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악은 듣는 것만으로도 감정과 기억을 소환한다. 한국인이라면 새로운 공간에 입장할 때 반사적으로 흥얼거리는 예능 ‘러브하우스’의 BGM, 스트리밍 사이트 ‘넷플릭스’ 아이콘을 클릭하면 들리는 짧고 굵은 효과음, 퇴근 후 저녁 식사를 차려 놓고 TV를 켜면 기다렸다는 듯 흘러나오는 익숙한 OST ‘치고 달려라’까지 수많은 소리가 우리를 자극하곤 한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OST 역시 마찬가지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내년 봄의 우승을 설계하던 드림즈 프런트의 치열한 사투를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최근 열도로 진출한 익숙한 선율에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을 테다. 한국과 일본, 두 국가는 야구를 주제로 한 드라마를 필두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일본판 스토브리그를 통해 동해 너머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야구인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에디터 이지인 사진 스튜디오S

#콘텐츠 정보
스토브리그 일본판
채널 일본 WOWOW, SBS, 독점 스트리밍 TVING
편성 2026.03.29. ~ 매주 일요일 오후 11:05
국내 공개일 2026.03.30. TVING 독점 스트리밍
회차 정보 8부작
제작 SBS 스튜디오S, 일본 NTT도코모 스튜디오&라이브
제작진 루토 토이치로, 요시타카 토시오
드라마 ‘스토브리그’(극본 이신화, 연출 정동윤)는 주연을 맡은 남궁민, 박은빈, 오정세의 압도적인 연기와 야구단의 이면을 현실감 넘치게 그려 낸 스토리로 주목받았다. 2019년 방영 당시에는 최고 시청률을 20%대까지 끌어 올리며 흥행하기도 했다. ‘스토브리그 일본판’은 한국의 스튜디오S와 일본의 NTT 도코모 스튜디오&라이브가 손을 잡고 진행한 한일 공동 제작 프로젝트로, 원작 IP의 강력한 힘을 밑바탕 삼아 일본 프로야구(이하 NPB) 환경에 맞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가수 겸 배우 가메나시 가즈야가 드림즈 단장 ‘사쿠라자키 준(원작 백승수)’ 역할을 맡았고, 드림즈를 해체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는 구단주 ‘네기시 이사미(원작 권경민)’는 일본의 대표 배우 노무라 만사이가 연기했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202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의 열기와 양국 프로야구 개막 시즌에 맞춘 3월 말에 동시 공개됐고, 비시즌의 공백을 견뎌온 야구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됐다.

#Editor’s Picks
두 ‘스토브리그’는 기본적인 서사 구조를 공유한다. 프로야구 비시즌을 배경으로 한, 성적이 부진한 구단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기 위한 프런트의 고군분투가 중심 내용이다. 팀 재건이라는 큰 틀과 주요 인물들의 역할 역시 크게 변형되지 않아, 리메이크작은 원작의 핵심 골격을 비교적 충실히 유지한다. 다만 16개의 회차로 구성돼 비교적 긴 호흡으로 작품을 끌고 갔던 원작과 다르게 절반인 8부작으로 제작됐을 뿐만 아니라, 양국의 문화와 리그의 시스템이 다른 만큼 자국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를 둔다.
① NPB를 아십니까?
두 작품의 차이는 서사를 전개하는 방식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드러난다. 러닝 타임이 절반으로 줄면서 복합적인 갈등 구조를 길게 끌고 가기보다는, 핵심적인 사건 위주로 서사를 재편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에피소드는 삭제되고, 새로운 설정이 추가됐다. 원작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졌던 용병 ‘로버트 길(이용우 분)’ 영입 스토리는 일본판에서 사라지고, 코치진 간의 파벌 갈등은 대사 몇 줄로 갈무리된다. 대신 신인드래프트에서 한국 국적의 선수 임민종(차준호 분)을 1순위로 지명하는 설정이 새롭게 등장한다. 임민종에게는 원작의 유민호(채종협 분)의 스토리가 추가로 주어져 다소 빈약할 수 있는 캐릭터의 서사가 채워졌다.
한국판에서 가장 화제가 된 에피소드는 연봉 계약을 하지 않겠다며 단장 백승수(남궁민 분)에게 무례하게 구는 포수 서영주(차엽 분)를 향해 운영팀장 이세영(박은빈 분)이 ‘선은 네가 넘었어!’라며 고함치는 장면일 테다. 원작에서 해당 대화가 이뤄진 곳은 룸 형식의 술집이었지만, 바다를 건너가며 장소가 평범한 치료실로 변했고, 대사도 크게 간소화돼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이다. 결과적으로 일본판은 갈등을 날카롭게 밀어붙이기보다는 조금 더 안정적인 서사를 선택한 듯 보인다.
