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자와 투약자 32명 적발...6시간 투약 후 운전도
돈만 내면 새벽에도 무제한 투약…신원 확인 없이 익명 환자 받아
해당병원, 260명 신원 도용해 식약처 허위 보고·폭력조직원도 가담
의사가 아니라 마약상이었고, 병원이 아니라 병원을 가장한 마약소굴이었다.
한 병원의 의사 등 관계자들이 돈만 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제한 액수만큼 의료용 마약류인 프로포폴을 무제한 투약해주다가 잡혔다.이들이 이런 방식으로 7개월간 챙긴 돈은 15억원에 육박한다.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 특별수사팀(팀장 김보성 강력범죄수사부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공조 수사한 결과, A의원 개설자 이모(73)씨, 의사 서모(64)씨, 상담실장 장모(28) 씨, 간호조무사 길모(40)씨 등 A의원 관계자 6명과 프로포폴 불법 투약자 1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간호조무사 1명과 다른 불법 투약자 23명은 불구속 기소하고, 도주한 범행 총책 윤모(47)씨는 기소중지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씨 등 의원 관계자 8명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A의원에서 수면·환각을 목적으로 총 417차례에 걸쳐 약 14억5800만원 상당의 프로포폴과 에토미데이트를 중독자들에게 판매·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병원은 마약장사를 위해 별도의 공간을 마련할 정도로 마약 판매에 적극적이었다.
정상적인 진료를 하는 공간과 분리된 곳에 '피부관리실'을 마련해놓고 이곳에서 프로포폴 등을 불법 투약해준 것. 통상 다른 병의원은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하더라도 피부·성형 시술을 병행하지만, A의원은 외관상 의료목적을 가장하지도 않고 프로포폴을 판매·투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실장이 결제한 액수만큼 투약량을 결정하면, 간호조무사들이 의사의 관리·감독 없이 주사를 놔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중독자들이 요구하면 새벽 시간에도 의원 문을 열었고, 신원 확인 없이 익명으로 환자를 받기도 했다.
금액은 개인별로 달랐지만 시간당 100만원꼴이었다. 원가가 3000∼4000원 정도인 프로포폴 20㎖를 투약하고 700만원 안팎에 받은 증거도 나왔다.
중앙지검은 하루 최대 결제 대금이 1860만원, 최대 투약 시간은 10시간 24분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일부 중독자는 7개월간 2억원어치를 투약받기도 했다.
비용은 병원에 금고와 현금 계수기를 놓고 '현금 장사'를 벌이거나 계좌이체로 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적인 마약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을 관리하고 프로포폴 중독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폭력조직 일원인 자금관리책도 현장에 상주했다.
중독자들은 통상 수면 (내시경) 마취할 때의 10배 정도 강도로 프로포폴을 투약했다...사실상 의료기관 안에서 마약 장사를 한 것과 똑같은 상황"
- 김보성 저울중앙지검 부장검사 -
총책 윤씨는 브로커를 통해 A의원 개설자 이씨와 의사 서씨를 섭외하고 대가를 지불한 뒤 나머지 수익금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의사 서씨는 당초 월 500만원을 받기로 하고 범행에 가담했으나 결과적으로는 5개월간 약 2억원을 챙겼다.
윤씨 등은 서씨가 범행에서 빠지자 A의원에 재직하던 다른 의사의 명의를 몰래 도용해 프로포폴 처방을 지속했다.
프로포폴 오·남용 문제가 불거진 다른 의원에서 일한 경력을 가진 A의원 상담실장은 기존 의원에서 가져온 고객 명단을 토대로 영업 활동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의원 주변 폐쇄회로(CC)TV에는 투약자들이 간호조무사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비틀 걸어 나와 택시를 타는 모습 등이 찍혔다. 6시간 넘게 프로포폴을 투약한 뒤 차량을 직접 운전한 경우도 있었다.
검찰은 장시간 투약 후 운전한 것으로 확인된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A의원은 전신마취제인 에토미데이트를 프로포폴로 속여 투약하기도 했다.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돼있지 않아 보고 의무 자체가 없다는 점을 악용했다. 검찰은 식약처에 에토미데이트의 마약류 지정을 적극 건의할 방침이다.
한편, 서울중앙지검은 올해 2월부터 '의료용 마약류 전문수사팀'을 구성해 식약처와 합동으로 프로포폴 오남용 병의원의 처방 내역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A의원에 대한 수사 단서를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