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내 짝꿍” 학부모 참여로 폐교 극복한 비안초
5년 전 14명→38명…학부모와 함께 학교 살리기 성공
1·2층 연결 '열린 도서관', 소통 공간으로 '자리매김'
10여개 방과후과정…"학원 없이도 다양한 교육 제공"
대한민국 지방 마을들이 인구 감소에 따른 소멸 위기에 처했습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인구 감소 시·군·구 89곳 중 85곳이 이에 해당됩니다. 소멸의 위기 속에 학교마저 사라지면 새로운 인구 유입 가능성은 아예 차단됩니다. 이데일리는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교육의 질을 제고해 학교를 살리고 있는 현장을 총 8회에 걸쳐 취재 보도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경북 의성 비안초 ②충북 괴산 문광초 ③경북 청송 파천초 ④경남 거제 장목예중 ⑤경남 고성 영오초 ⑥강원 원주 황둔중 ⑦경북 수륜중 ⑧경기 내촌중
지난달 찾은 경북 의성 비안초에서는 학부모 ‘참여’ 수업이 한창이었다. 3학년 수업에 참관한 학부모 이현숙(44)씨는 자녀 은하정 학생과 함께 복숭아 농장 풍경이 담긴 그림을 만들어냈다. 그는 “백도, 황도, 덜 익은 복숭아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을 그렸다”며 웃어 보였다. 같은 시간대 6학년 교실에서는 건빵을 활용해 여러 나라의 국기를 만들고 세계 지도 속에서 국가 위치를 찾고 익히는 수업이 진행됐다. 딸과 활동에 참여한 아빠 신현종(46)씨는 “집에서는 말수가 적은 딸이 학교 수업에서는 활발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놀랍다”며 “아내가 아이를 시골에서 키우기를 원해 비안초에 보내게 됐는데 수업까지 함께할 수 있어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비안초는 학부모의 높은 참여를 통해 폐교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날 진행된 ‘학부모 참여 수업’은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통상 뒷자리에서 수업을 참관하는 데 그치는 것과 달리 비안초에서는 학부모들이 직접 학생들과 수업에 함께 참여한다.
‘학부모 참여’로 폐교 위기 극복한 비안초
2017년까지 비안초는 쌍호초와 함께 경북 의성군 내 17개 학교 중에서도 가장 학생 수가 적은 학교로 꼽혔다. 두 학교는 각각 본·분교로 지정됐고 2019년에는 이마저도 ‘이두초’라는 교명으로 통폐합됐다. 2022년에는 비안초로 학교 이름을 바꿨다. 두 학교가 합쳐진 2019년 14명에 그쳤던 학생 수는 2020년 16명, 2021년 19명, 2022년 22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2023년 36명에 이어 올해는 38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학생 수가 크게 늘어난 비안초는 현재 의성군 내 6번째로 큰 학교로 자리매김했다.
교사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학부모와 자주 소통하면서 교과 활동과 학교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임남 비안초 교장은 “작은 학교일수록 교직원·학부모·지역사회가 한 마음으로 움직일 때 시너지 효과가 크다”며 “학부모들이 학교 행사와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학교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학생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부모 참여가 자녀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교장은 “아이들이 유년기에 부모와 함께하는 경험은 평생의 정서적 안정감과 애착 형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며 “학부모들의 적극적 참여·협력은 비안초가 지속 가능한 교육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할뿐만 아니라 학생·학부모 간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비안초는 지난 2022년부터 교실 증축과 특별실 리모델링 등을 통해 깔끔한 외관으로 탈바꿈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새롭게 조성된 개방형 도서관이다. 학생 수 증가로 기존 도서관 공간을 2학년 교실로 쓰게 되면서 따로 도서관이 없었다. 이에 증축 과정에서 학교 건물 1층·2층을 연결하는 공간에 도서관을 마련했다. 이 공간은 독서발표회 등 교내행사나 외부 강연장으로 활용되는 등 다양한 행사 공간으로 쓰이기도 하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휴식하는 공간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오영희 비안초 교감은 비안초 도서관의 독특한 구조가 학생·교사·학부모 간 소통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단순한 독서 공간을 넘어 학부모와 교사, 학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는 다목적 공간이 됐다”며 “이를 통해 학부모들이 자녀의 학습 과정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학교와의 소통이 원활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비안초는 학교 본관 뒷편 부지에 체육관을 새로 짓는 등 학생들을 새로 맞이할 최신식 교육 환경을 갖추고 있다. 장민우 비안초 교무부장은 “시골 학교라는 이유로 건물이 낡고 교육환경이 낙후됐을 것이란 생각은 고정관념”이라며 “오히려 최신 시설과 교육 도구를 갖추고 있어 비안초로 자녀를 보낼까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학교를 둘러보면서 만족한다”고 설명했다.
비안초는 새로 단장한 교육 환경에서 학부모들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폐교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학교의 탄탄한 교육과정도 자리하고 있다. 시골 학교라 하더라도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을 얻기 어렵다는 점에서 비안초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장 교무부장은 “과학실은 멀티스크린, 최신형 현미경 등 최신 교육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지난해까지 최신형 디지털 기기 보급을 완료해 AI코스웨어를 활용한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 역시 학부모들의 호응이 높다. 2학기를 기준으로 방송댄스, 바이올린, 피아노, 영어회화, 코딩, 생명과학 등 10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장 교무부장은 “농산어촌 방과후학교 지원금과 통폐합학교 지원금을 통해 양질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방지영(44)씨는 “남편을 따라왔는데 1년만 있다가 경기도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비안초의 방과후 프로그램과 지자체 지원 교육 프로그램에 만족해 4년째 머물고 있다”며 “사교육 없이도 자녀가 질 높은 교육을 받고 있어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김윤정 (yoon95@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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