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로당 한쪽에 모여 앉으면 자식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손주 사진을 꺼내 자랑하다가도 언제 다녀갔느냐는 물음에는 다들 말끝을 흐린다. 휴대폰 통화 목록을 열어보면 자식 이름은 한참 아래로 밀려 있다. 가족 대화방에도 손주 사진 몇 장이 올라올 뿐 대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주말마다 오늘은 연락이 올까 싶어 휴대폰을 곁에 두고 지낸다. 막상 벨이 울리면 반가운 마음보다 무슨 일이 생겼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자식이 보고 싶지 않은 부모는 없다. 그런데도 먼저 전화를 걸거나 찾아가겠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서운하다는 말 대신 다들 바쁘니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넘어간다. 누군가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고 농담처럼 말하면 다들 씁쓸하게 웃는다. 평생 자식만 보고 살아온 부모가 정작 자식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1.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연락을 참는다
자식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하루하루가 빠듯하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는 아이들 챙기느라 쉴 틈이 없다. 집값에 대출 이자에 학원비까지 걱정거리가 끝이 없다. 그런 형편을 뻔히 알기에 전화 한 통 거는 것도 조심스럽다. 혹시 회의 중이거나 운전 중이면 어쩌나 싶어 문자로 대신하는 날이 많다. 답장이 늦게 와도 바빠서 그렇겠거니 하고 넘긴다.
찾아가겠다는 말은 더더욱 꺼내기 어렵다. 부모가 온다고 하면 집을 치우고 장을 보고 시간을 비워야 한다. 쉬어야 할 주말을 부모 때문에 쓰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며느리나 사위 눈치까지 보이면 마음은 더 무거워진다. 명절이 아니면 먼저 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멀리서 잘 지낸다는 소식만 들어도 그걸로 됐다고 스스로를 달랜다.

2. 마주 앉아도 할 말이 없다
오랜만에 식탁에 마주 앉아도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밥은 잘 먹느냐, 회사는 괜찮으냐는 질문이 끝나면 금세 조용해진다. 자식이 하는 회사 이야기나 유행하는 이야기는 절반도 알아듣기 어렵다. 부모가 꺼내는 동네 소식이나 친척 이야기에는 자식이 건성으로 대답한다. 어느새 다들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텔레비전 쪽으로 눈을 돌린다. 손주들은 인사만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괜히 한마디 보탰다가 잔소리로 들릴까 봐 말을 아끼게 된다. 결혼이나 아이 문제처럼 민감한 이야기는 꺼냈다가 분위기만 싸해진다. 반가운 마음으로 만났는데 어색한 침묵만 안고 돌아오는 날이 늘어난다. 돌아오는 길에는 무슨 말을 더 했어야 했나 곱씹게 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전화로 짧게 안부만 묻는 편이 편하다고 느낀다. 만나는 횟수가 줄어드는 만큼 할 말은 더 줄어든다.

3. 빈손으로 가기 싫어 발길을 줄인다
은퇴 후 연금으로 생활하다 보면 씀씀이부터 줄이게 된다. 예전처럼 손주 용돈을 두둑하게 쥐여주거나 반찬거리를 바리바리 챙겨 가기 어렵다. 명절 선물 하나를 고르는 데도 가격표부터 들여다보게 된다.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 한다는 생각에 자식 집 앞에서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식당에서 계산을 자식이 하면 고마운 마음보다 민망함이 먼저 든다. 자식 집 냉장고에 넣어줄 반찬 하나 마땅치 않다는 사실이 새삼 아프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도움을 바라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마음이 쓰인다. 사정이 어렵다는 말은 입 밖에 내지 않고 늘 괜찮다는 말로 덮는다. 약값이나 병원비가 부담돼도 자식에게는 내색하지 않는다. 자식이 봉투를 내밀면 손사래부터 치고 본다. 당당한 부모로 남고 싶은 자존심이 만남 자체를 피하게 만든다. 해줄 게 없다는 생각이 자식과의 거리를 조금씩 벌려 놓는다.

자식이 쓸모없어서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너무 아끼기에 스스로 한 발 물러서는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건 거창한 효도가 아니라 부담 없이 오가는 밥 한 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