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을 방송에서 보기 힘들었던 이유

👻: 오늘은 음유시인 <김광석>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1. 기타와 하모니카만 있다면 어디든🎸
2. 노래하는 시인이 되기까지 🎵
3.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 💪
4. 싱어송라이터가 뭐야? ✍️

기타와 하모니카만 있다면 어디든 🎸

▲ 김광석의 대학 시절, 출처: 국제신문

무심한 듯 뱉어내는 가사 한 마디, 특유의 음색이 주는 울림, 목소리만큼이나 애달픈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 그리고 짙은 감정 속 놀랍도록 또박또박한 발음. 오늘 레터의 주인공은 바로 음유시인 김광석! 유령이 플로터도 한 번쯤 들어보셨을 법한 싱어송라이터 김광석은 마음을 울리는 가사와 섬세한 표현력으로 활동 당시 수많은 대중들을 사로잡았죠. 그런데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음유시인 김광석이 10년 동안 무명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 정말 의외네요! 무명 시절부터 유명 음악가가 되기까지, 김광석은 어떻게 음악을 만난 거예요?


노래하는 시인이 되기까지 🎵

▲ 음악에 열중하는 김광석, 출처: 김광석을 보다 전시회

김광석은 눈이 펑펑 내리는 1964년의 겨울, 대구광역시 대봉동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크고 맑은 목소리로 음악 시간을 휘어잡는 엔터테이너였죠. 중학생 때는 현악부의 연주자로, 또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합창부의 단원으로 활동하는데요. 바로 이때 김광석은 바이올린부터 오보에까지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직접 노래를 부르며 악보를 읽는 법을 배우죠.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감각이 뛰어났던 그는 음대에 진학하고자 했지만, 집안의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결국 일반 대학의 경영학과에 입학했어요. 그렇게 대학생이 된 김광석은 대학연합 노래 동아리인 ‘메아리’에 가입하고, 바로 이곳에서 그의 상징인 기타를 연주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 민중가요: 권력에 저항하며 시위나 집회를 할 때 부르던 음악.

이후 김광석은 사회에 저항하는 음악을 다수 발표하는데요, 그가 대학생이었던 1980년대는 폭력과 억압이 난무했던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김광석은 민주화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음악으로 표출했죠. 대표적인 예로 그는 김지하 시인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에 멜로디를 입혀 노래하며 애타게 민주화를 부르짖었어요. 그래서인지 당시 열렸던 시위와 집회로부터 김광석을 향한 러브콜이 쏟아지곤 했다고.

1990년대 초반, 김광석은 자신만의 음악세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해요. 그러던 도중 당시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이 다수 참여했던 <겨레의 노래>를 작업하며 최초로 전국 순회공연에 함께 나서죠. 이를 계기로 그는 기나긴 무명 생활에서 벗어나 여러 음악가들과 교류를 시작하는데요. 이들과 함께 대중과의 소통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신만의 음악 세계와 대중성 사이의 타협점을 찾아가요.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의 음악 속에 일상적인 삶의 향기를 담는 것에 주력하면서, <나른한 오후>, <행복의 문>, <서른 즈음에> 등을 발표하죠. 바로 이때부터, 김광석은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고

👻: 사회에 저항하던 음악을 하다가 일상을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됐군요! 김광석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 더 듣고 싶어요!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 💪

김광석의 음악은 모두 허구가 아닌 본인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어요. 그의 대표곡인 <서른 즈음에>에는 두려움 없이 도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20대의 끝 무렵, 그가 현실에 부딪히며 느꼈던 고뇌가 나타나요. 점점 공허해지는 삶으로부터 느끼는 무력감을 노래함으로써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죠. 마찬가지로 레터 첫머리에서 들려드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서도 사랑과 삶을 노래하는데요. 여기서 그만의 구슬픈 음색과 가슴 시린 가사는 음악을 듣는 사람의 슬픔을 치유해 주죠. 이 곡은 생전 김광석이 유난히 애틋하게 여겼던 곡으로도 유명해요. 그가 세상을 떠나기 7시간 전인 1995월 1월 5일, 방송사 무대에 올라 불렀던 마지막 노래이기도 하죠. 이 곡을 통해 김광석은 겉모습만 화려한 사랑과 삶을 멈추고, 아플 만큼 뜨겁게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김광석, 출처: 학전 소극장

그는 대중들의 뜨거운 호응과 대단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아티스트로도 유명한데요. 대신 김광석은 당시 주류에서 밀려난 포크 음악* 장르를 살려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어요.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며 관객과 끊임없이 호흡하기 위해 소극장 무대와 라이브 콘서트를 고집하는데요. 그 결과 김광석은 무려 소극장 공연 1000회 이상이라는 기록적인 공연 횟수를 달성했죠. 이와 같은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후배 가수들에게도 대단한 귀감이 되었다고.

* 포크 음악: 1970년대 미국의 민요인 모던포크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대중가요의 형식으로, 통기타 반주에 담백하게 가사를 입히는 장르.

나아가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소극장 공연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그는 비록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어요. 2013년 대학로에서는 김광석의 음악을 기반으로 한 뮤지컬 <그날들>이 초연됐고, 대구에는 그의 예술혼을 기리는 김광석 거리가 조성되어 있죠. 이는 김광석의 음악이 지금까지도 대중으로 하여금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 :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다워요. 그런데 싱어송라이터는 정확히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싱어송라이터가 뭐야? ✍️

▲ 싱어송라이터, 출처: Berklee College of Music

싱어(singer)와 송라이터(songwriter)의 합성어인 싱어송라이터는 직접 곡을 쓰고 노래하는 이를 뜻해요. 그런데 싱어송라이터와 가수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가수는 뛰어난 가창력과 특유의 음색으로 노래하며 음악을 표현해요. 반면 싱어송라이터는 곡과 가사, 연주와 노래를 한데 엮어 하나의 이야기를 전해요. 즉, 노래를 부르는 행위 자체가 직업인 가수와 달리 음악에 손수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는 부분에서 싱어송라이터는 차이점이 존재하죠.

싱어송라이터들은 직접 작사 작곡을 겸하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대단히 높고, 자신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음악적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어요. 그래서인지 싱어송라이터는 대체로 개인적이면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가사에 담아 비유적으로 표현하곤 하죠. 김광석이 자신의 경험을 녹여 곡을 썼던 것도, 시적인 표현을 통해 가삿말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던 것도 바로 그가 싱어송라이터였기 때문이라고.

👻: 싱어송라이터와 가수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서로 다른 개념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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