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계기 흑해가 나토 초점으로 부상
기사내용 요약
튀르키예·루마니아·불가리아 등 흑해 연안국
코카서스·중앙아 에너지 전 세계 수출 통로
우크라 전쟁 흑해 연안지역까지 확대 일로 등
루마니아 NATO 외무장관 회담 주요 의제로 부상
튀르키예 진입 통제로 NATO 전함 진출 어려워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대서양을 사이에 둔 북미 지역과 유럽의 안보를 담당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초점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변방이던 흑해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접해 있는 흑해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 전장(戰場)으로 변했다. 2014년 러시아가 합병한 크름반도는 흑해 깊숙이 돌출돼 있으며 러시아는 이곳에 상당한 함대 전력을 배치하고 있다.
2008년 러시아가 침공했던 조지아도 흑해의 동쪽 연안 국가다. 나토 회원국인 루마니아, 불가리아, 튀르키예도 흑해의 서쪽과 남쪽에 접해 있다. 튀르키예는 특히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수로를 통제한다. 코카서스 지방과 중앙아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흑해를 통해 유럽과 전 세계로 수출된다.
이날 루마니아에서 열린 나토 외무장관회담에서 흑해 안보가 직·간접적으로 중심 의제가 되고 있다. 루마니아가 회담을 개최하는 건 나토의 초점을 끌려는 의도가 있다.
유럽과 미국의 많은 정치인과 전략가들이 흑해를 더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흑해가 나토의 장기 전략에 중요 지역으로 포함된 것은 지난 6월이 처음이며 클라우스 이오한니스 루마니아 대통령은 28일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 점을 강조했다.
전 나토 총사령관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예비역 해군 제독은 “수많은 동맹국, 협력국, 적국이 흑해에 몰려 있고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하며 핵심 곡물수출로인 이곳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감안할 때 흑해는 나토 안보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면서 흑해의 많은 지역을 통제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항구를 봉쇄해 곡물 수출을 차단하고 흑해의 전함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오데사항 등 우크라이나 도시를 공격했다.
우크라이나도 흑해함대 기함인 모스크바 순양함을 침몰시키고 전쟁 초기 러시아군 점령한 전략 요충 뱀섬을 탈환하는 등 반격했다.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거세지자 러시아가 흑해함대를 크름반도와 먼 바다로 후퇴하면서 전쟁에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달 우크라이나는 크름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케르치대교를 폭파해 러시아의 보급능력을 약화시켰다.
이어 유엔과 중동 지역 국가들의 외교적 압력을 받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출 통로를 재개하는데 동의했다.
미국은 흑해에서 러시아의 군사력과 맞서는 것을 회피해왔다. 공해상에서 전함 사이의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하거나 미국 및 나토가 참전하게 되는 것을 우려해서다.
나토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 이래 흑해 진출을 확대해왔다. 미국과 프랑스의 첨단 정찰기들이 정기적으로 정찰하고 있으며 최근 프랑스가 주도하는 나토의 공수훈련이 이곳에서 실시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난 2월 당시 흑해 연안국이 아닌 나토 회원국 전함은 흑해에 1척도 없었으며 이후에도 없다. 이는 튀르키예가 전쟁 초기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해협을 흑해에 항구가 없는 나라의 전함이 통과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1936년 체결된 몽트뢰 조약에 따른 튀르키예의 조치는 러시아가 흑해 함대를 증편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토 회원국들도 전함을 파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일부 회원국들이 분노하고 있다.
몽트뢰 조약은 흑해연안국이 아닌 나라의 전함의 진입을 일정 t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이 조약 덕분에 합법적으로 흑해 접근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조약을 신성불가침 대상으로 삼고 있다. 다수 여론이 서방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튀르키예에서 이 조약을 침해하는 건 국내 정치적으로도 큰 논란의 대상이다.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9일 루마니아 외교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양자관계와 나토 차원에서 흑해 전략을 알리고 강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의 한 보좌관은 동유럽 나토 회원국들의 안보를 강화하면 흑해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당장이라도 전쟁을 끝내면 흑해의 안보가 다시 복원된다며 나토가 직접 개입하는 방안을 거론하는데 반대한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함을 격침하고 세바스토폴항 흑해 함대를 공격한 것이 러시아 해군의 경각심을 높였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흑해가 더 안전해진 것은 전혀 아니다. 미 국무부 한 고위 당국자는 우크라이나 지상군이 키이우, 하르키우, 헤르손에서 승리하면서 전쟁이 우크라이나 영토에만 머물지 않고 “흑해 연안이 전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의원들은 미 정부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튀르키예가 흑해 진입을 차단하기 전에 미국이 전함을 파견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면서 미 정부가 흑해 전략을 제시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 달 발표된 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태평양과 인도양에서의 중국의 위협에 초점을 맞추고 흑해는 언급하지 않았다.
흑해 연안국인 조지아는 최근 몇 년 새 친미적이 됐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로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조지아는 우크라이나, 몰도바와 함께 지난여름 유럽연합(EU) 가입신청서를 냈으나 두 나라와 달리 가입 신청국 자격을 받지 못했다.
로저 위커 미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이 튀르키예를 압박해 나토의 구축함을 흑해로 진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기가 작은 구축함을 보내는 건 몽트뢰 조약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흑해를 운항하는 상선에 대한 러시아 잠수함의 위협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튀르키예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역적 야심이 큰 튀르키예는 나 회원국이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를 위해 노력해왔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튀르키예 외교장관은 29일 루마니아에서 “튀르키예는 전쟁 지역의 안보와 안정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6함대 사령관 출신 제임스 포고 예비역 해군 제독은 나토가 흑해에 진출하는 방법으로 소해함과 소해항공기로 구성된 기뢰제거부대를 파견하는 것을 제안했다.
지난 9월 루마니아 소해함이 다뉴브강 하구에서 기뢰를 폭파시킨 사건이 큰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다뉴브강은 유럽 6개국을 통과하는 강이다.
포고 제독은 또 루마니아에 대함 미사일을 지원하고 다뉴브강 통과 국가들과 전함 파견을 협상하는 방안도 있다고 제시했다.
전략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흑해의 안보를 확보하는 것이 어렵고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스타브리디스 제독은 “궁극적으로 전후 협상이 시작되면 흑해의 관할권과 해상 통로 및 통신, 항구 접근 문제 등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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