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조업 영토확장? ‘대-中企 기술함대’가 답이죠
‘회색 코뿔소’ 충돌까지 10년
韓, 30년간 극심한 인재부족
제조업 생태계 붕괴땐 ‘악몽’
프렌드쇼어링 등 해법 제안

서울 강남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서울사무소(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에서 만난 이상목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의 목소리에는 위기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한국 제조업이 처한 현실을 ‘회색 코뿔소의 돌진’에 빗대어 우려했다. 지속적인 위험 신호를 보내며 다가오지만 사람들이 애써 무시하는 위험을 뜻하는 경제 용어다. 회색 코뿔소의 실체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절벽과 제조업 생태계의 붕괴’다.
이 원장은 “인구 소멸과 숙련공의 단절은 이미 예견된 재앙”이라며 “지금 이 골든타임을 놓치면 한국 제조업은 독일이나 일본처럼 쇠퇴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매경과 인터뷰에서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과 인력순환모델인 ‘인재 에코 사이클링(Eco-Cycling)’ 등 실현 가능한 해법을 제안했다.
이 원장은 “한 반에 80명씩 콩나물시루처럼 꽉 채워 공부하던 베이비부머 세대가 낳은 자녀들이 이제 0.7명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집단 지능’의 결과이자 비극”이라며 “우리는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부모가 될 때까지 약 30년 간 극심한 ‘인재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 대학들은 학생이 없어 소멸 위기이고 지역 중소기업은 사람을 못 구해 문을 닫는다. 이 와중에 수도권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있다”며 “우리 내부에서만 해법을 찾으려는 폐쇄적인 시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꺼내든 카드는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젊은 피를 수혈하는 ‘인재 에코사이클링’ 모델이다. 단순한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아니라 양국이 공동으로 필요한 해당 산업의 핵심기술을 선정하고, 그 기술 개발로 학위를 수여하는 전략이다.
이 원장은 “최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정부 관계자와 주요 대학 총장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며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야자수를 활용한 바이오디젤 산업을 양국이 함께 키우기로 합의하면, 현지 대학에서 관련 커리큘럼을 이수한 학생을 선발해 UST 생기원 스쿨(UST-KITECH SCHOOL)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게 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이렇게 성장한 인재는 한국의 인력난을 해소하는 연구원이나 기술자가 되거나 본국으로 돌아가 한국 기업과 협력하는 ‘지한파(知韓派)’ 전문가가 된다”며 “한국의 은퇴한 고경력 과학자들은 현지로 보내 이들을 가르치고 멘토링을 하게 하면 인력의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고 덧붙였다.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들까지
동시에 지원하는 ‘투 트랙’ 전략 필요

이 원장은 미국 진출 기업들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했다. 그는 “미국은 딥테크(첨단기술)만 남았지 제조업 생태계는 20여 년 전부터 이미 쇠퇴했다”며 “현지에 나가 있는 우리 기업 법인장들을 만나보면 숙련된 인력이 없고 인프라가 열악해 힘들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대기업 혼자 나가서는 각개격파 당하기 딱 좋다”며 “마치 항공모함 주변에 구축함, 잠수함이 함께 움직이듯,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들이 ‘기술 함대’를 이뤄서 진출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생기원은 이 함대 내에서 기업들이 데이터를 공유하고 협력할 수 있는 ‘데이터 스페이스 플랫폼’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국내로 복귀를 희망하는 기업(On-shoring)에 대해서는 “과거 대기업을 따라 중국, 베트남으로 갔다가 인건비 상승과 관세 장벽에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기업들이 많다”며 “이들이 국내 지방 산단으로 돌아올 때 AI 기반의 자동화 설비와 인력을 매칭해 줘 안착시키는 것이 바로 ‘온쇼어링’ 지원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첨단 기술 이면에 가려진 양극화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K-경제’라는 말이 듣기엔 좋지만, 실상은 대기업과 수도권만 잘 나가는 극심한 양극화를 뜻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나라 60만 개 제조기업 중 200인 이상 기업은 0.25%에 불과하다”며 “상위 0.25%가 최첨단 AI를 도입해 생산성을 10배 높여봤자, 나머지 99.75%인 중소기업이 소외된다면 국가 전체의 생산성은 오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 원장이 강조하는 것은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이 아니라 제조 현장의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판별형 AI’와 ‘피지컬 AI’다. 그는 “중소 뿌리기업들이 쓸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제조 AI를 보급해 이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그래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줄어들고 진정한 의미의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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