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여 유희강 'K-Culture 프로젝트'] (상) '관서악부' 남기고 떠난 거장, 인천이 다시 부른다
뇌출혈 전 예술 응축된 작품 '완당정게'
좌수서 시기 글씨, 넓어지고 구성 대담
인천에서 활발한 문화활동
예술 활동무대 인천…창작·문화 병행
미협 활동 참여…지역 서단 형성 기여

올해는 검여 유희강(1911~1976) 서거 50주기다. 인천에서 태어나 활동한 그는 추사 김정희 이후 한국 근현대 서예사의 한 축을 형성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인천일보는 서거 50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한편 이를 오늘의 문화 자산으로 확장하려는 인천서구문화재단의 'K-컬처 프로젝트'까지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1편에서는 검여의 예술적 성취와 인천이라는 공간과의 연관성을 짚고, 2편에서는 휘호대회·특별전·학술대회 등 50주기 기념 사업을 통해 검여를 지역 대표 예술 브랜드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다룬다.
1968년 뇌출혈증이 발병해 오른쪽 반신이 마비된 뒤에도 검여 유희강은 왼손으로 다시 붓을 들었다. 이른바 '좌수서(左手書)'의 시작이다.

▲ 우수서에서 좌수서까지, 검여 서예 세계
검여 유희강은 1911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한학과 서예를 익혔고, 1937년 명륜전문학원을 졸업한 뒤 이듬해 중국으로 건너가 서화와 금석학을 공부했다. 1946년 귀국 후 한동안 글씨와 회화를 병행했으나, 195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서예에 전념하며 자신의 조형 세계를 다듬어갔다.

1968년 뇌출혈로 오른쪽 반신이 마비되면서 작업은 중단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그는 왼손으로 붓을 잡고 연습을 이어갔고, 약 10개월 만에 오른손에 버금가는 필력을 회복했다.
좌수서(左手書) 시기의 글씨는 이전보다 과감해졌다. 필획은 거칠어졌으나 화면은 넓어졌고, 구성은 대담해졌다.
일중 김충현은 "서예에 통달한 화가의 잠꼬대 같은 참소리의 순수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기교를 앞세우기보다 본질적 조형 감각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의미다.
좌수기로 접어들며 시도한 '종정문' 연작은 변화의 방향을 보여준다. 은·주 시대 청동기 명문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화면 중앙에 고대 문양을 배치하고, 그 주변에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다. 문자와 형상이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의 구조를 현대 화면으로 재구성한 작업이다. 이는 고문자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자 이전의 조형 감각을 탐색한 시도로 읽힌다.
그의 예술을 집약하는 작품은 '관서악부'다. 조선 후기 문인 신광수의 한시 108편을 옮긴 이 대작은 세 차례에 걸쳐 다시 쓰며 완성도를 높였다. 긴 서사시를 한 화면의 흐름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획의 강약과 행간의 리듬이 정교하게 조율된다. 완성 직전 병세가 악화되면서 발문을 직접 마치지 못했지만 이 작업은 현대 서예사에서 보기 드문 장대한 성취로 남았다.

▲ 인천 문화사 속 검여
1911년 인천에서 태어난 검여 유희강의 활동 무대 역시 인천이었다. 귀국 후 그는 이 도시를 기반으로 창작과 지역 문화 활동을 병행했다.
1949년 인천예술인협회 창립에 참여해 총무부장을 맡은 일은 그 출발점 중 하나다. 해방 이후 예술 기반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 협회 창립은 인천 예술계의 틀을 세우는 작업이었다. 검여는 개인 작업을 넘어 지역 예술 조직을 구축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54년에는 제2대 인천시립박물관장에 취임했고, 이어 제11대 인천시립도서관장도 맡았다. 박물관과 도서관은 지역의 역사와 자료가 집적되는 공간이다. 그는 작품을 발표하는 예술가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 자산을 보존하고 운영하는 위치에서 인천 문화 기반 형성에 관여했다.
전시 활동도 이어졌다. 인천 지역 전람회와 대한미술협회 인천지부 활동에 참여하며 지역 서단의 흐름을 이끌었다. 창작과 조직, 행정이 동시에 작동한 구조였다.
중국에서 비학을 학습했지만 관서악부처럼 조선 문학을 작품의 중심에 둔 선택 역시 인천이라는 공간과 무관하지 않다. 외부 사조를 수용하되 우리 텍스트를 통해 재해석하는 방식은 개항 이후 다양한 문화를 흡수해온 인천의 문화적 성격과 닮아 있다.

/정회진 기자 hijung@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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