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게 없네, 여기서 살란다 ‘부평시장’ [알보달보 인천지역유산·(13)]
광복 후 미군부대 주둔, 허허벌판 장터 변모
자유·깡시장·문화의거리 등 4개 상권 공존
잡초 같은 장소… 지역 중심 ‘역사적 의미’
전통시장 외면받는 현실에도 명맥 이어가
과거·현대시설 조화 독특 ‘지역유산’ 선정
맥주 축제 등 젊은층에도 매력적 공간 노력

각종 선거에서 주요 후보자들이 인천 부평구 유세를 위해 꼭 찾는 장소가 한 군데 있다. 바로 부평문화의거리를 비롯한 부평시장 일대다. 지난해 치러진 조기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여야 후보들이 이곳에서 집중 거리 유세를 펴고, 상인들과 만나 정책 간담회를 여는 등 역대 대선만 봐도 부평시장은 단골 유세 장소였다.
왜 부평시장일까? 부평역에서 내려 무려 1천600여개 점포가 몰려 있는 부평지하상가를 지나 지상으로 나오면, 젊음이 넘치는 부평문화의거리를 마주하게 된다. 중심 거리를 조금만 걸어 내려가다 보면 이번에는 간판만 봐도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하는 전통시장들이 보인다.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모이는 곳이자 경제활동이 활발한 곳, 인천 번화가로는 이만한 곳이 없다.
■ 해방 이후 자연스럽게 생겨난 시장


부평시장은 현재 부평종합시장, 진흥자유시장, 부평깡시장, 그리고 부평문화의거리 등 4개 시장 상권이 공존하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해 부평시장을 인천지역유산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인천시 지역유산 조사연구 최종 보고서를 보면 부평시장은 1948년 조성됐다고 적혀 있다. 박대진 인천부평구상인연합회장이 전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부평시장은 인천시가 주도해 이곳에 공설시장을 만들기도 전, 사람이 몰리는 곳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시장이라고 했다.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이 지역에는 해방 이후 미군 부대가 주둔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주변에 음식점 등 상권이 생기면서, 당연히 농산물이나 각종 식재료를 파는 곳도 하나둘 늘어났다. 인근 사람들은 각자 농사지어 재배한 과일, 상추 등을 보따리에 실어와 내다 팔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직거래 장터가 형성됐다고 한다. 길바닥에 깔아두고 물건을 팔던 것이 점차 점포 장사로 바뀌었고, 상업 기능이 발달하면서 인천시의 뒷받침으로 지금의 대규모 시장으로 점차 성장한 셈이다.
박 회장은 “일종의 잡초 같은 장소다. 민들레 홀씨를 그냥 뿌렸는데, 그 씨가 자생해 꽃을 피운 것과 마찬가지”라며 “자연스럽게 그 시절 지역 경제 활성화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게 된 만큼 부평시장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부평 우체국이 생기고, 노점이 상설시장이 되고, 주변에 도로와 인프라가 갖춰지는 등 세월이 가면서 이곳도 점차 발전했다”며 “현대화 사업으로 아케이드가 생기는 등 지금의 부평시장 분위기는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그러면서도 전통시장의 문화와 모습은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박명식 부평문화원 이사가 전하는 부평시장 이야기도 흥미롭다. 박 이사에 따르면 현재 부평중·고등학교로 들어가는 입구 일대를 ‘수도사거리’라고 불렀다. 1934년 부평에 전깃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부평역 앞과 수도사거리에도 점포가 들어섰고, 1940년대에는 20여개 점포가 형성됐다고 한다. 당시 새로 생긴 인천부 부평출장소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래는 대부분 이곳에서 이뤄졌다. 수도사거리가 부평시장의 시발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시장

