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의 '30년 집념'…미국 두부 시장을 휩쓸다
와일드우드·나소야 인수로 메인스트림 진출
내년 보스턴서 세계 최대 생산라인까지 가동

풀무원이 1995년 LA에 두부 공장을 세웠을 때만 해도 미국 시장 진출은 모험에 가까웠다. K푸드 열풍은 커녕 한식 자체가 낯선 시절이었다. 당시 미국에 진출한 한국 식품기업 자체가 드물었고 현지 공장까지 세운 곳은 더욱 찾기 힘들었다.
그로부터 30년. 풀무원은 미국 두부 시장의 70%를 차지하며 10년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월마트, 코스트코, 홀푸드마켓 등 미국 전역 어디서나 풀무원 두부를 만날 수 있다. 내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두부 생산라인도 가동한다. 김석원 풀무원USA 마케팅본부장에게 30년 현지화 전략의 성공 비결과 미래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풀무원의 도전
풀무원이 미국에 처음 진출한 것은 1991년이다. 그 해 미국법인을 세운 후 불과 4년 만인 1995년 LA에 두부공장까지 지었다. 김 본부장은 "1981년 설립된 기업이 불과 14년만에 미국에 공장까지 세운 것은 창업자의 대담한 모험심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10년도 지나지 않은 2004년 풀무원은 또 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미국 유기농 식물성 식품 브랜드 '와일드우드(Wildwood)'를 인수하며 메인스트림 시장 진입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당시 대부분의 한국 식품기업들이 교민 시장에 집중하고 있을 때 더 큰 소비 기반을 가진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면서 "와일드우드를 통해 풀무원의 기술력을 더한 제품을 미국 전역의 주류 유통망에 진입시키면서 '메이저리그 진출'의 신호탄이 됐다"고 설명했다.

다시 10여 년이 흐른 2016년. 풀무원은 두부 브랜드 '나소야(Nasoya)', '아주마야(Azumaya)'를 보유한 기업 '비타소이'를 인수하며 시장 지배력을 단숨에 확대했다. 나소야와 아주마야는 미국 동부를 기반으로 한 미국 1, 2위 두부 브랜드였다. 이 인수를 계기로 풀무원은 2016년부터 현재까지 10년 연속 미국 두부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역시 풀무원에게는 기회가 됐다. 외식이 줄고 내식이 늘면서 건강하고 신선한 단백질 식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유통기한이 짧고 신선함이 중요한 두부 제품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며 "풀무원은 이를 빠르게 감지하고 캘리포니아주 풀러튼 공장 확장과 생산라인 증설에 즉시 투자, 쏟아지는 수요를 100% 소화했다"고 말했다.
이때의 증설은 풀무원이 미국 두부 시장에서 약 70% 점유율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됐다. 현재 풀무원 제품은 월마트, 코스트코, 크로거, 홀푸드, 알디 등 미국 전역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한식·두부를 더 친숙하게
풀무원이 미국 두부 시장에서 10년 연속 1위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제품 전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풀무원은 두부에 익숙한 기존 소비자를 대상으로는 품질을 강화한 제품을, 두부가 생소한 신규 소비자에게는 편리성을 강화한 제품을 제안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두부는 아시아 음식 중에서도 미국 시장에 가장 먼저 소개돼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면서 "하지만 대부분의 두부가 물에 담긴 '워터팩' 형태였기 때문에 미국 소비자들은 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 익숙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풀무원이 선보인 제품이 바로 '슈퍼펌(Super Firm) 고단백 두부'다. 이 제품은 트레이와 물이 없어 치즈와 포장, 형태가 유사하다. 풀무원은 여기에 양념을 더해 바로 섭취 가능한 제품도 선보였다. 그는 "별도의 조리 없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이 제품은 두부의 접근성을 크게 높였고 두부 시장의 저변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균형 잡힌 유통 전략 역시 풀무원이 미국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비결이다. 많은 아시아 식품 기업들이 코스트코 같은 대형 채널에 집중하는 반면, 풀무원은 대형 유통채널, 회원제 창고형 매장, 슈퍼마켓 체인, 아시안 마트 전반에 걸쳐 입점해 있다. 김 본부장은 "코스트코는 대량 판매로 단기 볼륨은 크지만, 시즌별 운영 제품이 많아 변동성이 크다"면서 "풀무원은 다양한 채널에 고르게 유통망을 확보해 채널 리스크를 분산하고 안정적인 물량 운영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미국 현지 기업 인수로 구축한 촘촘한 포트폴리오도 풀무원 미국 두부 사업의 강점이다. 미국 동부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진 나소야 브랜드를 활용해 김치, 냉장 만두, 만두피, 냉장면 등 다양한 아시아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와일드우드는 홀푸드마켓 등 프리미엄 시장을 타깃으로 한다. 아주마야는 월마트 등에서 합리적인 가격대를 원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중저가 브랜드다. '본체'인 '풀무원' 브랜드 역시 2020년부터 미국 주류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K콘텐츠의 힘
