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는 어쩌다 초식동물이 됐을까?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고기 못 구하자 육식 즐기는 유전자 잃어
죽순에서 단백질 얻는 진화로 위기 이겨내
발가락 5→6개, 얼굴 변형도 생존 극복法
소화기관은 육식동물 그대로...소화력 낮아
교훈 "최악의 환경에서도 생존해낸다"

판다는 원래 육식동물이었다

최근 용인 에버랜드에 살다가 중국으로 떠난 '푸바오' 판다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뜨거운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판다 푸바오는 한국에서 지난 2020년에 태어나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중국으로 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에서 판다의 생물학적 필요성이 충족되지 않는 것은 분명했고, 중국이 한국보다 판다의 생육에 관해 훨씬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는 만큼, 중국으로 가는 것이 생태학적으로는 맞다. 그렇더라도 그를 못보는 아쉬움은 클 수 밖에 없다.

판다라는 동물이 가진 매력의 출발은 아마 생김새일 것이다. 대부분 백색인 신체에 마치 안경을 낀 것과 같은 눈 주위의 점은 까만색의 다리, 귀와 함께 흑백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판다가 먹는 먹이도 특별해 관심을 끈다. 곰 같이 생긴 동물이 대나무를 먹는다는 것은 정말 특이한 현상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판다는 어쩌다 대나무를 먹게 되었을까?

동물 유전학자들은 판다에게서 육식에 필요한 맛을 느끼는 유전자의 변형이 있었고, 이로 인해 육식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육식을 하고 싶게 만든 '맛 인지' 유전자에 문제가 생겨 육식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됐다. 곰 판다에게서 아미노산 수용체의 작동이 약 420만 년 전부터 멈추어 버렸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아미노산 수용체는 음식의 '감칠맛'을 전달하는 세포다. 이 수용체가 없으면 고기를 먹어도 고기맛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아직은 이 가설이 맞다고 증명은 되지 않았다. 적어도 육식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분명하니 가능성은 높다.

아기때 모습의 푸바오. 출처=with EVERLAND blog

대나무가 판다의 멸종을 막아주었다

판다가 대나무를 주식으로 삼은 것은, 기후 변화가 주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생육 공간의 기후가 변하면서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줄어들자 다른 동물과의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초식동물이 되었다. 특히 대나무 밭 주위에서 서식하던 판다가 대나무를 먹으면서 이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았다는 추정이다.

원래 판다는 포식 동물이었다. 포식동물의 소화기관은 간단한 위장과 짧은 소장으로 되어 있다. 고기를 먹어야 생존했던 포식 동물인 판다가 초식 동물로 변한 것이다. 마치 인간도 초기에 초식 동물이었지만, 초원지대가 줄어들자 잡식으로 바뀐 것처럼.

분류학상 판다는 '곰'과에 속한다. 그리고 판다속, 대왕판다종, 또는 자이언트 판다로 분류된다. 판다속에는 4종이 있었지만 나머지 3종은 멸종했고 대왕판다만 살아 남았다. 주로 대나무가 밀집한 중국 여러 지방에 걸쳐서 있었지만 밀렵과 환경 변화로 개체수가 줄어 이제는 주로 중국 사천성 일대에만 서식하고 있다.

판다가 대나무를 주식으로 먹기 시작하면서 진화한 부분은 크게 4가지로 확인된다. 진화학상으로는 진화 덕에 판다가 대나무를 먹는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이런 진화가 이루어졌기에 멸종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곰의 발가락은 5개, 판다는 6개다

첫째, 가장 중요한 진화의 모습으로, 판다는 대나무 특히 죽순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앞발이 발달했다는 점이다. 곰은 5개의 발가락이 있지만 판다는 손목뼈인 종자골이 변한 가짜 엄지 발가락이 있어 6개의 발가락을 갖고 있다. 5개의 발가락이 이 가짜 엄지 발가락을 지렛대 삼아 대나무를 자유자재로 잡고 휘고 꺾을 수 있다. 다른 곰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기능을 가지도록 진화한 것이다.

또한 판다는 대나무의 억센 섬유질을 씹기 위해서 턱 근육과 갈아먹는 이가 발달하게 됐고, 이로 인해 안면의 근육도 발달했다.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둥근턱 모양은 이렇게 만들어진 근육으로 형성된 것이다. 즉 얼굴의 형태적 구조가 대나무를 주식으로 하기 좋게 변했다는 점이다.

