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난 딸을 두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고생고생한 배우
31일 개봉하는 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감독 김성제·제작 영화사 수박)에서 송중기는 10대부터 30대까지의 한 인물을 소화한다. 이야기는 '커피의 나라'라는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머나먼 이국땅 콜롬비아에 뚝 떨어져 적응해가는 더벅머리 소년 국희의 연대기다. 2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중기는 영화의 국희처럼 작품에 갖는 기대와 각오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영화 출연을 결정하고 촬영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 매니저도 없이 처음 낯선 나라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풀어냈다.
"원래 제작진이 사전 조사차 보고타에 가는 일정이었는데 남미에 가본 적이 없고 어디서부터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함께 따라갔다"는 송중기는 현지 타투숍에서 난생 처음으로 귀걸이를 해보고, 의상도 맞춰가며 국희라는 인물에 동화돼 갔다.
'보고타'는 2015년 영화 '소수의견'을 연출한 김성제 감독의 신작으로, 지난 2019년 말 콜롬비아 보고타 현지에서 크랭크인 했지만 마침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한 차례 촬영이 중단됐다. 제작진도, 송중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을 재개할 줄 알았지만 기약 없이 길어진 팬데믹 여파로 2021년이 돼서야 남은 촬영을 재개할 수 있었다. 변수가 많은 현지 로케이션 촬영에 재난이 겹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흔들림 없이 작품을 완성해 세상에 내놓는다.
급박했던 당시 로케이션 상황을 회상한 송중기는 "촬영 중이었는데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나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길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며 "갑자기 불안했다. 영화를 준비하다가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엎어진 경험은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돌이켰다. 예상하지 못한 여유가 생긴 송중기는 그 사이 tvN 드라마 '빈센조'를 찍었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서도 "('보고타' 촬영이 재개되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났다"며 "지금은 개봉한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송중기와 '보고타'의 인연은 사실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인이던 송중기를 발탁해 영화에 캐스팅했던 제작자(영화사 수박)가 시간이 흘러 '보고타'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이에 송중기가 다시 합류했다. 그는 "신인 때 제작사의 대표님을 처음 뵈었는데 그분이 가진 프로듀싱 마인드가 좋았다. 영화도 사람들끼리 하는 일이지 않나. 그런 부분이 제가 '보고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촬영이 주는 매력이 분명하게 있어요. 100% 올 로케이션 촬영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평소에 그런 도전에 끌리는 성격이에요. 콜롬비아 현장의 분위기 때문인지, 저의 기질이 그곳과 잘 만나서인지 모르겠지만 국희 캐릭터도 처음 시나리오보다 네 다섯 배는 뜨거워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콜롬비아 사람들이 흥도 많아요. 길가에서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추기도 하고요.(웃음) 한국 스태프들보다 콜롬비아 현지 스태프가 두 배는 많았어요. 지금까지도 연락하면서 지내는 분들도 있고요.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스며든 부분이 있죠."
영화는 1997년 IMF 금융위기의 어려움 속에서 한국을 콜롬비아에 정착하는 국희와 그 가족의 이야기다. 국희가 처음 보고타의 땅을 밟은 이후 2008년까지 10여년의 시간을 다루는 '보고타'에서 송중기는 19살부터 30대까지의 변화를 차분하게 그린다. 1985년생으로 IMF 당시에 초등학생이던 송중기는 영화의 배경인 당시 분위기가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했다.
송중기는 "저희 아버지도 사업을 하던 분"이었다며 "어릴 때 직접적으로 (금융위기를)느낀 부분이 있다. 김성제 감독님이 영화의 시기를 왜 그 때로 정했는지 이해가 됐고, 한국의 반대편인 남미의 콜롬비아로 배경을 설정한 것도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송중기는 활발한 작품 활동의 가운데 단란한 가정도 꾸리고 있다. 2023년 영국 배우 출신의 케이티 루이스 사운더스와 결혼한 송중기는 같은 해 6월에 첫째 아들을, 올해 11월에는 둘째 딸을 얻었다. 이번 영화는 개인적으로도 송중기에게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장모님이 콜롬비아 출신이라는 송중기는 "('보고타' 개봉에)엄청 반가워하셨다. 아마도 스페인어를 잘했는지 지켜보실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면서 "한국에서 극장 개봉을 하면 자막이 없으니 나중에 OTT에 공개될 때 볼 것 같아 떨린다. 극 중에서 스페인어를 잘하고 싶었던 이유였는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첫째 아이를 낳고 거의 1년을 쉬었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더 바쁘게 살았는데 지금은 예전보다 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가열차게 작품을 해온 삶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요즘은 숨을 고르면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아이들이 금방금방 크더라고요. 첫째를 보면 벌써 깜짝깜짝 놀라요. 분명 둘째도 금방 클 것 같아요. 뭔가 주어졌을 때 책임감이 큰 성격이라서 아이들이 더 소중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