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월?' 김하성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난 주말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지난 4년간 펫코파크를 누볐던 김하성(29)이다. 김하성은 탬파베이 이적 후 처음으로 팀과 동행하면서 친정팀과 재회했다. 부상자 명단에 등재된 선수가 원정 시리즈를 함께 하는 건 이례적이다.

펫코파크 전광판 김하성 (중계화면 캡쳐)
김하성을 그리워하는 문구 (중계화면 캡쳐)

샌디에이고는 오랜만에 구장을 찾은 김하성을 환대했다. 전광판에 샌디에이고 시절 활약상을 띄우면서, 김하성을 그리워하는 문구도 보여줬다. 김하성도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라고 말하면서 감상에 젖은 듯한 모습이었다.

샌디에이고 중계진은 김하성을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은 선수"라고 회상했다. 마이크 실트 감독은 "정말 열심히 하기 때문에 모두가 인정하는 선수"라고 하면서,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칭찬했다. 또한 "많은 경기를 이기는 데 도움을 준 좋은 선수"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하성의 공헌도는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공격 수비 주루를 모두 반영하는 승리기여도는 최근 가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지표다. 각 기관마다 계산법이 조금 다르지만, <베이스볼레퍼런스>와 <팬그래프>가 주로 활용된다(레퍼런스는 bWAR, 팬그래프는 fWAR로 표기). 김하성이 주전으로 도약한 2022년 이후, 샌디에이고 야수 <레퍼런스> 승리기여도 1위가 김하성이었다. <팬그래프>에서도 마차도에 이은 2위였다.

2022-24년 샌디에이고 야수 bWAR

13.0 - 김하성
12.5 - 매니 마차도
7.9 -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7.0 - 후안 소토

*fWAR 1위 마차도(14.1) 2위 김하성(10.5)


사실 김하성은 샌디에이고 방문이 주목적이 아니었다. LA에 있는 닐 엘라트라체 박사를 만나는 일정이 먼저였다. 엘라트라체 박사는 지난해 김하성의 어깨 수술을 맡은 집도의다. 김하성은 이번 정기검진 소견에 맞춰 다음 계획을 세워야 했다.

경과는 좋았다. 복귀에 차질이 생기진 않았다. 김하성도 검진 이후 예정된 훈련을 그대로 소화했다. 긴 터널이 끝난 건 아니지만, 그 끝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

지연?
당초 김하성은 5월 복귀가 유력했다. 심지어 '4월말에 돌아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었다. 그러나 최근 <탬파베이 타임스> 마크 톱킨은 "김하성이 6월 중순 혹은 7월에 돌아올 것"을 시사하면서, 복귀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케빈 캐시 감독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인정했다. 김하성이 받은 어깨 관절와순 봉합술이 '큰 수술'이라고 강조했다. 어깨 관절와순 수술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보통 복귀하는 데 6개월 이상 걸린다. 특히 김하성은 송구와 관련된 오른쪽 어깨라는 점에서 더 조심스럽다.

거쳐야 할 관문들이 남은 건 분명하다. 가벼운 타격과 수비 훈련을 하고 있지만, 언제 실전 경기에 투입될지는 미지수다. 송구도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후문이다.

실전 경기에 나선다고 해도 몸상태를 만들려면 시간이 걸린다. 정상적으로 시즌을 끝낸 선수들도 스프링캠프 시범경기를 통해 약 한 달 동안 준비한다. 초반에는 한 두 타석 정도 들어선 뒤, 경기 감각을 끌어올린 다음에야 전체 경기를 소화한다.

김하성 (중계화면 캡쳐)

김하성은 시간이 더 소모될 수밖에 없다. 작년 8월19일이 마지막 경기였다. 틈틈이 휴식을 취하면서 회복 과정도 봐야하기 때문에 최소 3주 이상 잡아야 한다. 그러면 5월 초부터 마이너리그 경기에 투입돼도 6월에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다만, 변수는 있다. <탬파베이 타임스>도 김하성이 유격수가 아닌 2루수와 유틸리티 혹은 지명타자를 맡게 될 경우 더 빨리 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But there also are scenarios where Kim could return earlier if the Rays were going to use him in a less stressful way, such as playing second base or in a utility or DH role).

그렇다고 해도 이는 '가정'일 뿐이다. 결국 김하성 복귀의 마지막 관문은 유격수 수비 완성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교통정리
탬파베이는 김하성이 유격수로 와야 고민이 줄어든다. 김하성의 부재로 개막전 유격수를 맡았던 테일러 월스가 전혀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다. 지난 시즌에도 84경기 타율 .183에 그쳤는데, 올해는 성적이 더 떨어졌다(26경기 타율 .164, OPS 0.469). 70타석 이상 들어선 아메리칸리그 타자 126명 중 OPS가 5번째로 낮다.

