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 베어스가 두산 베어스로 바뀐다굽쇼?"

조회수 2023. 5. 11. 11: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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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베팬알백] ①두산 베어스와 반달가슴곰 시대 개막

1999년 두산 베어스 시대를 맞이해 탄생한 엠블럼 ⓒ두산베어스

[베팬알백_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는 오늘부터 카카오를 통해 ‘두산 베어스’ 시대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동안 두산 베어스 홈페이지 내에 있는 ‘두런두런’ 코너와 카카오의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 1982년부터 1998년까지 OB 베어스 시대 이야기를 연재한 바 있는데, [베팬알백] ‘시즌2’에서는 1999년부터 시작된 두산 베어스 시대의 기록과 역사, 그 발자취 속에 간직된 추억의 흔적들을 매주 하나씩 풀어갈 예정이다.

『프로야구 OB 베어스는 5일자로 팀 명칭을 ‘두산 베어스’로 변경했다. OB는 “8개 구단 중 OB만이 제품명을 사용하고 있어 다른 구단에 비해 그룹의 명칭 인지도가 뚜렷하게 낮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명칭 변경의 배경을 밝혔다.』 <경향신문 1999년 1월 6일자>

1999년 새해 시작부터 프로야구에 깜짝 놀랄 만한 뉴스가 터졌다. ‘OB 베어스’가 ‘두산 베어스’로 팀 이름이 바뀐다는 소식이었다.

OB 베어스는 KBO 원년 멤버. 17년간 익숙하고 정겨웠던 이름 ‘OB 베어스’가 사라진다고 하니 야구계나 팬들이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베팬알백] ‘시즌2’ 첫 이야기는 OB 베어스에서 두산 베어스로 바뀐 당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1999년 OB 베어스에서 두산 베어스로 구단 이름이 바뀐 뒤 김인식 감독 ⓒ두산베어스

◆ 어색했던 그 이름 ‘두산 베어스’

“처음엔 어색하긴 어색했지. OB 베어스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늘 듣던 이름이었고, 선수 코치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향수 어린 이름이었으니까. 모기업 자체는 똑같지만 아무래도 익숙하던 OB 베어스라는 팀 이름이 두산 베어스로 바뀌는 거라 감독인 나나 코치들, 선수들도 생소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지.”

OB 베어스(1982년~1998년)의 마지막 감독이자 두산 베어스(1999년~현재)의 첫 사령탑인 김인식 전 감독의 회상이다. 그는 1995시즌부터 2003년까지 무려 9시즌을 지휘해 아직도 베어스 역사상 최장수 감독으로 이름을 남겨놓고 있는 인물이다.

어찌 김 감독뿐이랴. OB 베어스에서 두산 베어스로 팀 이름이 바뀌는 역사의 변곡점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김 전 감독과 비슷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두산 베어스’라는 이름이 어색했던 팬들은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온라인(PC통신)과 오프라인에서 “OB 베어스 이름을 돌려달라”는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물론 두산 베어스 이전에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팀 간판이 바뀐 사례는 꽤 있었다. 인천을 연고로 탄생한 원년 멤버 삼미 슈퍼스타즈가 청보 핀토스(1985년 6월 29일)로 바뀌고, 청보 핀토스는 훗날 다시 태평양 돌핀스(1988년 3월 8일)와 현대 유니콘스(1996년 3월 11일)로 변경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서울을 프랜차이즈로 출발한 MBC 청룡도 LG 트윈스(1990년 3월 15일)로 바뀌었다. 이 팀들은 모두 매각과 인수 절차를 거쳐 주인이 달라진 것이었다.

그러나 두산 베어스는 이들과 성격이 다소 달랐다. 두산그룹이라는 모기업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매각이나 인수로 구단 소유주가 바뀌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베어스는 그때부터 다른 구단처럼 모기업의 간판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비슷한 사례를 찾자면 한화 이글스다. 1986시즌부터 KBO리그 제7구단으로 뛰어든 빙그레 이글스가 모기업인 한국화약그룹(한화그룹)을 전면에 내세워 한화 이글스(1993년 11월 1일)로 이름을 바꾼 바 있다. 하지만 OB 베어스에서 두산 베어스로 간판이 바뀌는 것이 좀 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 건 아무래도 남다른 역사성과 상징성이 있는 팀이었기 때문이리라.

OB 베어스 시절의 심벌마크와 엠블럼 ⓒ두산베어스

베어스가 어떤 팀인가. 1982년 1월 15일 원년 6개 구단 중 가장 먼저 창단식을 열어 KBO 최초의 팀으로 기록된 유서 깊은 구단이다. 게다가 최초 어린이 회원 모집(1982년), 최초 한국시리즈 우승(1982년), 최초 정규시즌 MVP(1982년 박철순)와 최초 신인왕(1983년 박종훈) 배출, 최초 2군 전용 훈련장 개장(1983년), 최초 메이저리그 구단(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과 자매결연(1987년) 등등 갖가지 최초의 기록을 써가면서 초창기 프로야구 발전을 선도해온 구단이었다.

