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친환경 식품 유통기업 초록마을의 회생계획안 표결이 약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7월 회생절차 개시 이후 1년여 만이다. 다만 이번 회생계획안은 통상적인 회생 사건과는 구조가 다르다. 정작 돈을 받지 못한 채권자들이 직접 초록마을을 인수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 제18부는 지난 6일 초록마을의 회생계획안 심리 및 결의를 위한 관계인집회 기일을 오는 28일로 정했다. 이날 추완신고된 회생채권 등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기일도 함께 열린다.
관계인집회는 채무자가 제출한 회생계획안을 채권자들이 심리한 뒤 표결하는 절차다. 회생채권자 조에서는 의결권 총액의 3분의2 이상이 동의해야 회생계획안이 가결된다. 회생담보권자 조가 있을 경우에는 의결권 총액의 4분의3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추완신고는 법원이 정한 채권 신고 기간이 지난 뒤 채권을 늦게 신고하는 것을 뜻한다.
초록마을은 1999년 설립된 국내 1세대 친환경·유기농 식품 유통기업이다. 2009년 대상그룹에 편입됐고, 2022년에는 온라인 축산물 유통 스타트업 정육각이 지분 99.57%를 876억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이후 적자가 이어진 데다 자금 조달까지 막히면서 정육각과 초록마을은 지난해 7월 나란히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초록마을은 회생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추진하기 위해 삼일회계법인을 매각주간사로 선정했다. 하지만 약 1년 동안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조건부 인수예정자를 먼저 정한 뒤 공개입찰을 진행하는 스토킹호스 방식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KK홀딩스가 신한캐피탈로부터 구주를 50억원에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채권단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공개경쟁입찰로 전환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고,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은 올해 들어서만 여러 차례 연장됐다.
매각이 지연되는 사이 회사의 규모는 빠르게 줄었다. 매장 수는 회생절차에 들어갈 당시인 지난해 7월 292개에서 이달 176개로 감소했다. 1년 만에 39.7% 줄어든 것이다. 임대료 체납 여파로 물류센터 운영도 자체 체계에서 외부 업체에 배송과 보관을 맡기는 제3자 물류 방식으로 전환됐다.
인수 작업을 어렵게 만든 핵심 요인은 초록마을의 기업가치였다. 삼일회계법인 실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30일 기준 초록마을의 청산가치는 122억원, 계속기업가치는 마이너스 234억원으로 평가됐다. 계속기업가치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영업을 계속할수록 오히려 기업가치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청산가치와 계속기업가치의 차이는 356억원에 달했다.
교착 상태를 깬 것은 새로운 인수 후보가 아니라 채권자들이었다.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업체들은 지난 4월 대책회의를 열고 채권자 주도의 회생계획 인가 전 M&A를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이어 같은 달 16일 서울회생법원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인수 주체로 나선 초록마을채권단협의회는 협력업체와 가맹점주, 친환경 농가 등으로 구성됐다.
인수 절차도 이례적이다. 법원은 지난달 20일 초록마을이 신청한 회생계획 인가 전 M&A 투자계약 체결 허가를 받아들였다. 회생계획안이 인가되기 전에 투자계약을 먼저 맺은 것으로, 통상 회생계획 인가 이후 계약을 맺는 관행과 순서가 뒤바뀐 구조다. 회생절차가 마무리되면 이원영 초록마을채권단협의회 대표가 경영을 맡을 예정이다.
다만 채권자 사이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릴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인수에 참여한 협력업체들은 인수자이면서 동시에 채권자라는 두 가지 지위를 갖는다. 인수대금이 낮아지면 채권자로서 받는 변제액은 줄어들지만, 인수자로서는 부담해야 할 금액이 감소해 손익이 일부 상쇄된다.
반면 인수에 참여하지 않은 채권자들은 지분을 받지 못한 채 회수액만 줄어들 수 있다. 인수 주체인 협력업체들이 회생채권자 조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채권자 표결과 법원의 회생계획안 인가 여부가 절차의 실질적인 관문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초록마을 사례는 끝내 인수 의향을 보이는 후보가 나타나지 않자 채권자들이 직접 인수에 나선 경우로, 기존 M&A 시장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이례적인 사례"라며 "채권자들이 회수율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인수에 참여하지 않은 채권자는 회수액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는 만큼,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황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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