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라는거지?"…오해 여지 큰 정책에 자본시장 난맥상
방향성 잃은 국고채 금리 오르락 내리락
"한은, 유동성 공급 취지 명확히해야"
은행 예금금리 인상 '제동'에 업계 혼란
"부동산PF 충격 완화 위한 불가피 조치"
[이데일리 김성수 기자]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5조원 추가 확충 등 시장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금융시장에서는 정책간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면서 다소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동시에 유동성을 확대하고, 기준금리가 올랐는데 정부가 은행 예금금리를 못 올리게 하니 ‘앞뒤가 안 맞는다’는 반응이다.
이에 정부가 정책 취지를 좀 더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은의 유동성 확대는 채안펀드에 참여한 금융기관을 지원하는 자금인 만큼 시중 유동성 확대로 번질 위험이 없으며, 은행권 예금금리 상승 제한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스(PF) 부실에 따른 충격 확산을 막기 위함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
방향성 잃은 국고채 금리…“한은, 유동성 공급 취지 명확히해야”
30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689%로 전일대비 0.034%포인트(p) 하락했다. 최근 단기 국고채 금리는 등락을 반복하며 뚜렷한 방향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연말 북클로징(회계연도 장부 결산)을 앞두고 기관투자자들 수요가 줄어든데다, 정부 정책에 대한 해석으로 혼란이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지난 24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3.25%로 올렸다. 이어 지난 28일에는 채안펀드에 출자하는 금융기관에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방식으로 최대 2조50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이 금액은 채안펀드 추가 캐피탈콜(펀드 자금 요청) 규모인 5조원의 절반 금액이다.
정부는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5조원 규모의 채안펀드 추가 캐피탈콜을 실시하기로 했다. 앞서 3조원 규모의 1차 추가 캐피탈콜을 시작한 데 이어 채안펀드 규모를 5조원 더 늘리기로 한 것. 이 금액을 금융기관이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니, 한은이 절반(2억5000억원)을 RP 매입으로 지원한다는 취지다.
한은은 별도 배포한 Q&A 자료에서 “공급된 유동성은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흡수된다”며 “거시적 측면에서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가고 있는 현 통화정책 스탠스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는 이번 RP 매입이 일반적 유동성 공급과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은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유동성을 풀면 인플레가 잡히지 않아서 나중에 금리를 더 올리는 것 아니냐”며 “나중에 경제주체들이 겪을 고통이 더 커질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정책 취지와 범위를 시장에 좀 더 명확히 전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시장과 국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며 “반면 (RP 매입에 따른) 유동성 공급은 채안펀드 자금을 모집하는 금융기관에만 영향을 주기 때문에 판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예금금리 인상 ‘제동’에 업계 혼란…“부동산PF 충격 완화 목적”
한은 기준금리가 올랐는데 정부가 예금금리 인상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최근 금융당국은 은행에 수신금리(예·적금금리) 인상 경쟁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수신금리란 고객이 은행에 예금할 때 적용받는 금리를 말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5일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확보 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업권 간, 업권 내 과당 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코픽스는 국내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로, 은행이 실제 취급한 예·적금, 은행채 등 수신상품의 금리 변동을 반영한다. 즉 기준금리 인상으로 수신금리가 오르면 주담대 금리도 따라 오르는 구조다.
다만 업계는 정부가 정상적 시장 움직임을 막아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고물가 상황에 예금금리 상승을 억제하면 연금소득자·퇴직자처럼 예금 등으로 생활하는 금융소비자들 부담이 커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수신금리 제한이 불가피한 조치라고 보고 있다. 국내 부동산경기 냉각으로 브릿지론 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험이 크게 높아져서다. 부동산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 리파이낸싱(차환)을 하려면 두자릿수 금리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ABCP로 유동화한 사업장은 그나마 위험이 적다. 신용도가 낮아서 ABCP 방식으로 유동화할 수 없는 사업장도 많아서다. 저신용 건설사들이 지방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나 책임준공형 사업장, 차입형 토지신탁(개발신탁), 제2금융권 PF 사업장 등이 대표적이다.
PF 부실로 사고가 터진다면 이같은 사업장부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부동산PF 익스포저(위험노출 금액)가 높은 증권사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데 부실사고가 커지면 충격이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김 연구원은 “현재 건설사들, 증권사들이 부동산PF 부실 위험을 다 떠안고 있다”며 “예금·대출금리가 지금보다 더 올라버리면 부동산시장이 직접적으로 받는 타격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금리 상승에 따른) 충격 확산을 막으려고 어느 정도 제한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며 “금리 제한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지만, 지금으로선 경기가 한 방향으로 쏠리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라고 덧붙였다.
김성수 (sungso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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