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과 손질을 거쳐 한국인의 밥상에 오른 수입 생선

찬바람이 물러가고 봄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면, 생선 냄새도 바뀐다. 제철 해산물들이 마트 진열대를 채우는 이 시기, 유독 존재감을 드러내는 생선이 있다. 과거에는 냄새가 너무 강해 외면받았고, 일부는 아예 버려지기도 했던 해산물이다.
지금은 다르다. 손질과 숙성 과정을 거친 이 생선은 고급 음식으로 재탄생해 전국 곳곳의 밥상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 20일, EBS 유튜브 채널에는 2016년 방송된 ‘극한직업 – 수산물 가공 공장’ 편이 재공개됐다. 제목은 “지금은 너도나도 한국에 팔려고 난리. 아무도 안 사는 물고기 한국에 수출했더니”였다.
영상은 한국에서 다시 소비되고 있는 수입산 생선의 숙성·가공 과정을 집중 조명했다. 공개 이후, 다시 한 번 이 생선의 존재감이 주목받고 있다. 오늘 소개할 생선의 정체는 바로 '홍어'다.
삭힘을 거쳐야 비로소 맛이 된다

국내산 홍어는 수량이 적어 유통량 대부분을 칠레 등에서 들여온 수입산이 채운다. 통째로 수입되는 일은 드물고, 머리와 꼬리를 제거한 ‘날개 부위’만 들여오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한 번에 1000 kg 이상이 들어오며, 이는 300~400마리 분량에 해당한다.
이 홍어는 한국 가공 공장에서 다시 태어난다. 작업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고인물 대신 흐르는 물로 이물질을 씻어낸다. 수압은 일정하게 유지하고, 세척이 끝난 홍어는 채반에 펼쳐 물기를 뺀다. 이때 수분이 고이면 제대로 삭히지 않고 쉽게 상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 건조된 홍어는 일정한 온도에서 최소 2주간 숙성된다.
홍어는 콩팥이 없어 요소를 소변 대신 피부로 내보낸다. 이 요소가 숙성 중 수분과 만나면 암모니아로 바뀌고, 그때부터 특유의 냄새가 생긴다. 하지만 이는 부패가 아니라 발효다. 그 덕분에 살이 쉽게 상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숙성은 단순히 시간을 두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온도와 습도는 물론, 수분의 흐름까지 꼼꼼히 관리해야 원하는 맛이 나온다. 숙성이 끝난 홍어는 껍질을 벗기는 박피 작업을 거친다.
이후 절단실에서 정해진 크기로 조각난다. 하루 수백 마리 분량의 홍어가 6~7mm 두께로 썰려 소포장된다. 이 모든 과정은 대부분 사람 손으로 이루어진다.
냄새를 넘어서야 보이는 맛

홍어는 한 입에 담기 어려운 맛을 갖고 있다. 입에 넣었을 때 처음엔 쿰쿰한 냄새가 다가오지만, 몇 차례 씹으면 단맛이 은근히 퍼지고 특유의 알칼리 향이 코끝을 타고 올라온다. 비린내가 아니라 삭힘이 만들어낸 풍미다.
삼합은 그 맛을 가장 잘 살려주는 방식이다.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 그리고 삭힌 홍어를 함께 입에 넣었을 때, 각각의 재료가 가진 결이 겹치면서 독특한 조화를 만든다. 탁주 한 잔이 입안의 알칼리성을 정리해주며 마무리 역할을 한다.
찐팬들은 이보다 더 강한 맛을 찾아 구이로 먹기도 한다. 전으로 부쳐낸 홍어는 냄새가 배가되지만, 그만큼 맛도 깊어진다. 홍어 간에 해당하는 ‘애’는 겨울철 흑산도산에서만 생으로 먹을 수 있다. 수입산은 유통 과정에서 품질이 변해 익혀야 한다.
외면받던 생선이 전국으로 퍼지기까지

지금은 전국 마트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홍어는 전남 일부 지역에서만 유통됐다. 변화를 만든 건 1997년. 영산포에서 수입산 홍어를 가공한 뒤 외부에 판매한 것이 시작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홍어를 선물로 사용하며 전국적 인지도를 얻게 됐고, 이후 가공과 유통 시스템이 체계화됐다.
지금 유통되는 홍어 대부분은 외국산이다. 하지만 삭힘과 절단, 포장까지 전 과정은 국내에서 이뤄진다. 생산과정이 까다롭고 냄새가 강해도 이 생선은 꾸준히 소비된다. 대중화된 미식이 아닌, 시간이 만들어낸 독자적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한 조각의 홍어는 단순한 해산물이 아니다. 손질과 숙성, 냄새와 식감, 지역의 식문화까지 축적된 결과다. 지금도 누군가는 그 냄새를 견디지 못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 냄새를 기다린다. 숙성된 맛은 그렇게 천천히 입안에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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