판다의 소화기관은 늑대와 비슷하다

둘째로는, 대나무 잎이나 죽순을 먹고도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판다는 육식동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있다. 소화기관을 보면 마치 늑대의 소화기관과 같다. 즉 초식동물의 소화기관으로 진화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니 대나무 잎과 죽순을 먹어도 많이 소화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양을 먹어서 그 양으로 필요한 영양분을 획득해야 하니, 판다는 하루에 9㎏에서 14㎏ 정도를 먹는다. 섬유질을 잘 소화할 수 없기에 빠르게 배설해야 해서 하루에 10번 이상 대변을 본다.

특이한 현상의 하나로, 곰은 보통 겨울 잠을 자지만 판다는 겨울 잠을 잘 수 없다. 따뜻한 기후의 서식지에 있기에 굳이 겨울 잠을 잘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많은 에너지를 축적하지 못한 상태로 살기에 겨울에도 잠 대신 먹이를 끊임없이 먹어야 한다. 판다는 또 죽순이 많이 자라는 시기에 양분을 축적하고자 그 때에만 죽순 소화를 돕는 낙산 생성균이 급증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판다 고유의 소화를 돕는 미생물이 장내에서 진화를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영양분이 축적되게 진화했다. 죽순의 단백질 함량은 대나무 잎보다 높기 때문에 죽순이 자라는 시기에 영양분을 축적하는 것이다. 판다는 에너지의 50% 정도를 단백질로 흡수한다. 이는 들고양이나 늑대와 비슷하다. 아마도 죽순에서 이런 영양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판다는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셋째로, 판다는 하루에 식사하는 시간이 12시간이 넘는다. 초식 동물만큼 소화력이 높지 못하기 때문인데, 어찌 보면 육식 동물에서 초식 동물로 진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판다의 하루 에너지 소비량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이다. 판다의 하루 에너지 지출량 ‘DEE(Daily Energy Expenditure)’를 계산한 결과, 에너지 지출량은 5.2MJ로 나왔다. 5.2MJ라면 움직임이 거의 없기로 유명한 세발가락나무늘보(Three-toed Sloth)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에너지 소비가 큰 뇌나 신장, 간 같은 장기의 크기를 줄이고 갑상선 호르몬의 분비량도 줄여 대사 속도를 늦추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증거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 최소한의 움직임만 하는 것이다. 군집생활을 하지 않는 것도 바로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대나무 숲에서 대나무를 먹고 있는 판다.

판다의 대나무숲엔 두 종류의 대나무가 있다

넷째, 판다는 두 종류의 대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곳에서 생활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대나무의 두 종이 죽순이 자라는 시기가 달라야 각각의 시기에 올라오는 죽순을 통해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순을 먹을 수 있는 시기가 한 번 밖에 없다면 판다는 영양실조에 걸릴 수 있다. 판다는 대나무의 죽순이 나오는 시기가 다른 두 종이 자라는 지역에 살면서, 때로는 높은 곳에 살고 때로는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서 죽순을 먹는다. 8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는 저지대에서 살면서 죽순을 먹고, 죽순이 다 자라서 잎이 나오기 시작하면 고지도로 이동해 다른 종의 대나무 죽순을 먹는다. 이렇게 왕복하면서 나름의 생존법을 터득했다.

판다는 초식동물로 완전히 진화하지 못한 육식동물이지만, 최소한의 필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진화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에 맞춰 생존방법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판다의 진화와 닮은 기업은 '두산그룹'이다

이런 현상은 산업 생태계에서는 어떤 경우와 비슷할까. 사업을 바꾸는 시점에 있는 기업들에게 해당하는 부분이 많다. 판다가 어쩔 수 없이 육식 동물에서 초식 동물로 바뀌는 과정이나, 기업이 더 이상의 수익 또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된 기존 사업을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한국 기업사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준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두산그룹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지만, 변신을 통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 진로, 쌍방울, 웅진 그룹등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소매업 중심에서 첨단 제조업으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이유중 한 가지는, 기존의 체질을 바꾸지 않고 좋아보이는 산업만 쫓아간 탓이다. 즉 자신의 체질을 바꾼 것이 아니라 모양과 사업만 바꾸었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하지만 두산은 출발부터 달랐다.

