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L 슈퍼볼이 끝났다. 미식축구의 폐막은, 야구의 개막이 다가왔다는 신호다. 현지에서도 "Now it’s baseball season", 'It's baseball's turn"이라고 말한다. 겨울잠에 들었던 야구가 서서히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한다.
당장 다음주부터 시범경기가 열린다. 3월 중순 일본 도쿄 시리즈를 치르는 다저스와 컵스는 다른 팀들보다 빨리 스프링캠프를 소집했다. 두 팀의 시범경기가 우리시간 2월21일이다. 다른 팀들도 이틀 뒤인 2월23일부터 시범경기를 시작한다.
모두가 본격적인 개막 맞이로 분주하다. 그런데 아직 행선지를 정하지 못한 선수들이 있다. 최대어 중 한 명이었던 알렉스 브레그먼도 여전히 미계약자 신분이다. 관심을 가질만한 주요 선수들을 알아봤다.
알렉스 브레그먼(30)
브레그먼이 좋은 선수인 건 누구나 알고 있다. MVP 2위였던 2019년으로는 돌아가지 못해도 타석에서 생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지난해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3루수비도 강점이다. 공격과 수비가 균형 잡힌 덕분에 승리기여도도 잘 쌓았다. 지난 3년간 <팬그래프> 승리기여도 14는 아메리칸리그 10위에 해당한다.
리더십도 뛰어나다. 조지 스프링어, 카를로스 코레아 등이 휴스턴을 떠난 뒤 팀의 중심을 잡아준 선수가 브레그먼이다. 지난해 헌터 브라운에게 싱커를 권유하면서 브라운을 한 단계 발전시킨 일화는 브레그먼의 영향력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브레그먼은 생각보다 인기를 끌지 못했다. 여러모로 하락세가 눈에 띄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시카고 컵스와 보스턴, 디트로이트가 접촉 중이지만, 눈높이를 맞춰준 팀은 나오지 않고 있다.
브레그먼은 휴스턴의 6년 1억5600만 달러 연장 계약을 거절했다 당연히 그 이상의 규모를 바란다. 그러나 시장에서 평가하는 브레그먼의 가치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컵스는 브레그먼과 단기 계약을 바라고 있는데, '브레그먼을 놓치면 저스틴 터너로 선회한다'는 플랜B까지 알려졌다. 최후 통첩을 날린 셈이다.
고자세를 이어오던 피트 알론소는 결국 백기를 들고 뉴욕 메츠에 잔류했다. 개막이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구단의 편이다. 브레그먼은 알론소보다 활용도가 높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한다. 계약이 늦어질수록 불리해지는 건 브레그먼이다.
한편, <ESPN> 버스터 올니는 "브레그먼의 계약이 조만간 발표될 것"이라고 전했다.
닉 피베타(31)
피베타는 커리어 내내 쉽지 않은 도시에서 뛰었다. 첫 4시즌은 필라델피아, 최근 5시즌은 보스턴이다. 정신적으로 무장이 잘 되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타격이 강한 AL 동부지구에서 생존력을 보여준 점도 플러스 요소다.
피베타는 2022-23년 연속 10승 시즌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성적은 6승12패 ERA 4.14였다. 다승으로 투수 능력을 판별할 수는 없지만, 통산 승률도 5할이 되지 않았다(56승71패 .441).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경기에 내보내는 건 무리가 있다.
피베타는 지난해 9이닝 당 피홈런이 1.73개에 달했다. 이는 AL 동부에서 뛴 사실을 참작해야 한다. 또 탈삼진 투수답게 정면 승부를 즐겨해서 홈런은 내줄 수밖에 없었다. 옮기는 팀이 어떤 구장을 쓰는지에 따라 피홈런 문제는 완화될 수 있다. 피홈런을 중립화해서 계산한 xFIP는 3.50으로, 피홈런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준수한 투수였다.
2023-24년 9이닝 당 최다 탈삼진
12.01 - 블레이크 스넬
11.69 - 타일러 글래스나우
11.24 - 크리스 세일
11.08 - 닉 피베타
*250이닝 이상
팀들이 주저하는 이유는 있다. 피베타는 며칠 뒤에 32세가 된다. 잦은 부상으로 인해 규정이닝을 넘긴 시즌도 2018년(164이닝)과 2022년(179.2이닝) 두 번뿐이다.
결정적인 족쇄는 퀄리파잉 오퍼다. 원 소속팀 보스턴은 피베타의 이번 시즌 연봉 2110만 달러를 보장하는 퀄리파잉 오퍼를 날렸다. 그럼으로써 피베타가 다른 팀과 계약하면 경쟁 균형 B라운드와 3라운드 사이에 주어지는 드래프트 보상 지명권을 얻게 된다. 반대로, 피베타를 데려가는 팀들은 드래프트 지명권을 상실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피베타는 보스턴과 재계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개럿 크로셰와 워커 뷸러 등을 영입한 보스턴은 선발 투수 보강이 급하지 않다. 브레그먼 영입 혹은 놀란 아레나도 트레이드가 우선이다. 만약 보스턴과 협상한다면 계약이 더 늦어질 수도 있다.
카일 하트(32)
KBO리그를 '기회의 땅'으로 삼아 메이저리그에 돌아온 투수들이 있었다. 메릴 켈리와 크리스 플렉센, 에릭 페디 등이 이전보다 나은 계약을 받고 복귀했다. 하트도 그들의 뒤를 따르려고 한다.
