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1세대 트로이카 배우 유지인의 화려한 전성기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일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1982년, 북한 김정일의 처조카였던 이한영 씨가 망명 직후 한국의 광고판을 보고 “저 여배우 유지인 아니냐”고 말한 일화는 지금도 회자됩니다.

1980년대 초반, 북한에서 한국 연예인을 아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시절이었기에 이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이한영 씨는 “김정일의 평양 관저에서 유지인의 출연작을 본 적이 있다”고 증언하며, 유지인의 위상을 방증하는 일화로 기록됐습니다.
■ 2300:1 경쟁 뚫고 데뷔…1세대 ‘얼짱’ 배우의 시작
1956년생인 유지인은 고등학생 시절인 1973년 TBC(현 JTBC) 공채 탤런트로 입사했으며, 1974년 영화 ‘그대의 찬 손’으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당시 신인 배우 공모전에서 2300: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주연 발탁됐으며, 이때부터 그녀의 전설은 시작됐습니다.

예명 ‘유지인’도 데뷔작 캐릭터 이름 ‘지인’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한때는 닮고 싶은 여성 1위”…전성기엔 1년에 13편도 소화

당시 유지인은 광고, 드라마, 영화계를 휩쓸며 ‘닮고 싶은 여성 1위’와 ‘연예인 소득 1위’를 동시에 기록한 인기 절정의 배우였습니다.
특히 김수현 작가의 작품 ‘내가 버린 남자’, 영화 ‘심봤다’, 드라마 ‘탈선 춘향전’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고, 배우 이덕화·한진희·임동진 등 당대 톱배우들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심지어 가왕 조용필이 단 한 번 연기에 도전했던 영화에서도 유지인과 함께 주연을 맡았을 정도로 입지가 확고했습니다.
영화계 데뷔 전, “계약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세계일주가 가능한 줄 알고 사인했다”는 풋풋한 에피소드도 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세계일주 대신 영화 5편을 연달아 찍으며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유지인은 1986년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를 떠났고, 이후 9년 만에 복귀했습니다.
복귀 당시 “이 나이에 정신적인 긴장이 필요했다”며 “엄마들도 너무 퍼지지 말고 자기 일을 조금씩 하는 게 좋다”고 밝혀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철학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 여전히 빛나는 레전드…실검 오른 ‘탈선 춘향전’ 속 모습
최근 KBS 쇼드라마 ‘탈선 춘향전’ 속 유지인의 미모가 재조명되며,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오르는 등 화제를 모았습니다.

한진희와의 풋풋한 호흡, 임동진·이주일·가수 나미·이용까지 총출동한 화려한 출연진으로, 지금까지도 ‘추억의 드라마 명장면’으로 손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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