AL 타자 OPS 하위 (70타석)

0.469 - 테일러 월스
0.467 - 헌터 렌프로
0.449 - 마커스 시미언
0.443 - 마이클 메시
0.374 - 작 피더슨


물론 월스는 수비에선 특출나다. 수비는 골드글러브를 경쟁해도 손색이 없다. 수비로 실점 방지 여부를 계산하는 디펜시브런세이브(DRS)에서 지난 시즌 이후 +17을 기록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유격수 전체 1위다(2위 메이신 윈 DRS +16).

하지만 공격이 너무 심각하다. 공격력은 메이저리그 유격수 꼴찌다. 그러다 보니 탬파베이는 유격수 김하성이 절실하다. 김하성 역시 유격수로 나와서 기량을 증명해야 당장 다음 FA 때 몸값을 높일 수 있다. 양측의 이해관계는 맞아떨어진다.

탬파베이가 김하성을 지명타자로 내세울지는 의문이다. 지명타자는 공격력이 월등해야 한다. 타석에서의 생산력 하나로 팀 승리를 이끌어야 한다.

올해 탬파베이 지명타자는 얀디 디아스다. 팀 28경기 중 26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장했다(조나단 아란다 & 주니어 카미네로 각 1경기). 디아스는 2년 전 리그 타격왕에 오르면서 실버슬러거를 수상했다. 올해도 출발은 좋지 않았지만, 첫 12경기 타율 .163 이후 최근 16경기 타율 .299로 살아나는 분위기다.

얀디 디아스 (사진 - 탬파베이 SNS)

디아스는 팀의 리더이자, 구심점이기도 하다. 동료들이 믿고 의지한다. 이런 선수를 밀어내는 건 부담스럽다. 설령 지명타자 기회를 받는다고 해도 부상 복귀 직후 이적한 팀에서 곧바로 성과를 내는 건 쉽지 않다.

무엇보다 김하성의 강점은 공격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비가 더해져야 김하성의 가치를 오롯이 실감할 수 있다. 탬파베이도 김하성의 다재다능한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탬파베이는 현재 유격수를 제외한 나머지 포지션은 고정돼 있다. 1루수 아란다는 시즌 초반 팀 내 최고 타자다(26경기 타율 .309 4홈런, OPS 0.968). 최근 다소 부진하지만, 지난 시즌 후반부터 꾸준히 출장하고 있다. 3루수 카미네로도 탬파베이가 주력하는 기대주다. 두 선수는 향후 탬파베이를 지탱해야 하는 주축들이다.

2루수 브랜든 라우는 탬파베이 터줏대감이다. 2019년 이후 탬파베이에서 가장 많은 124홈런을 때려냈다(2위 랜디 아로사레나 85홈런). 하지만 최근 트레이드 후보로 계속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설상가상 시즌 후 FA가 되기 때문에 이별이 유력하다. 같은 입장이었던 디아스가 연장 계약을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김하성은 아무래도 복귀 초반에는 2루수로 들어오는 게 부담이 덜하다. 그러면 라우의 상황에 따라 복귀 시점은 달라질 수도 있다.

배경
김하성의 복귀 시점 기사를 쓴 톱킨은 구단 사정에 밝은 기자다.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시절부터 담당했다. 톱킨이 언급한 6월 이후 복귀론을 무작정 부정할 순 없다.

탬파베이는 우승 경쟁을 하는 팀이다. 같은 지구에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있지만, 그들만의 야구로 우승에 도전한다. 지난해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기 전까지는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김하성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보강했다. 우승 의지가 없다면, 굳이 돈을 쓸 이유도 없다.

탬파베이가 속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모두가 우승을 노린다. 치열한 지구이기 때문에 시즌 초반보다 중후반이 승부처다. 김하성이 빨리 복귀해서 힘을 실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보다는 확실하게 돌아와서 분수령 때 자리를 지켜줘야 한다. 급한 마음에 일을 그르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조지 스타인브레너필드 (사진 - 구단 SNS)

탬파베이는 홈구장 트로피카나필드가 허리케인 밀턴의 여파로 지붕이 뜯어졌다. 그래서 올해 조지 스타인브레너필드를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한다.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스타인브레너필드는 야외 구장이다. 여름이 되면 폭염과 폭우가 기다리고 있다. 사무국도 잦은 경기 취소를 우려해 시즌 초반에 홈 경기를 몰아서 배정했다.

탬파베이 월별 홈 경기 변화

3/4월 : 21경기
5월 : 16경기
6월 : 14경기
7월 : 8경기
8월 : 8경기
9월 : 14경기


이로 인해 탬파베이는 7월부터 원정 경기를 자주 치른다. 체력적으로 지치는 시기에 이곳저곳 전전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에릭 니엔더 사장이 김하성을 영입할 때 팀에 활력소가 되길 바란다는 듯한 말을 했었다. 팀이 처질 때 김하성의 복귀로 분위기 전환을 도모할 수 있다.

구체적인 복귀 일정은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정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탬파베이가 신중하게 다루는 건 그만큼 김하성이 팀의 핵심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빠른 복귀보다 완벽한 복귀가 우선이다.

김하성의 시계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돌아갈지언정, 더 이상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