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인공지능(AI) 칩 시장을 이끌고 있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책임자(CEO)가 약 15년 만에 방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일명 '치맥(치킨+맥주) 회동'을 가졌다.
이번 회동은 단순한 친목을 넘어 한미 양국에서 반도체와 모빌리티 산업을 대표하는 세 사람의 만남이란 점에서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들은 향후 고대역폭메모리(HBM)부터 자율주행·미래차를 아우르는 'AI 협력'을 강화하고 나아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것으로 예측된다.
韓·美 빅샷 3자 회동…글로벌 산업계 이목 '집중'
30일 재계에 따르면 황 CEO는 이날 오후 3시께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이번 방문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GPU) 브랜드 '지포스'의 국내 출시 25주년 기념 행사 참석과 더불어 31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서밋 특별연설 등을 위한 것이다.
황 CEO의 공식 방한은 지난 2010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스타크래프트2 글로벌 출시 기념 파티 이후 15년 만이다. 앞서 그는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개발자 행사(GTC)에서 "한국 국민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두 정말로 기뻐할 만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를 보면 모든 기업 하나하나가 깊은 친구이자 훌륭한 파트너"라고 밝히며 이번 방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치킨 회동'은 이날 19시 30분께 서울 삼성동 깐부치킨 삼성점에서 이뤄졌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나타는 황 CEO는 이 회장, 정 회장 등과 포옹 인사하며 친밀함을 들어냈다. 자리에 앉은 직후에는 일본의 유명 주류업체 산토리의 하쿠슈 증류소에서 만든 위스키을 꺼내 즉석해서 사인을 한 뒤 이 회장과 정 회장에게 선물했다.
이어 자사 직원에게 엔비디아가 만든 개초소형 AI 슈퍼컴퓨터 'DGX 스파크'의 케이스를 건네받아 이 회장과 정 회장에게 각각 선물했다. 해당 선물에는 '우리의 파트너십과 세계의 미래를 위해' 문구의 친필 서명이 적혀 있었다.
또한 DGX 스파크는 삼성전자의 고성능 저장 솔루션인 PM9E1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 회장은 "10여년 만에 집 밖에서 치맥을 한 것 같다"고 언급하며 옆 테이블에 앉은 일반인들과도 건배를 나누기도 했다. 특히 치킨집 손님들에게 정 회장과 이 회장이 반반씩 '골든벨'을 울리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황 CEO는 치맥 회동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치맥은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며 "나는 프라이드치킨과 맥주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깐부의 의미도 잘 알고 있다"며 "그래서 이 곳이 완벽한 장소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가게를 떠나면서 황 CEO는 "내일 여러분들에게 멋진 소식을 전하고 우리가 함께 진행 중인 여러 프로젝트를 공유하겠다"고 밝혀 APEC CEO 서밋의 특별연설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이 회장은 회동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관세도 타결되고 살아보니까 행복이라는 게 별거 없다"며 "좋은 사람들끼리 맛있는 거 먹고 한잔하는게 행복"이라고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삼성 HBM·스마트팩토리…현대차 로봇·SDV 등 협력 강화 '예고'
이번 회동을 계기로 업계에선 엔비디아와 삼성전자의 HBM 협력에 훈풍이 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실제 삼성전자는 이날 3분기 실적 발표를 진행하면서 HBM3E 12단 제품을 전 고객사를 대상으로 양산 판매 중이라고 공개했다.
그간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에 어려움을 겪으며 33년 만에 D램 1위 자리를 경쟁사 SK하이닉스에게 내줬다. 다만 이번 공급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반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공급망에 합류하면서 HBM 시장의 판도 변화는 불가피해졌다. 현재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약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0% 안팎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AMD·브로드컴에 이어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에도 HBM를 공급하면서 내년에 시장 점유율이 5%p 이상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 나온다.

HBM뿐만 아니라 스마트팩토리, 로보틱스 등 분야에서도 엔비디아와의 협력 가능성이 점쳐진다. 삼성전자는 최근 'AI 드리븐 컴퍼니'로의 도약을 선언하고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밖에도 삼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최근 합류한 엔비디아의 맞춤형 AI 인프라 생태계 'NV링크 퓨전'에 공식 참여한 만큼 향후 이와 관련된 협업 확대도 예상된다.
현대차 역시 AI를 기반으로 자율주행, 로보틱스 등 모빌리티 분야에서 엔비디아와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현대차는 올해 1월 엔비디아와 모빌리티 혁신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 파터너십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스마트팩토리, 로보틱스 등 미래차 전반에 걸친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것이 골자다.
또한 현대차는 엔비디아의 로보틱스 플랫폼 아이작(Isaac)과 생성형 AI 개발툴을 도입해 로봇 학습 및 스마트팩토리 자동화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회동과 APEC을 계기로 현대차와 엔비디아가 기존 협력을 구체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황 CEO는 오는 31일 경주로 이동해 APEC CEO 서밋 특별세션에 연사로 나선다. 그는 이날 삼성전자, SK, 현대차, 네이버 등 국내 주요 기업에 AI칩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고 공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과 정 회장도 같은 날 경주로 복귀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주재 만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권용삼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