하트는 지난해 KBO리그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투수였다. 평균자책점 2.69는 KIA 제임스 네일(2.53)에 이은 2위였지만, 대부분 지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투수가 직접 관여하는 탈삼진과 볼넷, 피홈런으로 계산하는 FIP도 3.10으로 리그 1위였다. 3점대 중반의 2위 그룹과 확연하게 차이가 있었다. 이에 하트는 더 늦기 전에 메이저리그 재도전을 선택했다.
2024 KBO리그 투수 FIP 순위
3.10 - 하트
3.62 - 윌커슨
3.67 - 류현진
3.68 - 네일
3.83 - 반즈
하트는 선발 투수 부족 현상이 겹치면서 계약이 원만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였다. 12월말에 양키스와 밀워키, 휴스턴, 볼티모어 등이 하트에게 접근했다고 보도됐다. 윈터미팅을 기점으로 협상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였는데, 생각보다 진행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이견 차이는 몇 가지 있다. 하트는 에릭 페디가 받은 2년 15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원할 것이다. 하지만 하트와 페디는 출발점이 달랐다. 페디는 KBO리그에 오기 전에도 워싱턴에서 풀타임 시즌을 소화한 선발 투수였다. 단순히 KBO리그 한 시즌만 보고 평가되지 않았다. 그에 반해 하트는 메이저리그 경력이 부족하다(4경기 11이닝 21실점).
페디에 비하면 구위도 약하다. 지난해 KBO리그에서도 포심 평균 구속이 90마일 수준이었다. 그렇다 보니 구단들이 하트를 확실한 선발감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없다. 하트는 페디를 꿈꿀지 몰라도, 구단들은 브룩스 레일리가 기준일 수도 있다. 시범경기가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하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사다.
데이빗 로버슨(40)
2008년에 데뷔한 로버슨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통산 861경기는 현역 두 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로버슨보다 더 많은 경기에 등판한 켄리 잰슨(871경기)이 오늘 에인절스와 1년 1000만 달러 계약에 합의했다. 이에 다음 차례는 로버슨이 될 확률이 높다.
지난해 로버슨은 건재함을 과시했다(68경기 ERA 3.00). 아메리칸리그에서는 브라이언 아브레유(38홀드) 다음으로 많은 34홀드를 올렸다. 9이닝 당 탈삼진 12.38개로 탈삼진 능력도 녹슬지 않았다. 다저스가 자랑하는 베츠와 오타니, 프리먼 트리오를 한 이닝에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운 첫 번째 투수가 바로 로버슨이었다. 마무리 경력도 있어서 최후방까지 맡길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커터 상태가 관건이다.
2024 커터 득점 가치
23 - 엠마뉴엘 클라세
20 - 코빈 번스
19 - 데이빗 로버슨
15 - 제이미슨 타이욘
14 - 잭 에플린
알렉스 버두고(28)
버두고는 유망주 시절 지금보다 더 성장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아쉬움을 남긴 채 FA 시장에 나왔다. 특히 지난해 양키스에서는 데뷔 후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좌타자에게 유리한 양키스타디움에서 성적 폭등이 예상됐지만, 후안 소토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남겼다. 149경기 타율 .233, 출루율은 3할이 되지 않았으며(.291) OPS도 0.647에 불과했다.
버두고는 장점이 있는 선수다. 지난 시즌 이전까지는 리그 평균보다 좋았던 타자였다. 삼진을 잘 당하지 않는 것도 특기다. 견고한 좌익수 수비와 좌타자라는 점 역시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경기 외적으로 잡음이 종종 있었다. 다저스는 버두고의 프로의식 결여를 꼬집은 바 있다. 이번 겨울에도 자신의 성적 하락이 "팀이 나를 믿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토로했다. 매일 자신이 선발 라인업에 들어갔는지를 두고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본인이 잘했으면 될 일인데, 외부에서 핑곗거리를 찾는 모습은 시선이 고울 수가 없다.
폴 디용(31)
장타력을 갖춘 내야수는 늘 수요가 있다. 지난해 화이트삭스와 캔자스시티를 오가며 24홈런을 터뜨렸다. 2019년 30홈런 이후 가장 많이 때려냈다. 타석에서 정확성이 개선되기는 힘들겠지만, 장타력은 시장에 남은 다른 야수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지난해 유격수 디펜시브런세이브(DRS)가 처음으로 마이너스까지 떨어진 것은 우려스럽다(-9). 그러나 이전까지는 수비가 괜찮은 유격수였다. 여러 포지션을 오가며 공백을 메우는 유틸리티 역할을 염두에 두는 팀들이 있다.
지난 1월 초 양키스가 저울질 중이라는 소식이 있었다. 양키스는 유격수 앤서니 볼피가 있지만, 디용이 3루를 맡으면 재즈 치즘 주니어를 2루로 보낼 수 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타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점도 구미가 당긴다. 최근에는 미네소타도 디용을 주시하고 있다.
호세 퀸타나(36)
퀸타나는 2023년 뼈 이식이 요구되는 늑골 부상으로 위기에 직면했다. 다행히 지난 시즌 31경기 10승10패 ERA 3.75로 보란듯이 반등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다저스와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에서 3.1이닝 5실점으로 무너지기 전까지 두 경기 도합 11이닝 비자책 1실점으로 빼어났다. 8/26일 이후 포스트시즌 포함 9경기 평균자책점은 1.42였다.
지난 1월에 36세가 된 나이는 걸림돌이다. 여기에 구위가 떨어진다. 평균 구속 90마일을 겨우 넘기는 포심과 싱커는, 최근 구단들의 선호도와 어긋난다. 하지만 피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투수라는 측면에서 젊은 투수들이 배울 점이 있다. 전력이 불안정한 친정팀 화이트삭스로 복귀하는 그림이 이상적이지만, 양측의 입장이 어떨지는 미지수다.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