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좋은 와인..코르네가 보여주는 꾸준함의 미학
와인은 오랜기간 잘 숙성될 수록 그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스포츠에서도 시간이 지나 빛을 보는 선수들이 종종 나타나곤 한다.
여자프로테니스(WTA)에서 활약하는 1990년생 알리제 코르네(37위·프랑스)는 와인으로 따지면 평범한 브랜드다. 그런데 오랜기간 노력을 거듭한 결과 이제는 ‘꾸준함’의 상징이 됐다. 그 꾸준함이 화려함을 이겼다.
코르네는 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WTA 세계랭킹 1위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와 윔블던 여자 단식 3회전에서 2-0(6-4 6-2)으로 꺾고 16강에 올랐다.
다른 선수도 아닌, 현 여자 테니스 최고 선수를 꺾은 것이라 더 충격이 크다. 시비옹테크는 이날 경기 전까지 WTA 투어 37연승을 질주중이었다. 1997년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 이후 25년만이자 2000년 이후 WTA 최고 기록이었다. 세리나 윌리엄스(1204위·미국) 이후 가장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는 여자 테니스 선수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코르네는 시비옹테크에 비하면 특출나게 자랑할 업적은 없다. 2016년 프로 전향한 시비옹테크가 메이저대회 2회, WTA 1000시리즈 5회 등 벌써 9번의 우승을 거머쥔 반면, 2006년 프로 전향한 코르네가 20년 가까이 선수생활을 하면서 거머쥔 우승 트로피는 13개에 불과하다. 거기에 메이저대회 최고 성적은 8강이다.
이런 코르네도 시비옹테크가 감탄할만한 ‘업적’이 하나 있다. 코르네는 이번 윔블던을 통해 통산 65번째 메이저대회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더 대단한 것은 2007년 호주 오픈부터 무려 62회 연속으로 메이저대회 본선 무대를 밟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스기야마 아이(일본·은퇴)와 함께 WTA 역사상 최다 연속 출전 공동 1위 기록이다. 코르네는 2020년 윔블던에 출전하지 않았는데, 당시 윔블던은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됐다.
한 해 4번밖에 열리지 않는 메이저대회에 15년이 넘게 개근 도장을 찍으려면 철저한 자기 관리가 동반되어야 한다. 올해 호주 오픈에서 생애 첫 메이저대회 8강에 오른 그는 실력이 특출난 선수는 아니어도 자기 관리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 못지 않았다. 거기에 오랜 기간 쌓인 경험이 조금씩 빛을 발하더니 올해 환하게 빛나고 있다. 이번 경기에서도 코르네의 노련한 운영에 말린 시비옹테크가 실책 33개를 쏟아내며 스스로 자멸했다.
코르네는 경기가 끝난 뒤 “난 프랑스의 좋은 와인과 같다. 좋은 와인은 항상 숙성이 잘 된다”며 “나는 내 최고 시즌을 보내고 있다. 내 안에는 뜨거운 불이 타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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