1940년대 부평은 미군 부대뿐 아니라 각종 공장의 입주, 이에 따른 공장 노동자 유입으로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인구 10만명을 바라봤다. 해방 이후에는 암시장, 일명 양키시장이 생겼고, 1950년대까지 미군기지의 영향으로 부평역 앞은 지역 주요 상권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군의 군납 물품과 군인 지급 물품들이 암시장으로 흘러나와 판매됐고, 품질 좋은 상품이 많아 이를 사려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1948년 인천시 주도로 부평에 공설시장이 건립됐지만 이미 인근에 점포가 줄지어 만들어져 있었고, 많은 사람이 모여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은 이곳을 부평시장이라고 불렀다.
부평시장이 성황을 이루자, 인천시가 건립했던 공설시장은 제대로 운영도 해보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후 1950년대 부평시장 인근에 또 다른 시장이 개설됐는데, 이것이 자유시장이었다. 부평시장의 상권이 자유시장으로 옮겨오면서 이름도 넘겨받았는데, 이것이 1971년 이름 붙여진 ‘부평자유시장’이다. 부평자유시장은 2018년 철거됐다. 1970년대 공인된 또 다른 시장은 진흥종합시장인데, 상가 건물에 입점한 형태라 ‘진흥종합상가’라고도 불린다. 1979년 전통시장으로 등록됐는데, 건물 안에 점포가 입주한 형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부평종합시장은 부평의 시장 중 가장 큰 규모로, 현재 400여개의 점포가 있다. 또 부평깡시장은 경매를 뜻하는 ‘깡’이 이뤄졌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예전처럼 청과물 경매가 열리지는 않지만, 아직도 많은 상점이 청과물과 곡물을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부평문화의거리는 1998년 이곳 상인들이 직접 돈을 모금해 재래시장을 재정비해 의미가 크다. 이곳은 해방 이후 미군 물품이 불법적으로 유통되던 자리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차 없는 거리’로 지정돼 남녀노소 편하게 걸으며 쇼핑할 수 있다.
이처럼 부평의 시장은 등록일 순으로 진흥종합시장, 부평종합시장, 부평깡시장, 부평문화의거리 등으로 이뤄져 있다. 시장 간 경계는 있지만, 사실 서로 이어져 있어 하나의 상권과도 같다. 여러 시장이 모였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하나로 ‘부평시장’이라고 부른다. 상인들은 이곳이 부평 상권의 발달을 이끌어왔으며,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생겨도 여전히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자부한다.
■ 여러 시장이 모인, 그럼에도 하나의 시장

인천시는 지난해 부평시장을 인천지역유산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전통시장이 외면받는 현실 속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총평했다. 단일 시장이 아닌 여러 시장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특징이 있는 만큼, 각 시장 상인회와 연계하거나 인근 청년 상점과의 연계를 통해 지역유산으로서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봤다. 특히 해방 이후 미군부대의 주둔, 1960년대 후반 수출산업공단 조성을 겪으며 지역사회 흐름 속에서 지역과 함께 발전해 온 시장이라고 조사했다.
지금의 부평시장은 현대화 사업 등을 거치면서, 과거 전통시장의 모습과 현대적인 상업시설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시장으로서 기능은 물론, 문화공간에서는 시민들이 언제든 와서 볼 만한 공연도 열리고 있다. 최근 부평시장의 닭강정, 빈대떡, 옥수수 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과거 젊은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부평깡시장이나 부평종합시장에도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박 회장은 아직 젊은층이 많은 것은 아니더라도, 분위기가 점차 바뀌고 있는 만큼 이를 더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상인들이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박 회장이 생각하는 부평시장은, 부평 지역의 경제 발전은 물론 인천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이 가치를 지켜가려면 시장이 보다 활성화돼야 하는 만큼, 그는 다양한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온라인 판매 채널 구축, 전통시장의 정체성과 향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지속적인 시설 개선, 지역만의 이야기를 담은 다양한 행사·축제 마련 등이다. 실제로 몇년 전부터 진행한 ‘부평 테마의 거리 맥주 축제’는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다만 다양한 시도와 시설 개선을 위해서는 부평구와 인천시, 정부의 지원도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박 회장은 “부평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역사를 넘어, 지역 공동체가 성장하고 변화한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더 의미가 크다. 수십 년간 지역 주민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공간으로서, 이곳에서 형성된 고유 문화와 정서를 통해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며 “전통시장이 ‘노후한 공간’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곳이 맛있고, 볼 게 있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도록 하고자 한다. 부평시장이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닌, 지역의 소중한 유산임을 알릴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하며 지켜 가겠다”고 했다.

/김희연 기자 kh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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