고 작아지더군요. 기인이 아니라 뮤지션이 되어야 하는데.”
“그동안 여러 음악인들과 같은 무대에 섰는데, 일본 분들하고 인연이 많았어요. 기타 치는 하치 씨, 밴드 ‘곱창전골’의 사토 유키에 씨. 하치 씨는 강산에 씨 등 유명 뮤지션과 작업하신 훌륭한 기타리스트이신데 하치와 TJ는 홍대에서 꽤 인기 있었지요. 유키에 씨는 자유롭고 거침없고, 아주 인간적인 분이에요. 음악 지식이 엄청나고요. 그분 집에서 LP를 들으며 많이 배우고 있어요.”
“요즘에는 사토 유키에 씨와 일본 엔카를 연습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재즈 같기도 하고 블루스 같기도 해요. 우리나라 트로트하고는 약간 다른데, 좀 더 자유롭게 소리를 내고 얽매인 데가 없어요. 홍대에 하루 바라고, 거기서 가끔 같이 공연도 하고 있어요.”
“저는 제가 만드는 음악을 포크 록이라고 생각하는데, 랩도 할 수 있고. 엔카도 할 수 있고, 목소리로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해보고 싶어요. 내가 내는 소리로만 감동을 주자, 소통을 하자, 내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스스로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는데 그걸 공연에서도 전달해 보는 게 꿈이에요.”
“저는 타고난 저만의 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훈련으로 그걸 끄집어내야지요. 저는 연습을 거의 안 하고 무대에 올라가는 스타일이었어요. 연습을 안 하면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서. 근데 거기까지가 한계더라고요. 지금은 목소리 연습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이걸로 유명해지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노래, 공연을 많이 하고 싶다, 그뿐이에요. 대신 이제는 연습을 엄청나게 많이 한 상태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기인이 아니라, 취미가 아니라, 정말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요.”
인터뷰 | 이주호
사진 |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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