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소비 급감에 실적 직격탄…주류업계, 구조적 위기 '빨간불'
업계 “해외시장 공략·신사업 모색 나설 방침”…실적 회복 ‘미지수’

[스포츠한국 김나연 기자] 국내 주류산업이 '불황'이 아니라 '구조적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내수 침체와 경기 둔화, 소비 위축이라는 복합적인 악재에 더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절주·금주 문화가 확산되면서 산업 전반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는 모습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진단이 나오는 가운데, 업계는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해외 시장 공략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9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주류 카테고리별 매출은 전반적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주 매출은 85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 줄었다. 맥주와 와인 매출도 각각 31.1%, 10.8% 급감했다. 스피리츠와 청주 역시 각각 32.7%, 1.1% 줄며 하락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캔 하이볼 등 RTD(즉석음료) 제품의 경우 41억원에서 49억원으로 매출이 늘어나며 침체된 주류 시장에서 유일하게 성장세를 나타냈다.
주류 산업의 부진은 곧 업계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롯데칠성음료 주류 부문은 지난해 영업이익 282억원으로, 전년 대비 18.8% 감소한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4분기에는 28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전환했다. 주류 전 부문의 판매량이 줄어든 가운데, 국내 맥주 매출은 전년 대비 31.1% 급감한 102억원에 그쳤다.
하이트진로 역시 부진을 피하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2조4986억원, 연간 영업이익은 1721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3.9%, 17.3% 감소했다.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하이트진로의 맥주 사업이 4분기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매출이 10% 가까이 줄면서 고정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국내 맥주 점유율 1위 오비맥주는 아직 실적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실적 악화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주류 소비 감소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내 주류 출고량은 2015년 약 407만kL에서 2024년 약 315만kL로 22.6% 급감했다. 지난해 국내 주류 시장은 5% 넘게 역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음식점과 주점 점포 수 역시 전년 대비 약 10% 감소해 주류 소비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는 내수 침체를 원인으로 보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소비 트렌드 변화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건강을 중시하는 '헬시플레저'와 '논알코올·무(無)알코올'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며 술 자체를 멀리하는 흐름이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살아난다 해도 주류 매출이 회복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기존의 소맥(소주·맥주) 중심 사업 구조로는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 수출 확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산 주류 수출액은 3억6757만달러로 전년 대비 2.29% 감소했다. 주종별로 보면 소주 수출 감소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소주 수출액은 9652만달러로 전년 대비 7.3% 줄었다.
연도별 주류 수출액은 2022년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2021년 3억8967만달러에서 2022년 4억3148만달러로 증가했지만, 2023년 4억532만달러를 기록하며 감소세로 전환했다. 2024년 3억7617만달러, 지난해 3억6757만달러로 역성장이 지속되고 있다.
한 소주업계 관계자는 "'K소주' 인기가 높아졌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주요 해외 시장에서는 주종·가격·유통 경쟁이 심화되며 성장세가 둔화됐다"며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업계 내부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류 수입액도 감소세를 보였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1년 14억538만달러에서 2022년 16억2386만달러로 급증했으나,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2023년 14억9613만달러로 줄어든 후, 2024년 13억8100만달러, 지난해에는 13억1311만달러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코로나19 이후 혼술·홈술 트렌드가 급부상하며 주류 수입이 늘었음에도 단체 회식·모임이 줄어들면서 수요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이와 더불어 내수 부진, MZ세대의 음주 문화 변화 등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확산된 '헬시플레저' '저알코올·무알코올' 문화로 주류 소비 패턴이 변화한 데다, 경기 침체와 회식 감소가 맞물리면서 국내 주류 산업 전반이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팬데믹을 거치며 기성세대부터 젊은 세대까지 '저녁이 있는 삶'의 소중함을 체감하게 됐다"며 "퇴근 후 저녁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불필요한 술자리를 피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 주류 소비가 크게 위축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약한 술'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늘고 있는 모습이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에 따르면 수입 주류 매출 가운데 하이볼 비중은 2022년 8.3%에서 2024년 38.6%로 크게 확대됐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재정경제부(재경부)는 최근 저도수 증류주에 대한 주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재경부에 따르면 오는 4월부터 2028년 12월까지 알코올 도수 8.5도 이하이면서 불휘발분이 2도 이상인 증류주에 대해 주세를 30% 감면하기로 했다.
그러나 국내 주요 주류업계의 수혜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하이트진로는 감면 대상에 해당하는 제품이 없고, 롯데칠성음료는 위스키 브랜드 '스카치블루'를 이용한 하이볼 '스카치하이 레몬'과 '스카치하이 진저라임'만 감면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나 매출 비중이 미미한 만큼 실질적인 도움이 되진 않을 전망이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저도수 주류의 성장 흐름을 반영한 정책이지만, 전통 주류 비중이 높은 국내 업체들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편의점업계에 따르면 CU에서 판매 중인 하이볼 가운데 주세 감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은 약 70종이다. 세븐일레븐은 하이볼 30종, GS25는 7종이 감면 대상에 포함됐다.
업계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저도수 주류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 GS25에서 판매 중인 '소비뇽레몬블랑하이볼'은 매출의 80%가 20~30대 연령층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20~30대 사이 가볍게 즐기는 음주 문화가 확산되는 만큼 주세 감면으로 하이볼 가격이 내려간다면 수요 확대는 물론 신규 유입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류업계 안팎에서는 올해 역시 '버티기'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로운 돌파구 모색에 나섰지만 현실은 쉽지 않은 분위기다. 하이트진로는 베트남 공장 건설 등 해외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으나, 매출 비중은 아직 크지 않아 실적 개선을 이루기엔 무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칠성음료도 올해 해외 비중 확대와 원가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주류업계가 단순한 제품 라인업 확장이나 사업 다각화를 넘어 근본적인 체질 전환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주류 소비 심리가 쉽게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과거의 성공 공식을 고수하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주류업계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재정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소주업계 관계자도 "기존 소맥 중심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체질 개선과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침체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스포츠한국 김나연 기자 yeonpil@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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