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사 해외사업 점검]④ K소스 경쟁에 휘청이는 샘표, '오너 4세' 박용학 성공할까

내수 불황과 K푸드 열풍으로 해외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국내 식품 기업들의 해외 사업 현황을 점검합니다.

샘표가 올해 2분기 연결기준 매출 1018억원, 영업손실 38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샘표가 농촌진흥청과 국산 가루쌀 신품종인 '바로미2'를 활용해 만든 100% 국산 쌀 고추장 /사진 제공=샘표

간장, 된장, 고추장 등 한국의 장(醬)류 제품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샘표식품이 K소스 열풍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면서 해외 성장속도가 더디다. 해외 매출 비중은 수년째 10%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어 내수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한 오너가 4세 박용학 해외사업본부장을 필두로 샘표식품은 소스 현지화 전략으로 해외 사업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연결기준 샘표식품의 영업이익은 -38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신규 브랜드 론칭으로 불가피하게 마케팅 비용이 증가하면서 판관비 부담이 컸던 게 주요 원인이다.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10.3% 증가한 1018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샘표식품 관계자는 "지난 2022년부터 간장 등 장류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 조치로 매입세액을 환급받지 못해 손실을 겪어왔다"며 "올해 신규 브랜드 론칭으로 필수적인 광고 마케팅 비용이 들어가면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수익성 확보를 위해 내수의존도를 줄이고 해외로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K푸드 열풍으로 다른 식품사들이 수출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것과 달리, 샘표식품의 해외 매출 비중은 수년째 10%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샘표식품 매출 비중은 국내 86%, 해외 13%다.

샘표식품은 2000년 미국에 첫 현지법인을 세우고 2008년 중국법인을 만들면서 해외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에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2016년 ㈜샘표와 인적분할한 후 해외 사업에 집중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2017년 연결기준 수출액 303억원에서 매년 꾸준히 성장해 2022년 502억원, 지난해 544억원으로 최대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국내 수출 성장세와 비교하면 성장률과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K소스 열풍이 불면서 샘표식품이 주력인 장류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진 영향이다.

국내 소스 시장 점유율 1위인 대상을 포함해 CJ제일제당, 오뚜기, 동원홈푸드 등이 전통 장류뿐 아니라 양념, 카레, 매운 소스 등 차별화된 제품을 내놓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 소스 수출량은 지난해 13만1824톤으로 전년 대비 2.3% 늘며 역대 최대 규모를 달성했다. 소스류 수출액도 3억8400만달러로 같은 기간 6.2% 증가했다. 최대 수출국은 미국(23%)과 중국(12%)이다.

다양한 소스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해외 마케팅 비용을 늘려야 하지만, 샘표식품이 올해 판관비 증가로 영업손실을 기록한 상황이라 쉽지 않다. 샘표식품은 올 상반기에 광고선전비 82억원, 판매촉진비 65억원을 썼다. 전년동기 대비 485%, 32% 늘어난 액수다.

국가별로 맛·포장 달리한 '소스 현지화'

샘표식품은 국가별 다양성과 선호도를 고려해 소스 현지화 전략을 확대할 방침이다. 수출 효자상품인 순식물성 요리에센스 연두와 유기농 고추장의 경우 조선간장 특유의 향과 색을 줄이거나 매운맛을 낮추고 감칠맛을 높이는 식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 현재 식품사들은 외국인들이 장류 제품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포장 방법을 개선하거나, 현지 입맛에 맞춘 제품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장류 제품은 맵거나 짠 특징이 있어, 물성으로 맛과 강도를 조절해 현지화해야 한다"며 "소스 형태도 퍼먹는 플라스틱 용기보다는 튜브나 찍어 먹을 수 있는 액상 형태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샘표식품은 미국법인인 샘표푸드서비스(SFS)를 중심으로 주요 유통망을 이미 구축해놓았기 때문에 현지에서 유명해지면 유리하다. 현재 샘표는 미국 월마트, 아마존, 알리바바 등 대형 유통업체를 통해 전 세계 50여개국에 브랜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주력상품인 간장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올 상반기 미국법인의 매출은 112억원으로 전년 대비 10% 증가하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영업이익은 8억원으로 14% 감소했지만 순이익(7억원)은 12% 증가했다. 다만 중국법인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소폭 증가(0.7%)한 8억원에 그쳤다.

해외 사업을 이끌고 있는 박 본부장(상무)이 지난달 정기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한 것도 긍정적이다. 이는 해외 사업 강화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박 본부장은 박진선 샘표 대표이사 사장의 장남으로 현재 4세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해외에서 좋은 실적을 기록해 실력을 증명한다면 본인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박 본부장의 샘표 지분율은 6.58%로 박 사장에 이어 2대주주다. 샘표식품은 샘표 매출의 91%를 차지하는 핵심 자회사다.

샘표식품은 글로벌 수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국내 공장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올 4월 샘표는 충북 제천시와 제2산업단지 공장 신설 투자 협약을 맺었다. 오는 2028년까지 약 8만1000㎡ 부지에 공장을 신설하고 주요 제품 생산설비 증설을 위한 투자를 집행할 예정이다. 공장이 완공되면 샘표식품은 경기 이천, 충북 영동, 세종시 조치원에 이어 네 번째 사업장을 보유하게 된다. 샘표식품 관계자는 "샘표의 발효 기술력과 현지화 전략으로 우리 음식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발효와 장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