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 김태형 감독의 선수 시절 통산 성적을 찾아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12시즌 827경기, 타율 0.235, 홈런 9개, OPS 0.575. 요즘 기준이면 1군 생존도 버거운 숫자다.
그런데 이 성적표의 주인공은 90년대를 대표하는 포수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신인 시절 밀어낸 선배들의 이름은 조범현과 김경문이다. 숫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선수, 그게 포수 김태형이었다.
조범현·김경문을 밀어낸 신인

신일고와 단국대를 거쳐 1990년 OB에 입단한 김태형은 곧바로 80년대 베어스 안방을 지키던 조범현, 김경문을 제치고 주전 마스크를 썼다. 방망이가 아니라 수비로 따낸 자리였다. 도루 저지와 블로킹, 그리고 투수의 그날 컨디션과 습관까지 읽어내는 리드. 체격도 작고 체력도 약한 편이었지만 순발력과 야구 지능으로 버텼다는 게 본인의 회고다.

공격력 좋은 백업 포수들과 출장을 나누면서도 중요한 경기의 마스크는 늘 그의 몫이었다. 훗날 감독으로 맞대결하게 되는 두 대선배를 신인이 밀어냈다는 것 자체가, 수비형 포수로서의 급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수가 선수를 어떻게 가르쳐요?

김태형의 진면목이 드러난 무대는 1995년 한국시리즈다. 김인식 감독은 장타력을 살리려 1차전 선발 포수로 이도형을 냈고, 김태형은 벤치에서 후배를 챙기라는 주문을 받았다.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선수가 선수를 어떻게 가르쳐요?" 감독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당돌함.

그런데 1차전을 내준 김 감독은 2차전부터 김태형에게 마스크를 맡겼고, 그는 권명철의 2안타 완투승을 이끌며 동점 적시타까지 때렸다. OB는 그 기세로 롯데를 꺾고 우승했다.
한 팀에서 선수·코치·감독으로 다 우승한 남자

1998년부터 3년간 주장을 지낸 김태형은 홍성흔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받아들였고, 2001년 플레잉코치로 6경기를 뛴 뒤 은퇴했다. 공교롭게도 그해 두산은 또 우승했다.
이후 배터리코치로 양의지, 최재훈 등을 키워낸 그는 2015년 감독으로 돌아와 부임 첫해 우승,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썼다. 1995년 선수로, 2001년 코치로, 2015년 감독으로. 한 팀에서 세 가지 역할로 모두 우승한 커리어는 KBO에서도 손에 꼽는다.
타율이 말해주지 않는 것

그러니 선수 땐 못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의 답은 절반만 맞다. 타자로서는 평범했지만, 포수로서는 리그가 인정한 야전 사령관이었다.
상대 벤치의 수를 읽고, 투수를 다루고, 필요하면 감독에게도 직언하던 그 포수의 자질이 그대로 감독 김태형의 원형이 됐다. 어쩌면 지금 롯데 덕아웃에서 가장 빛나는 건, 30년 전 타율 2할 3푼짜리 포수가 마스크 뒤에서 쌓아온 그 눈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