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흥 이끌다 국정농단 연루에 나락… 쇄신책 골머리 [심층기획-위기의 전경련]

정재영 2023. 2. 1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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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정기총회 결과 이목 집중
박근혜 K스포츠 재단 후원금 직격탄
회원사 600여사서 420여개사로 줄어
허창수 회장·권태신 상근부회장 용퇴
내주 새 회장 윤곽·쇄신 구체안 촉각
정권마다 ‘싱크탱크 전환’ 목소리 나와
美 헤리티지·CSIS 등 언급 성과 없어
4대 그룹 복귀·경총등과 통합 등 거론
실현 가능성 부정적… 전망 가시밭길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경제 부흥을 이끌며 올해 창립 62주년을 맞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운명이 오는 23일 정기총회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전경련은 2016년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K스포츠·미르재단을 위한 후원금을 모금한 사실이 드러난 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일로 전체 예산의 과반을 책임진 삼성·LG·현대차·SK 등 4대 그룹이 탈퇴했다. 전경련은 단체명 변경·싱크탱크 기능 강화 등 쇄신안을 내놨지만 문재인정부 5년간 외면당하면서 입지가 좁아졌다.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당선인과 경제 6단체장의 도시락 오찬 간담회를 주선하면서 봄날을 예고했지만 정부 출범 후 우호적인 분위기는 사라졌다. 대통령실 쪽에서 ‘경제단체 6개는 너무 많다’고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2011년부터 6회 연속 전경련 수장을 맡은 허창수 회장이 경제단체장 비공개 만찬, 윤 대통령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경제사절단에서 잇따라 배제됐고, 허 회장이 임기를 한 달 남기고 용퇴 의사를 밝히면서 새 회장 선임과 전경련 쇄신이라는 어려운 과제만 남았다.

◆고사(固辭)의 역사… “‘구멍난 배’ 선장 되고 싶겠나”

15일 재계에 따르면 허 회장이 용퇴 의사를 밝히고 전경련 회장후보추천위원장 겸 미래발전위원장으로 선임된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은 그간 롯데 신동빈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LS 이사회 의장), 류진 풍산 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등에 직·간접적으로 회장직을 제안했지만 명쾌한 답을 듣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명예회장도 회장직을 거절하고 새 인물 찾기에 나선 만큼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최근에 전경련 회장 제의를 선뜻 받아들인 사례가 드물다.

허 회장도 2011년 취임 때 처음엔 고사했고, 2017년과 2019년, 2021년 회장 교체기마다 연임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마땅한 후보가 없어 최장수 회장이 됐다. 이전 회장들 중에 고사했다가 등 떠밀려 수장이 된 사례가 많고, 지금 후보들도 십수년 전부터 회장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62년간 허 회장을 포함해 14명이 2년 임기의 회장을 맡았다. 평균 2회 이상 수장을 맡은 것이다. 국정농단 사태 이전에도 인기 없는 자리였다. 국정농단 사태 직후 전경련 회원사는 600여개에서 450여개로 줄었고, 현재 420여개다.
시대가 변했다는 얘기도 한다. 과거 경제 부흥기엔 정치가 경제를 이끌어 큰 성과를 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지만, 기업 경제 활동이 모두 공개되는 요즘엔 성과가 있어도 ‘정경유착’이라는 부조리로 비칠 수 있다. 전경련은 매번 정권을 위한 모금에 앞장섰고, 정치인 로비 창구로 여겨지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과거 부조리에 대한 책임을 모두 넘겨받은 셈이다. 오래된 정경유착 악습을 정권과 정치가 먼저 끊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경련이라는 거대한 배에 구멍이 난 것에 정권과 정치 탓도 있다는 얘기다.

새 회장 선임과 관련해 회장 직무대리나 임시 회장 체제 등도 언급되지만 이번에 권태신 상근부회장까지 함께 용퇴했고, 전경련이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난항을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쇄신 단골 메뉴, 재계 바라는 싱크탱크 현실

전경련 쇄신 목소리는 거의 매 정권 때마다 나왔다.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 모금 사실이 5공 청문회에서 드러났고,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대선 비자금을 제공한 재벌 총수들이 처벌됐다. 1997년 불법 대선 자금 모금에 연루됐고, 2011년엔 주요 회원사에 로비 대상 정치인을 할당한 문건이 공개되면서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전경련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럴 때마다 등장한 게 싱크탱크로의 전환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6년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K스포츠·미르재단을 위한 후원금을 모금한 사실이 드러난 이후 4대 그룹 탈퇴 등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사진은 23일 정기총회에서 신임 회장 선임과 쇄신안 발표 등이 예상되는 전경련의 사옥 전경. 전경련 제공
2016년 12월 국정농단 사태 국회 국정조사에서 구본무 LG 회장은 “전경련은 미국 헤리티지재단처럼 운영되고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고 했다. 전경련은 2011년 정치인 할당 문건 공개 때에도 정치권 요구에 “헤리티지재단 모델을 연구하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없었다.

최근 4대 그룹 수장들 사이에선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로 언급된다고 한다. 미국이 전기차법(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들고나온 상황에 대응할 전략을 짜고 우호적인 방향으로 로비할 조직이 절실한데, 전경련이 그 역할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CSIS나 헤리티지재단은 미국에 기반을 둬 미 의회 로비가 가능하고, 트럼프정부 이후 워싱턴에 싱크탱크가 몰려 규제 요건이 까다로워졌다고 한다. 하나의 국가나 단체만을 연구하는 싱크탱크도 드물다. 당장 실행 가능한 제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전경련 산하에 한국경제연구원이 있지만 한때 30명에 육박하던 박사 인력은 6명뿐이다.

◆쇄신은 4대 그룹 복귀부터?… 여러 상황상 불가능할 듯

전경련은 쇄신의 첫 단추로 내심 ‘4대 그룹이 복귀해 결자해지하는 것’을 바라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해 보인다. 삼성전자가 이재용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안을 다음달 주총 안건에 포함시키지 않으면서 전경련 복귀는 물 건너갔다.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혐의 재판 등이 이어지는 상황인 데다 반도체 경기 둔화로 자회사에서 20조원을 차입할 정도의 ‘비상 상황’이라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수장 취임 2주년이다. 상의 업무에 집중하는 최 회장도 전경련 복귀엔 부정적이라고 한다. 전경련에 발길이 뜸했던 LG 오너가는 국정농단 사태 이후엔 ‘불호’가 더 심해졌다. 앞서 정몽구 명예회장이 오래전 전경련 회장직을 고사한 현대차도 복귀를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6단체 중 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를 제외한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의, 무협과의 통합 가능성도 제기된다. 손경식 경총 회장이 3년 전부터 전경련과의 통합을 바랐다. 전경련은 그룹 오너 위주의 420개 회원사가 있지만, 경총은 지방 기업까지 4000개가 넘는다. 재계에선 “전경련이 1970년 설립한 경총은 노사관계 선진화를 목적으로 해 조직 성격이 너무 다르다”며 부정적이다. 상의와 무협은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통합이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 7일 전경련 중장기 쇄신안의 기본 틀이 발표됐고, 구체적 내용은 23일 정기총회에서 공개된다. 한국의 주요 8개국(G8) 도약을 이끌 단체로 재탄생하겠다는 것인데, 그 첫 프로젝트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와의 한국판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젊은 층과의 소통을 스타트로 삼은 것이다. 다음주 총회에서 새 회장의 윤곽이 나오고 쇄신안이 환영받을지 주목된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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