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나이브하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래 뜻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나 사람들이 쓰는 말을 들어보면 썩 좋지 않은 뜻임을 알 수 있다.


‘블라인드'에 누군가 나이브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물었고, 댓글이 인상 깊었다.

아마 싫은 말도 돌려서 하는 한국 사람들이 안 좋은 말을 좋게 해준게 아닐까. 배려였을지도, 돌려깐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오늘날은 일하는 태도가 너무 나이브한거 아니냐는 비난의 논조로 곧잘 쓰인다. ‘너무 설렁설렁하는거 아니냐'쯤 되시겠다.
물론, 사람에 대한 비난이기보다는 보통 사안에 대한 피드백이겠지만 어쩐지 찔리는 말이다. 도전적으로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여기서 도전적인 건 성과를 말한다. 대개의 경우 도전적인 성과를 내지 않으면 과정도 도전적이지 않은게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유독 부족한 DNA가 있다면 승부욕이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저 사람을 꺾고 1등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잘하고 싶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싶진 않고,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학부 시절 ‘보랏빛 소가 온다’를 읽고 나서는 나는 항상 보랏빛 소가 되기를 바랐다. 다른 사람과 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길을 유유히 걸으며 성실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대개 정면승부를 피했었다. 회사에 다닐 때도 생계형 창업에 뛰어들었을 때도, 어디에나 승부사들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바닥에서 나의 생각은 종종 나이브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의 일본과의 경기를 라이브로 봤는데, 연경 선수의 눈빛이 그렇게 이기고 싶어할 수가 없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 물었다. 나는 무언가를 저렇게 원해본 적이 있었을까. 내일이 안 올것처럼 오늘에 모든 것을 다 걸고 이겨본 적이 있을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이기고 싶은 날엔, 연경신의 도쿄전 하이라이트 영상을 다시 보곤했다. 물론 여전히 그렇게 이기고 싶은 순간은 잘 없었지만, 클라이언트에게서 원하는 바를 얻어야 할 때, 일이 너무 많아서 다 해낼 엄두가 나지 않을 때, 이 영상은 나에게 호랑이 기운을 주었다.

원래 이기고 싶은 마음이 안드는데 어떻게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연경신같은 멋진 이들을 보면서 나도 나름대로 규칙을 세워보았다. 내가 그린 경기장 안에서만 이기자고. 늘 이기는 삶을 살 수도 없고, 늘 이기기 위해서 사는 인생도 행복하진 않을테다. 다른 동물을 잡아먹어야 사는 육식동물도 있지만 초원의 널린 풀을 뜯으며 사는 초식동물도 있다.
하지만 백넘버를 달고 트랙에 올라서는 순간만큼은 초식이고 육식이고 똑같은 룰을 바탕으로 순위가 결정된다. 그때만큼은 이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인생에서 우리가 치르는 경기는 짧고, 선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언제인지를 잘 알아차리고, 경기의 순간에 잘 임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내 삶에서 경기란 한 편의 잘 만들고픈 영상일 수도 있고, 어떤 낯선 업무의 의뢰일수도 있다. 하반기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일 수도 있다. 그 순간만큼은 연경신에 빙의해서 외치고 싶다. 멋진 결과를 만들고 싶은 어떤 경기에서만큼은 힘을 아끼지 말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자고.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


불완전하지만 뚜벅뚜벅 제 길을 가는 모든 이를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