최근 K콘텐츠와 K푸드의 인기도 풀무원 미국 사업에 날개를 달아줬다. 김 본부장은 "지금 미국에서는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한국 드라마의 시청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K팝의 영향력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밝혔다. 이런 콘텐츠들에서 한국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면 실제로 맛을 보고 싶은 소비자들은 H마트를 찾는다고 한다. 그는 "H마트 푸드코트에서 소비자가 짜장면을 즐긴 후 이어서 풀무원 짜장면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는 모습을 보면 '드라마 시청→외식 경험→가정 내 구매'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유통 채널 바이어들의 관심도 높다. 김 본부장은 "지금은 미국 주요 유통 채널의 바이어들이 H마트를 직접 방문해 '이 제품을 우리 매장에서도 취급하고 싶다'며 사진을 보내올 정도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풀무원은 이런 흐름을 한식 문화 확산의 기회로 보고 있다. 이에 풀무원은 미국 내에 한식이 더 뿌리 내리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등 미국 내 영향력 있는 대학이나 요리학교와 협업해 한식과 두부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오는 11월에는 '요리학교의 하버드'라고 불리는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두부 요리 챌린지'도 개최할 예정이다.
김 본부장은 "'오늘 한식 먹으러 갈래?'가 아니라 '오늘 순두부찌개 먹으러 갈래?'라고 말하는 순간이 진정한 한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한식이 미국인들의 삶 속에 녹아드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착"이라고 강조했다.
풀무원은 미국 사업의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다. 현재 두부의 가정 침투율이 약 8% 수준으로 초기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는 "두부의 가정 침투율이 1%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시장 규모가 약 5000만달러(한화 약 700억원) 확대된다고 추산한다"며 "침투율이 50%에 도달할 경우 2조원 이상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쟁 대신 '개척'
풀무원USA는 중장기적으로 미국 내 두부 가정 침투율을 20%까지 확대해 두부 시장 규모를 1조원까지 키운다는 목표다. 김 본부장은 "종종 '한국이나 일본의 다른 아시안 기업과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지만 우리의 목표는 작은 파이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미개척지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직 미국 내 한식과 두부의 가정 침투율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풀무원은 다른 아시안 기업과 경쟁하기보다 더 큰 시장을 함께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풀무원은 내년 1분기를 목표로 동부의 보스턴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이 증설이 완료되면 시간당 9000모의 두부를 생산할 수 있는 '하이퍼라인(Hyper Line)'이 완성된다. 김 본부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두부 생산라인"이라면서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와 유럽 시장으로의 수출 확장을 위한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에는 기존 기본 두부 제품에서 한 단계 진화한 '레디밀(Ready Meal)' 형태의 두부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 본부장은 "소비자들이 두부를 보다 쉽고 친숙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고 미국 내 두부 시장 전체의 지속적인 성장과 확대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풀무원은 향후 B2B 채널로의 확장도 계획 중이다. 김 본부장은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외식이나 메뉴를 통해 두부를 처음 접한다"며 "풀무원은 B2B 시장에 진입해 브랜드 인지도뿐 아니라 두부 시장 전체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풀무원USA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식품 국가대표로서 한식을 알리고 우리의 글로벌 후손들이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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