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동훈, ‘김건희·한동훈 갈등’ 돌파할 수 있나
교수 시절 경험이다.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하기 싫은 교수에겐 이메일을 활용한다. 전화로 의견을 물을 수도 있지만 말 섞기도 싫은 것이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는 조교를 보내 묻는 경우다. 상대하기도 싫은 것이다. 교수들을 오가는 조교를 보며 '너희가 참 수고가 많다'며 측은해했다. 교수로서 부끄러웠다.
최근 한동훈 대표는 대통령과의 독대 요청 사실을 언론에 흘렸고, 대통령실은 이를 또 언론을 통해 거부했다. 정부와 여당이 주고받는 언론플레이에 국민은 어리둥절하다. 그런 식으로 대통령을 압박하는 당대표나 '미운 놈' 절대 안 보겠다는 대통령이나 못나기는 매한가지다. 부끄러움이 없다.
조급해진 한동훈
한 대표가 급해졌다. 당대표 취임 후 두 달이 지나도록 성과도 없었고 문제해결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한 대표의 리더십에 자당 의원들마저 냉소적이다. 소속 의원 대부분 안테나 세워놓고 구경만 하는 중이다. 보수 진영은 조중동까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채근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결국 한 대표는 검사 시절 잘 했다던 언론플레이를 꺼내들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밀어붙여 "나는 대통령에게 할 말 했다"는 사실이라도 만방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동훈 죽이기'를 작정한 대통령 입장에선 한동훈만 좋을 독대에 응할 리가 없다. 그런 식으론 될 일도 안 된다. 임기가 절반 이상 남은 대통령을 상대로 한 대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만 만방에 알린 꼴이다.
애당초 한 대표가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것부터가 판단 미스다. 어느 자리에 갈지 말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저 직을 맡게 되면 '잘할 수 있는가' 여부다. 자리만 탐해서 갔다가 곧 밑바닥 드러나 체면만 구기고 사라진 사람들 많다. 당시 한 대표에겐 잘할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없었다. 본인은 원외 신세고 당내 세력도 없을 뿐 아니라 대통령 임기는 3년이나 남았는데 둘 간 사이도 틀어진 정도가 아니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한 대표에겐 '잘할 수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그가 검사 시절 김건희 여사와 카톡 등 수백 번의 사적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상관의 아내가 남편의 아래 직원과 그런 사적 연락을 주고받는 경우를 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수시로 날아올 김건희 여사의 요청(지시?)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하고 '윤석열 치하'의 정치판에 뛰어들었어야 했다. 남편이 잠들면 아내가 늦은 밤, 새벽까지 남편의 일을 챙기는 부부 아닌가.
본질은 '김·한 갈등'
최근 폭로되는 녹취록과 문자 등을 종합하면 한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이 갈라서게 된 결정적 계기는 김 여사의 뜻을 한 위원장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윤·한 갈등'은 실상은 '김·한 갈등'이다.
대통령이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이관섭 대통령실장이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게 1월 21일이다. 당시 김 여사가 연이어 보낸 문자에 한 대표가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이른바 '읽씹 논란'을 들여다보면 김 여사는 집요하게 공세적 인파이팅을 하는 반면 한 대표는 거리를 두고 피하는 모양새다. 당무 개입은 불법이라 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지난 주 조선일보에 "김건희 여사 사과 필요하다"고 말했고 대통령에겐 독대를 신청해 김 여사 문제를 이야기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여사와는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다. 결국 한동훈이 넘어야 할 산은 김건희다.
'배신자 한동훈'의 선택은?
윤석열 대통령은 그를 법무부 장관에 발탁해 벼락출세를 시켜준 사람이다. 집권당 비대위원장에도 앉혀줬다. 그런 대통령(부부?)의 지시를 받들지 않고 '자기 정치'에 나섰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나라" 했는데 그걸 거부하고 오히려 언론에 공개했다. '나는 당신 꼬붕 아니다'라는 선언이다. 지금도 대통령을 상대로 언론플레이를 한다. 윤 대통령 부부 입장에선 은혜를 배신으로 갚은 것이다.
'되게는 못해도 안 되게는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윤 대통령 부부는 '배은망덕한 한동훈'을 처단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동훈은 맞서 항전할 것인가? 그런데 문제다. 상대를 해주지 않는다. 차별화? 터무니없이 너무 일찍 시작했다. 한 줌의 세력도 없이, 혼자 들어가 어떻게 당을 움직이나. 정치를 너무 쉽게 봤다.
뭘 해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이제는 언론도 국민도 안다. 그러는 사이 "한동훈 별 거 없네"라는 무능의 이미지만 쌓여갈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 대표는 평소 "내가 대통령을 잘 안다"고 했다던데, 잘 아는데 저 정도인가?
국민은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자존심 싸움이 황당하기만 하다. 세 정치초보(?)의 다툼으로 국정이 뒤엉키는 지경에 이르렀고 어쩌면 이들의 관계 때문에 정계개편이 촉발될 상황이다. 그런데 어쨌든 칼자루를 쥔 것은 대통령 부부다. "내 스태프"여야 할 원내대표는 오히려 나를 무시한다. 그렇다면 한 대표는 이러한 상황에 계속 갇혀있을 필요가 있을까? 과연 한동훈의 길은 무엇일까.
[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uppercutrul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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