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딱 1곳인데" 의왕시, 고등학교 부지 없애고 지식산업센터 짓는 이유
[땅집고] “최근 몇 년 동안 북의왕에 새 아파트가 줄줄이 입주했는데도 고등학교는 딱 하나뿐이라 엄청난 포화 상태거든요. 어쩔 수 없이 남쪽 학교 배정받는 애들은 대중교통 환승에 환승을 거쳐서 1시간이나 가야 하는데, 의왕시가 그나마 남아있던 고등학교 부지조차 없애겠다니 황당하죠.”(의왕시 포일동 A아파트 주민)
“교육청에서 의왕시 고등학교 수요가 앞으로도 늘지 않을 거라고 보고 신설 허가를 안 내주고 있어요. 이렇게 학교 부지를 20년 가까이 방치하느니, 용도를 변경해서 다른 건물을 올리는 것이 지역 활성화에 더 도움이 될 거라는 내부 판단이 있었습니다.”(의왕시 도시정책과 관계자)
최근 경기 의왕시 북쪽 포일2지구 내 고등학교 부지 용도 변경 문제를 두고 의왕시와 북의왕 주민들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의왕시가 이곳에 학교를 짓는 대신 상가·지식산업센터 등을 지을 수 있는 땅으로 용도 변경할 계획을 세우면서다.
포일동·청계동·내손동 일대 북의왕 주민들은 학교 부지를 없앨 경우 고등학생 자녀들이 멀리 부곡동·고천동·오전동 등 남의왕으로 통학해야 한다며 결사반대에 나섰다. 반면 의왕시는 장기간 빈 땅으로 남아있는 이 땅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토지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의왕시, 19년 만에 포일2지구 고등학교 부지 없앤다
의왕시는 올해 10월 23일 ‘포일2지구 지구단위계획 결정(변경)안’에 대한 주민의견청취 공고를 냈다.
이 공고에는 약 3000여가구 규모 미니신도시인 포일2지구 한가운데 있던 고등학교 부지를 1만3000㎡를, 도시지원시설 1만277.8㎡와 복합시설 2722.2㎡로 각각 용도 변경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땅이 2006년 학교 용도로 최초 결정된 지 19년 만의 변경 추진이다.
만약 위 내용대로 용도 변경이 완료된다면 건폐율 60% 이하에 용적률 230% 이하, 5층 이하 고등학교밖에 지을 수 없었던 땅이 건폐율 70%에 용적률 500%를 적용하며 최고 10층 높이 건물을 올릴 수 있는 땅으로 거듭난다. 지을 수 있는 건물의 용도 역시 근린생활시설, 업무시설(오피스텔 제외), 노유자시설, 지식산업센터 등으로 많아진다. 한 마디로 부지 개발 허용 폭이 커지면서 사업성이 좋아지는 셈이다.
의왕시는 용도 변경을 진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 “토지 가치 향상을 통한 지역 개발 연계를 위해 교육시설을 폐지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 앞으로 북의왕 고등학교 포화 심각한데…학교 버리고 지산 짓겠다니
하지만 의왕시가 포일2지구 내 고등학교 부지를 없앨 계획이란 소식을 접한 북의왕 주민들은 거센 반대에 나섰다. 현재 의왕시 고등학교 총 4곳이 있는데, 이 중 백운고를 제외한 3곳(모락고·우성고·의왕고)이 모두 남의왕에 몰려 있는 탓에 북의왕에 거주 중인 고등학생 자녀들이 원거리 통학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
주민들은 앞으로 백운고 포화 정도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 중이다. 북의왕 지역에 ‘인덕원자이SK뷰’(2025년·2633가구)와 ‘인덕원 퍼스비엘’(2026년·2180가구) 등 입주를 앞둔 대단지가 여럿 남아있는 데다, 앞으로 내손지구·청계지구 등 인근 택지지구 개발도 줄줄이 예정돼있어서다.
의왕시 포일동 A아파트 주민은 “지난해에도 백운고에 자리가 모자라 북의왕 학생 6명이 추첨으로 남의왕쪽 고등학교에 배정받아, 1시간 넘는 통학 시간을 견디고 있다”면서 “이렇게 고등학교 수요가 충분한 북의왕에 학교 지을 땅을 없애고 상가와 지식산업센터를 짓는다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의왕시가 학생들 편의를 고려하는 대신 개발 이익 환수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이 땅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소유인데, 현행 규정상 학교 부지가 도시지원시설로 용도 변경되는 경우, 변경 면적의 25%를 지자체가 기부채납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받은 땅을 의왕시가 매각해 현금을 챙기거나, 자체 사업으로 건물을 짓고 분양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북의왕 주민이라고 밝힌 B씨는 “현재 학교 부지보다 입지가 더 좋은 ‘인덕원IT밸리’나 ‘청계 에이스타워’ 등 지식산업센터마다 공실로 텅텅 비어있는 상황”이라면서 “그런데도 학교를 버리고 지식산업센터를 더 공급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 의왕시 “어차피 학교 못 짓는 땅, 20년 넘게 방치보단 효율성 높여야”
의왕시는 북의왕 주민들 불만은 이해하지만, 포일2지구 고등학교 부지 삭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용도 변경 추진이 졸속 행정이 아니라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
가장 큰 이유는 고등학교 신설 권한을 가진 교육청이 20년 가까이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어서다. 북의왕에 단 한 곳 뿐인 백운고가 포화 상태라고 해도, 멀더라도 의왕시에 진학할 수 있는 다른 학교가 존재하는 경우 교육청은 수요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교육청은 의왕시 측에 북의왕 학생들이 1지망 고등학교로 인접한 안양시 인덕원고 등 다른 지자체에 있는 학교를 써내는 것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의왕시는 이렇게 학교를 지을 수도 없는 땅을 장기간 버려두는 것보다, 용도 변경해서 추가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토지 활용도를 높이는 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포일2지구가 IT기업이 몰려 있는 인덕원 일대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2029년이면 인근에 월곶~판교선 교통망이 개통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 곳에 짓는 상가·지식산업센터 등 건물 수요가 충분할 것이라는 내부 의견도 있었다.
의왕시 도시정책과 관계자는 “시 입장에선 이번 용도 변경이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더불어 LH로부터 기부채납 받는 땅에 피트니스센터·문화센터 등 주민들이 원하는 시설을 확충해 생활 편의성을 높여줄 계획”이라고 전했다.
글=이지은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