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고 싶다'더니…文, 존재감 과시 나섰다 [정치 인사이드]
적극 공개 행보 이어가며 존재감 과시
"압박 받는 文, 친문 결집 노리는 것"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2년 4개월여 만에 다시 정치권의 중심에 서게 됐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서 모 씨의 채용 특혜 의혹과 관련, 문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하면서다. '잊혀지고 싶다'던 문 전 대통령이 일가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의자 적시' 文, 정치권 중심에 다시 서다
문 전 대통령이 '피의자 적시' 이후 공개한 뒷모습 영상은 그의 복잡한 속내를 짐작게 한다. 그는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뒷짐을 지고 우산을 든 채 먹구름이 잔뜩 낀 메밀밭을 바라보는 짧은 동영상을 게재했다.
뒷모습만 보이는 이 짧은 영상에 문 전 대통령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만큼 근심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모습이다.
영상을 본 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 역시 이 영상에 검찰 수사를 거론하며 응원하는 댓글을 달았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님을 항상 응원한다. 당장은 화가 나고 답답하지만, 매번 문프(문 대통령을 향한 팬심을 드러내는 별칭)님은 옳은 방향으로 가셨다", "같잖은 소인배들이 대통령님을 흠집 내려고 혈안인데 정말 혐오감이 든다", "문프를 건드리는 자가 오히려 망하는 건 철칙이다", "거짓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는 등의 댓글이었다.
문 전 대통령의 딸 다혜 씨는 검찰의 수사 이후 반복적으로 자신의 SNS에 심경을 토로하는 글을 올리며 시선을 끌었다. 그는 지난 12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나는 나를 위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며 "나는 내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기 위해 즈려밟고 더럽혀져야 마땅한 말일뿐"이라고 썼다.
지난 3일에는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닌데 (문 전 대통령은) 엄연히 자연인 신분인데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 이제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고 했다. 검찰의 압수수색 다음날인 지난달 31일에는 "그 돌을 누가 던졌을까, 왜 하필 내가 맞았을까"라고 썼다.
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도 주목받기는 마찬가지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 일가의 계좌 내용을 추적하던 중, 김 여사가 현금 5000만원을 친구에게 전달해 다혜 씨 통장으로 보낸 내용이 발견되면서다. 회계사 출신인 김경률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재산 신고 당시 현금을 신고하지 않았는데, 그 직후 김 여사가 현금을 지인에게 전달했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과거 5년 동안 영부인이었는데 5000만원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느냐. 특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다혜 씨의 전남편 서모 씨의 특혜 채용 의혹을 수사하며 문 전 대통령 일가를 본격적으로 수사선상에 올린 상황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달 30일 검찰이 다혜 씨의 서울 주거지와 제주도 별장 등을 압수수색하고, 문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피의자로 적시하면서 알려졌다.
검찰은 서 씨가 지난 2018년 이상직 전 국회의원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 오른 후 이 전 의원이 설립한 태국계 저비용 항공사인 타이이스타젯에 전무이사로 취업한 것이 특혜라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특히 서 씨가 임원으로 근무하며 급여와 태국 이주비 등으로 받은 2억원 이상의 자금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성격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다혜 씨 주거지에서 확보한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다혜 씨와 문 전 대통령 부부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과 손잡는 文, 공개 행보도 늘린다
더불어민주당은 문 전 대통령 일가를 향한 검찰 수사를 당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8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아 7개월 만에 문 전 대통령과 만났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김정숙 여사님과 대통령 가족에 대한 현 정부가 하는 작태는 정치적으로 법리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정치 탄압이고 한 줌의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는 수단이 아니냐"며 당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이후 일사천리로 '전 정권 정치 탄압 대책 위원회'가 출범했다. 탄압위엔 친문과 친명 현역 의원 등 13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첫 회의를 시작한 이 위원회는 이달 말께 다시 문 저 대통령을 만나 활동을 본격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또 야당 인사에 대한 검찰 수사 대응 방안을 논의하겠다며 '검찰독재대책위원회'도 출범시켰다. '전 정권 정치 탄압 대책 위원회' 위원장인 김영진 의원도 이 회의에 참석해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와 가족에 대한 행패에 가까운 정치 탄압과 무도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 전 대통령 역시 당과 발을 맞춰 공개 행보를 늘리고,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이 대표와의 만남에서도 "당에 고맙게 생각한다"며 "당당하고 강하게 임하겠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오는 19일에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평화의 인사'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낼 예정이다. 이어 20일에도 전남 목포 현대호텔에서 열리는 '전남평화회의'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 등을 주제로 기조 연설을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러한 문 전 대통령의 적극적인 행보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냐"면서 "본인에 대한 일종의 압력을 극복하기 위해 존재감을 과시하고, 친문들의 결집을 노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세력을 규합해 어떤 힘을 키워보려는 시도"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을 '방탄동맹'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박상수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7개월 만에 만나,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하며 공동 대응을 다짐했다"며 "'명문(明文) 방탄위원회'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권력을 쥐고 있을 때는 ‘적폐청산’, ‘정의’ 운운하며 밀어붙이더니, 이제 자신들에게 검찰 칼날이 겨누어지자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며 "위선 정치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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