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사건파일

/사진 제공=삼성증권
국민연금공단이 7년 전 이른바 '유령주식 배당 사고'를 낸 삼성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지금까지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공회전하고 있다. 소장 접수 5년 만에 1심 판결이 나왔지만 양측의 항소로 소송은 2심으로 넘어갔다. 이마저도 재판부 교체로 첫 재판이 연기되는 등 선고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은 이 사건의 항소심 첫 변론기일을 당초 올해 4월24일로 지정했으나, 재판부 재배당으로 기일을 미루고 추후 지정하기로 했다. 첫 변론기일은 새 재판부가 다시 정한다.
삼성증권의 배당 사고는 2018년 4월 발생했다. 당시 증권관리팀 직원의 전산입력 실수로 우리사주 조합원들에게 1주당 1000원이 아닌 1000주의 주식이 배당됐다. 2018명의 증권 계좌에 배당금 28억1295만원이 입금돼야 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유령주식 28억1295만주가 전산상 입고된 것이다.
이를 확인한 삼성증권은 사내업무 전산 시스템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주식매도 정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약 31분간 직원 22명이 1208만주의 매도주문을 냈고 그 중 16명의 약 530만주는 매도 계약이 체결됐다. 이에 따라 사고 당일 삼성증권 주식 거래량은 전날의 40배 이상인 2080만주에 달했다. 한때 주가는 전날 종가 대비 약 11.68% 하락한 3만5150원으로 최저점을 기록했다.
이후 금융감독원은 삼성증권에 대한 특별검사를 진행해 우리사주 배당 시스템의 내부통제 미비, 배당업무 매뉴얼 부재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또 금융위원회는 삼성증권이 금융사지배구조법에 따른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1억4400만원의 과태료 부과, 6개월간 신규 투자중개업 영업 일부정지 처분 등을 내렸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10억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2019년 6월 삼성증권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은 배당 사고로 주가가 하락해 손해를 봤다며 약 299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연금공단은 배당 사고 당일 보유한 주식 중 94만주를 비롯해 같은 해 9월28일까지 총 357만주를 매도했다.
1심 판결은 지난해 8월에야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회일 부장판사)는 "삼성증권은 배당 지급 등 전자금융거래가 안전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운영해야 하고 금융거래에 이상이 있는 경우 이를 탐지해 주식이 입고되지 않도록 하거나 필요 시 거래정지 등 적절한 조치로 피해를 방지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삼성증권은 우리사주 배당 시스템을 적정하게 설계하지 않았고 배당 업무 절차, 요건 등에 관한 내부적 처리 기준이나 방침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적절한 위험관리 기준을 마련하지 않아 삼성증권은 배당 사고 이후 우리사주를 받은 임직원들의 매도행위를 막는 실효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며 "임직원 계좌에 대한 매도주문 차단 등의 조치가 지연돼 결국 배당 사고에 이어 대랑 매도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다만 '삼성증권이 배당 업무를 담당한 직원 등의 사용자로서 민법상 사용자책임도 부담한다'는 연금공단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용자책임은 직원이 업무 수행과 관련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고용주가 대신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이다. 재판부는 "배당 업무 담당 직원들의 과실과 연금공단의 손해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을 고려한 재판부는 삼성증권의 책임을 전체 손해의 50%로 제한해 연금공단에 약 18억6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연금공단은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로 사고 당일부터 2거래일까지 대량의 주식을 매도한 것이 삼성증권의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연금공단의 손해를 모두 삼성증권에 책임지게 하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박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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