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꿈꾸는 삶 살았으면” 보육원 청소년의 버팀목, 한준수 복지사 [따만사]

김예슬 동아닷컴 기자 2024. 9. 27. 14: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육원 아이들과 자립준비청년 돕는 한준수 사회복지사
한준수 복지사(31)가 에덴보육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례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저는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단어가 싫었어요. 그저 다른 아이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을 뿐인데 저를 ‘학교 밖 청소년’으로 부르는 게 속상했어요.”

윤시은(가명, 만 16세) 양은 5살 때부터 친오빠와 함께 에덴보육원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던 윤 양은 피아노 연주도 곧잘 했기에 실용음악과 진학을 꿈꿨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자퇴했다. 어느 순간부터 심리적 불안감과 함께 공황장애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윤 양처럼 학업 중도 포기 등으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을 ‘학교 밖 청소년’이라 부른다.

그런 윤 양이 공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보육원 자립지원전담요원인 사회복지사 한준수 씨(31)와 후원자들이 있었다.

“저를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써주신 선생님들과 후원자님을 생각하며 잡생각이 들지 않게 더 열심히 더 많이 공부했어요. 후원자님의 선한 영향력을 항상 기억하며 앞으로 더 성장하고 싶어요.”

공부하는 윤시은(가명) 양의 모습. 사진=이랜드복지재단 제공

한 씨는 윤 양이 홀로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학업을 포기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청소년문화센터 검정고시 학원을 통해 윤 양이 학업을 지속하도록 도왔다. 하지만 윤 양은 많은 학생들과 한 공간에서 수업을 받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학원도 그만두게 됐다. 한 씨는 위기 가정 응급 지원 사업인 이랜드복지재단의 SOS위고를 통해 윤 양이 1:1 개인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윤 양은 6개월간 꾸준한 노력 끝에 마침내 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시은(가명) 양과 SOS위고 현장 매니저의 상담 모습. 사진=이랜드복지재단 제공

현재 윤 양은 직업훈련 학원에서 네일아트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열심히 하루를 살고 있다. 보육원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든든한 후원자들의 도움 덕분에 진로를 찾아가고 있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시은(가명) 양의 모습(왼쪽)과 시은 양의 감사 편지. 사진=이랜드복지재단 제공

보육원에는 윤 양과 같이 학업에 대한 의지가 있지만, 심리적인 불안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방임, 학대, 유기, 경제적 이유 등으로 보육원에 입소한 아이들은 일반 가정과 다르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씨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아동들은 입소 후에 치료를 받는데, 바로 눈에 띄게 좋아지지는 않는다”며 “일반 가정 아이들처럼 생활하고 자랄 수 없다는 점이 보육원 내 아동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보육원 아이들에겐 관심과 사랑이 가장 중요”
보육원 청소년들이 고민하는 부분은 다양하다. 중학생들은 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반면, 고등학생들은 자립에 대한 고민이 많다. 보육원생들은 일반적으로 만 18세가 되기 전 자립 준비를 시작한다. 아동양육시설,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직후 또는 보호기간 연장 후 보호가 종료돼 홀로서기에 나서는 청년들을 ‘자립준비청년’이라고 부른다. 자립에 나서기 전 보육원 내 청소년들은 불안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한준수 복지사가 자립지원교육 후 에덴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본인 제공
한 씨는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수동적인 편이다 보니 진로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확신이 없다”며 “그래서 우리 보육원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진로 탐색을 할 수 있도록 돕고,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에덴보육원에서 자립에 대한 전반적 업무를 맡고 있다.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금융, 주거, 경제 등 분야를 돕는다. 퇴소 후 청년들까지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한다. 홀로 선 청년들이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고립된 청년들을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그는 보육원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일반 가정하고 보육원은 환경적 차이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비슷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많다고 한다. 한 씨는 “우리 보육원은 아이들을 양육하는 선생님이 총 세분이 있다. 한 분이 7명 정도를 양육하는 셈”이라며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다양하겠지만, 원초적인 거는 관심과 사랑”이라고 했다.

한준수 복지사가 지원사업 간담회 후 영화관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본인 제공

그러면서 “일반 가정은 엄마 아빠가 한두 명씩 관심과 사랑을 집중적으로 줄 수 있지만 우리는 아이들 개개인에게 관심을 주기 힘든 환경”이라고 토로했다.

또 생활지도원 분들이 자주 바뀌는 점도 아이들이 정서적 안정감을 찾을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는 “자신이 의지하고 엄마 아빠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바뀐다면 아이들이 당연히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잘 해내는 보육원 출신 청년들 볼 때 가장 뿌듯”
한 씨는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했고, 동네에 보육원이 있어 친구들이나 지인들 중에 자립준비청년을 많이 봐왔다. 그 친구들을 보다 보면, 사회에서 고립되고 나서 주변에 절대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한준수 복지사가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자립지원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한 씨는 보육원에 입사한 뒤 자립준비청년에 가장 많이 관심을 가졌고, 이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것에 우선순위를 뒀다. 그러던 중 한 자립준비청년을 만났다. 그는 움직이기만 해도 각질이 떨어지는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아토피를 겪고 있었다.

한 씨는 “환절기 때는 증상이 심해져서 집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던 친구였다”면서 “안 되겠다 싶어서 SOS위고 통해 치료받게 했다. 3개월 동안 데리고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는데 눈에 띄게 너무 효과가 좋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본인 스스로 병원도 잘 다니면서 자신감도 얻고, 현재는 구직활동도 해서 취업한 상태”라며 “근본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자립준비청년들이 스스로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회상했다.

아이들과 함께 음악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한준수 복지사의 모습. 사진=본인 제공
한 씨는 “현재 보호받고 있는 아이들과 퇴소한 아이들이 완전한 자립을 하는 것이 목표”라며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 직업적 역할 그리고 사회적 책임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아이들이 꿈꾸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김예슬 동아닷컴 기자 seul56@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