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츠 말고 소설! 짧고 굵고 재밌는 ‘3분 소설’ 어때?
‘숏츠’ 대신 소설 읽자. ‘짧고 굵은’ 3분짜리 소설. 지난해 9월~12월 국내 대표 작가 15인이 연재한 문화일보 ‘소설, 한국을 말하다’ 시리즈다. 소설을 신문의 장으로 끌어와 문단과 독자의 호응을 얻은 기획은 AI, 돌봄노동, 사교육, 저출생, 반려식물 등을 주제로 15편의 소설을 선보이며 한국 사회와 한국인, 한국적 현상을 고찰했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2033’을 시작으로 이승우(돌봄노동), 은희경(SNS), 조경란(가족), 김연수(집중), 이기호(사교육), 김금희(반려식물), 곽재식(AI), 정보라(타투) 등 문단에서 가장 활발한 작가들이 ‘우리’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오는 19일 새로운 작가들과 시즌 2를 연다. 정이현, 최진영, 손원평, 천선란, 김혜진, 배명훈, 김동식 등 탁월하고 꾸준한 중견 작가뿐만 아니라 신선한 시각과 시도로 문단에 활기를 불어넣는 젊은 작가들도 대거 참여한다. 각자의 충만한 감각으로 ‘지금, 여기’를 소설로 풀어낼 예정. 시즌 2를 기대하며, 시즌 1을 정주행 할 시간이다.
◇한국인을 무엇으로 사는가…정주행의 시작은 장강명= 장강명 작가의 ‘소설 2033’은 근미래 한국을 배경으로, 우리를 이끌고, 또 몰아세우는 ‘K-정신’에 대해 묻는다. 2033년은 달라질까. 소설 속에선 여전하다. 특히, 화합을 위한 ‘공통의 감각’이 사라져 저마다 극단으로 치닫는다. 소설은 자조적이고 냉소적이지만 장 작가는 우리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라고 했다. "세상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한 번도 접은 적이 없다"는 작가는 ‘지금’, "우리 하기 나름"으로 빚어질 ‘우리’를 예측하고 기대한다.
◇‘나’를 잃어가는 일상…삶의 진정한 의미를 좇는 은희경·김연수= 은희경 작가의 ‘고독의 연대’는 디지털화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모든 일상을 디지털로 해결하는 딸 두 사람을 내세워, 소통채널이 늘어났지만 소통이 부재한, 시대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한다. 은 작가는 15년째 SNS를 하고, 검색, 쇼핑, 메일, 게임, 건강 체크에 스마트폰을 이용한다면서 "그로 인한 현상과 장단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고 했다.
김연수 작가의 ‘어쩌면 영영, 아마도 영영’은 삶의 주도권과 집중을 잃고, 행복을 빼앗기는 현대인들을 꼬집는다. 김 작가는 이를 비행기의 ‘오토파일럿’에 비유한다. 열심히 돈 벌어 비행기에 타서는 내내 잠만 자는 꼴이다. 삶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소설가도 마찬가지. 김 작가는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창의력 강의를 하고 있었다면서 "소설을 쓰고 싶으면 제일 먼저 소설을 써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21세기 가족, 사랑과 의무 사이… 이승우·정지돈·조경란= 이승우 작가의 ‘의무와 사랑’은 초고령 사회를 눈앞에 둔 한국의 돌봄 문제와 노년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소설 속 딸은 치매 걸린 엄마가 힘겨워 ‘사랑이 모자란 것’이라 자책하고, 가족에 상처가 있는 이복오빠는 오히려 안정적으로 엄마를 돌본다. ‘사랑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이 작가는 "믿을 수 없는 건 ‘사람의 감정’"이라면서 돌봄에 대한 시선 전환과 사회적 차원의 접근을 강조한다.
정지돈 작가의 ‘가족의 방문’은 생식과 출산을 기계로 해결하게 된 가상의 세계를 그린다. 국가가 인공 자궁 시스템을 이용해 아이들의 출생을 관리하자 가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출생아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작가는 가족을 ‘서로 사랑하고 살해하고 증오하고 애정하고 억압하고 통제하고 집착하는 병적인 관계’로 묘사한다. 그러면서 "저출생 문제도 가부장제 등 한국의 가족 제도가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을 "내 소설 쓰기의 영원한 주제"라고 말하는 조경란 작가는 ‘금요일’에서 가족의 의미가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아픈 엄마를 간병하는 소년, 그 뒤를 살피는 송 씨, 40대 아들과 그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노부부 가족을 떠올리며 ‘잘 지내고 있으려나’ 하는 송 씨 아내의 중얼거림…. 조 작가는 " 위험 사회 속 부족한 구성원들이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며 조용히 저녁 한 끼 같이 먹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고 전했다.
◇‘갓생’? 버티기도 힘겨운 청춘… 이서수·김멜라·김화진= 이서수 작가는 지출을 공유하고 절약을 유도하는 커뮤니티 ‘거지방’을 소재로 한 소설 ‘우리들의 방’을 선보였다. 이 작가는 거지방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마음이 그리고 싶었다면서 "어떤 오기와 절실함을 느꼈다. 그것이 시대적 상황을 어떻게든 뛰어넘으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김멜라 작가의 ‘마감 사냥꾼’은 솟구치는 물가로 인해 치열한 생존 경쟁에 내몰린 한 젊은 연인의 장보기 일상을 그렸다. 김 작가는 "끊임없이 계산하고 판단해야 하는 교환 행위와 그 속에서도 결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김화진 작가의 ‘빨강의 자서전’은 번아웃에 시달리는 직장인 ‘우연’이 위와 식도를 괴롭히며 시뻘건 음식에 중독된 모습을 그린다. 김 작가는 우연의 모습과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비슷한지 어떤지 궁금한 마음에 쓰게 됐다"고 했다.
◇SF 작가들이 바라본 한국… 정보라·곽재식= 정보라 작가의 ‘낙인’ 속 인물들은 피해지이면서도 피해자로 남을 수가 없다. 불량 제품을 판매한 사람들을 신고하러 찾아간 경찰서에선 "도대체 문신 같은 걸 왜 했냐"는 핀잔을 듣고, 심지어 가족과 친구들마저도 "애초에 문신을 안 하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 ‘데모하는 소설가’라고 불리는 정 작가는 소설로 이러한 현실을 고발하고, 동시에 자신이 늘 싸우는 이유를 설명한다.
공학자이면서 소설가인 곽재식 작가는 ‘제42회 인공지능 문장 생성사 자격 면허 시험’에서 앞으로 인공지능(AI)이 어떻게, 얼마나 인간을 대신하게 될지 상상한다. 곽 작가가 그린 미래에서 소설가들은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고 문장 생성 AI를 작동시킬 수 있는 면허를 딴다. 그들이 AI를 관리·감독할 자격을 얻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세태를 풍자한 소설은 줄곧 실소를 자아낸다.
◇ 삭막한 도시의 생존법을 전하는 김금희= ‘식물 집사’로 잘 알려진 김금희 작가는 ‘풀의 전략’에서 그동안 발견하고 아껴온 식물의 방향과 태도를 등장 인물 ‘풀’에게 투영시킨다. 그것은 "절대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면서 살기 위해 끝까지 다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바로 풀의 전략인 셈이다. 김 작가는 그러한 식물, 그러니까 소설 속 ‘풀’의 전략이 우리 인간에게도 필요하다고, 함께 살기 위해서 어떤 온도, 태도, 연대가 필요한지를 함께 돌아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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