작품 내에서 KBO와 NPB의 운영 방식 차이를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부분은 바로 신인드래프트 방식의 차이다. KBO는 모든 라운드에서 전년도 성적 역순에 따라 10개 구단이 1명씩 선수를 지명하는 구조지만, 일본은 1라운드에서 선수를 동시에 지명하고, 선수 한 명이 복수의 지명을 받았을 경우 추첨을 통해 한 개 팀에게 교섭권을 부여한다. 이하 2라운드부터는 KBO의 운영 방식과 동일하게 진행.
한편, 야구를 둘러싼 환경에서도 분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KBO리그는 고척 스카이돔을 제외하고는 모두 야외 구장에서 경기가 치러지지만, 일본은 돔구장 중심의 리그다. 이에 더해 NPB는 경기 장면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훈련 공간, 구단 사무실 등 일본 프로야구의 환경이 어떤지 엿볼 수 있는 콘텐츠도 다양하다. 종종 드론을 동원해 멋들어진 야구장의 전경을 안팎으로 보여 주는 것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
② 비슷한 듯 다른 우리
서사 구조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자칫 야구라는 요소를 제외했을 때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엄연히 다른 문화가 형성된 사회기에, 극 중에서 야구 외적으로도 서사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요소가 나타난다는 게 특징이다. 그리고 일본 특유의 영상미 역시 한국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만큼 이를 비교하는 재미도 작지 않다.
우선 일본판에서는 선수들이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입장을 은근히 드러내거나, 구단이 기자회견을 통해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한국판에서도 언론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요 갈등은 대체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개된다. 반면 일본판은 인물들이 공개적인 언론을 활용한 여론전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레거시 미디어가 여전히 큰 영향력을 지녔다는 점이 드러난다. 중요한 사안은 언론을 통해 공식화되고, 부정적인 이슈는 구단이나 선수에게 직접적인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디어는 단순히 이슈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매개체일 뿐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 싸움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상의 분위기는 어떨까. 일본판은 대체로 색감이 다운되고 대비가 진해 정제된 인상을 준다. 한국판이 비교적 선명한 화면으로 현실적인 분위기 속에서 인물 간의 대립을 빠르게 보여 준다면, 일본판은 호흡을 느리게 조절해 장면의 분위기를 조금 더 누르는 쪽에 가깝다. 거기다 같은 소재를 다룬 장면이더라도 한국판은 갈등이 바로 눈앞에서 부딪히는 느낌을 주는 반면, 일본판은 한 박자 느리게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슬로 모션을 활용하거나 특정 장면의 흐름을 길게 잡는 방식은 원작의 직선적인 전개보다 비교적 감각적인 연출이 가미된 기법이다. 이는 장면의 몰입감을 높이기도 하지만, 원작의 빠른 긴장감에 익숙한 시청자에게는 다소 느슨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특징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연출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배경음악은 한국판과 똑같은 요소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화면의 색감이나 편집 방식은 달라졌지만, 익숙한 음악이 등장하면서 원작 팬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이를 통해 시청자는 일본판이 원작과 완전히 분리된 작품이 아닌,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리메이크 작품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Editor Speaks
작품을 분석하고자 접근하다 보니 이미 아는 줄거리에 좀처럼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루해질 때쯤, 반가운 얼굴에 눈이 번쩍 뜨였다. 단번에 마니아층을 형성한 첫 번째 에피소드 ‘드래프트’의 중심인물 강두기(하도권 분)가 일본 드림즈 선수들을 위해 코치로 특별 출연한 것. 등장으로 모자라 투구까지 선보이는 모습은 기존 시청자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스토브리그’ 세계관이 국경을 넘어 확장되는 쾌감을 선사했다. 여기에 드래프트 1순위로 드림즈에 합류한 한국 국적 선수 임민종 역시 그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종종 그에게 “괜찮아요”, “나를 믿어”라며 우리말로 격려하는 드림즈 선수단이 뜻밖의 감동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일본판 ‘스토브리그’를 역수출로 들여온다는 기사를 본 당시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이미 원작이 국내에서 크게 성공했고, 결말을 아는 이야기를 누가 다시 소비할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우려를 낳은 지점은 세이버매트릭스를 활용하는 전력분석원을 채용하는 장면이나, 연봉 계약이 진행되는 장면 등에서 텍스트가 적지 않게 나온다는 점이었다. 구두 언어는 자막으로 표시될지언정, 시각적으로 타국의 언어가 나오는 순간 작품에서 튕겨 나가는 경험은 영 유쾌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기우에 불과했다. 화면 속 일본어를 모두 한국어로 치환한 CG 작업은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까닭이다. 국내 드라마를 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했던 기술적 일체감은 시청자가 작품에만 오롯이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드라마라는 예술 작품과 야구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양국이 깊이 있는 문화 교류까지 이뤄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양국 국민이 ‘스토브리그’를 매개로 상대의 문화를 이해함과 동시에, 야구라는 스포츠가 주는 본질적인 에너지를 느끼며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요소였다. 이러한 정서적 공감이 단순히 콘텐츠의 흥행을 넘어, 추후 실제 양국 프로야구 리그 간의 인적·물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는 실질적인 계기로 이어지길 바란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6년 182호 (6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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