두산은 먼저,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부터 내놓았다. 당시 두산 그룹의 핵심 사업부는 OB맥주를 비롯한 주류 사업이었다. 두산은 이를 과감히 팔아버리고 한국중공업, 즉 현재의 두산중공업을 샀다. 경박단소(輕薄短小)형 산업에서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산업으로 주력사업을 완전히 탈바꿈하려 한 것이다. 이런 결단에는 엄청난 리스크가 따랐다. 사업을 확장하거나 전환하려할 때, 대부분 기존의 수익을 만들어 내는 사업은 남기고 추가로 사업을 넓히는 식이지만, 두산은 모든 것을 완전히 바꾸는 선택을 했다. 그만큼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둘째로는 두산은 한국중공업이 가진 국가적 독점지위를 보고 뛰어들었다. 판다는 대나무 숲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되면서 독점력을 가졌다. 대나무 죽순을 빼앗아갈 경쟁 동물은 사람이 유일하다시피했다. 판다는 대나무숲에서 자신이 왕이 될 수 있었다. 두산의 한국중공업도 국가적으로는 망하게 내버려둘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다. 원자력 설비와 발전 플랜트, 담수화 플랜트에서 국내 유일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었다. 일시적인 위험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특화된 시장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셋째, 두산은 시장의 특성에 맞게 해외와 국내의 중공업 산업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M&A를 추진했다. 중공업 산업은 수요의 시기가 불규칙하다. 한번 수요가 생기면 그후 일정 기간 동안에는 다시 생기지 않는다. 한번 설비를 설치하고 나면 2~3년은 매출이 좋지만 그 후로는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두산은 이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적극적으로 해외 M&A를 추진했다. 이를 통해 수요를 조정해갔다. 마치 판다가 고지대의 대나무와 저지대의 대나무 2종의 죽순을 시기를 달리해 캐먹으면서 생존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즉 수요의 주기에 맞추어서 필요한 국내와 해외 영업망을 구축하는 데 노력했다.

판다의 6번째 발가락 같은 두산종합기술원

넷째, 1996년의 오너가족 회의를 통해서 소비재 중심기업에서 벗어나기로 결정을 했는데, 이 때 중요한 분기점이 된 것이 바로 두산종합기술원의 설립이다. 두산종합기술원은 두산전자의 페놀 사건 이후에 기술, 특히 기술축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준비를 한 것이다. 두산종합기술원이 바라보는 기술 수준에 따라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판단할 수 있는 기본 역량을 갖추기 시작했다. 결국 중후장대형 중공업을 추진하더라도 기본적인 출발점과 판단지점은 여기였다. 마치 판다가 가짜 엄지 발가락을 이용해서 대나무를 먹이감으로 자유자재로 이용하듯이, 두산은 두산종합기술원을 통해 다양한 기술을 섭렵해 나갔다는 점이다.

두산은 캐시 플로우를 중시하면서 두산인프라코어(현 HD현대인프로코어)를 8500억 원에 팔았고, 한때 잘못된 M&A라고 말이 많았던 두산 밥캣을 통해 2020년까지 그룹의 손실을 메웠다. 두산은 살아남기 위해 많은 비용이 들거나 미래가 없는 사업, 또는 단순한 흥미 위주의 사업들을 수없이 정리해 최소비용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했다. 판다가 자신의 움직임을 최소화해 에너지 지출을 최소화했듯이 기업 중에도 그런 전략을 짠 기업이 있다.

위기를 통해서 성장하듯 두산도 위기를 극복하면서 생존방법을 찾은 대표적인 기업이다. 비슷한 위기를 겪은 동양그룹, STX그룹이 사라진 반면 두산은 살아 남았다. 비록 한국 4대 그룹과 같은 정도로 커지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15대 그룹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극복한 경험과 전략을 바탕으로 미래도 충분히 커 나갈 수 있는 기업으로 인정하고 싶다. 두산은 초기 야구단을 만들었고 그 이름을 OB 베어스로 했는데, 지금도 '두산 베어스'로 운영하고 있다. 판다가 육식동물에서 초식동물로 변하면서 받았던 고통만큼 두산도 겪었을 것이다. 판다와 두산을 비교하다보니, 판다가 곰이듯 두산의 심볼이 베어스라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판다의 교훈 "어떤 힘든 환경도 진화로 이겨내자"

판다는 이제 곰이라는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죽의 장막'을 걷어내는 외교관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중국은 1970년대에 미국과 일본에 빌려주고, 한국 등 여러 나라에 10년을 기한으로 대여해주었다. 그 덕에 판다는 자신의 이름을 딴 '판다 외교'라는 국제외교전에서 극적인 해결사 스토리를 쓰고 있다. 판다라는 특이한 특성을 지닌 동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판다가 대나무 숲에서 보여준 생존 방식에서 기업들도 참고할 부분이 많다. 그 좋은 사례로 곰을 심볼로 삼은 두산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어떤 험한 환경에서도 생물은 진화를 통해 생존할 수 있듯이, 경영자는 어떤 어려운 경영환경이 펼쳐지더라도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교훈을 잊지말자. 기업도 환경에 맞춰 진화하면 된다.


※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