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세계 속 ‘한글’이 되기까지

조혜정 기자 2024. 10. 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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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뜻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백성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 그리고 그런 세종의 글에 다양한 문법 체계와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여 현대의 한글을 정착시킨 주시경. 무엇보다 한글의 생명력은 사대부의 배척과 일제의 탄압에도 명맥을 이어온 백성들의 삶에서 비롯된다.

국립한글박물관에 전시된 훈민정음 해례본. 조혜정기자

한류의 중심 한글

‘한류’라는 단어가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99년이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해외 진출을 시작하면서 당시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대중음악의 해외 홍보를 위해 ‘한류-Song from Korea’라는 이름의 음반을 제작한 것.

한국 음악과 한국 음식을 즐기며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즐기는 외국인들의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은 최종적으로 ‘한글’에 쏠렸다. 사람들의 이러한 관심을 대변하듯 글로벌 기업들은 앞다퉈 한국문화, 그중에도 한글을 차용한 제품을 출시했다.

코카콜라는 지난 2월 자사의 글로벌 혁신 플랫폼을 이용했으면 하는 연령대와 케이팝 팬의 연령대가 일치한다고 판단해 ‘코카콜라 제로 한류’ 제품을 전 세계 36개국에 출시했다. 콜라에 과일향을 입혀 한류를 표현한 ‘상큼한 최애 맛’을 만들었으며 제품 전면에 한글로 코카콜라를 새겼다.

한편 나이키는 한국문화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수년 전부터 ‘한글날’ 컬렉션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한글로 ‘나이키’를 새긴 운동화, 의류를 한정판으로 판매해 소비자들로부터 한글 디자인에 대한 인식 변화와 제품 가치를 높인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파리 생제르맹 클럽 등 한국 축구 선수 소속 팀은 한국과 한글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한글 유니폼 및 신발을 선보였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자음 글자 17개, 모음 글자 11개로 이뤄졌다. 조혜정기자

백성을 위해 만든 문자, 훈민정음

조선 제4대 임금 세종은 왕이된 지 25년이 되는 해(1443년) 한글을 창제했다. 집현전 학자들에게 한글에 대한 자세한 풀이가 담긴 해설서 ‘훈민정음’을 집필하게 했고 마침내 세종 28년(1446년)에 한글을 반포했다.

전 세계 문자 중 훈민정음처럼 창제 과정을 기록한 책이 남아 있는 것은 한글이 유일하다. 우리나라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훈민정음은 한문으로 한글의 원리와 풀이, 예시를 쓴 ‘해례본’과 한문으로 쓴 훈민정음 일부를 우리말로 풀어 놓은 ‘언해본’ 두 가지가 남아 있다.

글자를 아는 것이 곧 권력이었던 시절에 글자를 몰라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왕이 모두가 익힐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세종은 훈민정음 반포 무렵 한글이 우리말을 적는 데 무리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용비어천가’를 만들었다. 125장으로 구성된 최초의 국문 악장 용비어천가를 통해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을지 본래 단어의 형태를 나타낼지 등 표기 체계와 소통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한글의 활용도와 완성도를 높였다.

한편 오랜 시간 글자 권력을 공고히 해 온 당시 사대부는 물론이고 실학자들도 한글을 철저히 배척했다. 신분이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린이들이 한자를 배우기 전 선행학습 차원에서 한글을 익히거나 편지를 쓸 때나 한글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한글’의 아버지, 주시경

훈민정음 창제 이후 줄곧 훈민정음 혹은 정음으로 불리거나 언문, 암글(암놈이 쓰는 글), 아해글(아이들이 쓰는 글) 등 낮춤 말로 불리던 것에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현대의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등을 정리해 보다 체계적인 언어로 거듭나게 한 인물이 주시경 선생이다.

주시경이 37세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한 뒤에도 그의 뜻을 이어받은 제자 최현배, 김윤경, 이윤재, 이병기 등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됐던 ‘말모이 사업’을 광복 이후 ‘조선말큰사전’ 사업으로 확장·재개한다.

1947년부터 1958년까지 총 6권으로 완간한 조선말큰사전은 현재도 ‘우리말큰사전’이라는 이름으로 배포되고 있다.

조혜정 기자 hjc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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