OB 베어스에 대한 진한 향수와 추억을 간직한 팬일수록 ‘OB 베어스’라는 이름이 사라지는 것에 정서적 거부감과 상실감이 컸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두산 베어스는 엄연히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KBO 원년부터 주인이 바뀌지 않고 역사를 이어온 3개 팀 중 한 팀이라는 것이었다.

◆ 왜 OB 베어스에서 두산 베어스로 바꿨나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하는 두산 베어스 선수단. 외국인타자 타이론 우즈(33번)와 두목곰 김동주(18번) 등이 보인다.

[베팬알백] OB 베어스 시대 이야기 첫 장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두산그룹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6개 구단 중 유일하게 그룹명을 쓰지 않은 구단이었다. 대신 자사 맥주 상품 이름인 ‘OB’를 간판으로 달았다. ‘OB맥주’는 그 시절 두산그룹의 주력 계열사. ‘동양맥주’로 시작했지만 ‘OB(Oriental Brewery)맥주’라는 이름으로 바꿔 한국의 맥주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 부분이 더 독특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1997년 11월, 대한민국이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이른바 ‘IMF 사태’가 터졌다. 온 나라가 패닉상태에 빠졌다. 금융 위기 속에 외국자본은 급격히 유출됐고, 충격에 대처할 겨를도 없이 단기간에 기업들의 파산과 부도, 국민들의 실직 사태가 이어졌다.

두산그룹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많은 계열사를 정리하고 사업 구조 개편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OB맥주 지분도 줄여나갔다. 훗날(2001년) 벨기에 맥주회사인 인터브루에 지분을 완전히 매각했지만, 두산그룹은 1998년부터 “이 기회에 프로야구단도 그룹명을 전면에 내세우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1998년 8월쯤으로 기억해요. 두산그룹 창립기념일(8월 1일) 즈음이었는데 그룹에서 ‘두산 베어스’로 바꾼다는 결정을 해서 구단으로 내려왔어요. 그때부터 구단 내부적으로 CI(Corporate Identity·기업 이미지 통합) 변경 작업 등등 두산 베어스 시대를 준비하기 시작했죠.”

전 두산 홍보팀 김태준 팀장은 당시 기억을 더듬어갔다.

“그런데 1999년 1월 초에 두산 베어스로 팀명이 바뀐다는 사실이 공식 발표되니까 팬들 반발이 상당히 컸어요. OB 베어스 골수팬이 워낙 많았잖아요. 처음엔 팬들이 친근하고 정겨운 OB 베어스라는 이름이 사라지는 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나 봐요. 저희 구단 직원들도 어색했는데 팬들은 왜 안 그렇겠습니까.”

앞서 설명했지만 실제로 당시 PC통신을 통해 항의하는 팬들이 줄을 이었다. 다음은 당시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기사 한 토막.

『프로야구 두산의 이운호 홍보과장. 그는 요즘 PC통신에 접속하기가 겁이 난단다. “OB 베어스 이름 돌리도”라는 네티즌의 목소리가 커서다. 다음은 그 사례. <밝음이>는 자신을 ‘오비를 다시 찾고 싶은 영원한 오비팬’이라고 소개한다. <최강OB>는 ‘OB OB OB~ 승리의 이름! 신나는 응원가 리듬이건만 상당히 우울하게 들리는군요’라고 자탄한다. 심지어 OB 베어스 회복을 위한 서명과 구단명 변경을 반대하는 시위도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졌다. <동아일보 1999년 1월 6일자>

◆ 곰 캐릭터도 ‘반달가슴곰’으로

두산 베어스 시대가 시작된 뒤 등장한 강인한 모습과 귀여운 모습의 곰 캐릭터 ⓒ두산베어스📷

팀명이 두산 베어스로 변경되면서 바꿔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각종 명의 변경뿐만 아니라 캐릭터 변경, 디자인 변경, 구단 버스 도색 변경 등등 큰일부터 사소한 일까지 1999시즌을 앞두고 후속 개편작업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곰 마스코트 이미지의 변경. 1982년부터 이어온 기존의 귀여운 곰에서 탈피해 천연기념물 제329호인 반달곰을 채택했다. 곰의 용맹성과 강인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엠블럼은 반달곰의 가슴 이미지에서 따와 승리를 뜻하는 V자로 상징화했다.

“돌아가신 강건구 사장님이 ‘강한 이미지의 곰을 만들자’고 하셔서 캐릭터 이미지도 완전히 바뀌었어요. 사장님이 ‘기존의 OB 베어스 곰은 너무 순하고 예쁘다. 어떻게 보면 개 같기도 하다’면서 ‘좀 더 곰 이미지를 확실하게 살리자. 독한 곰, 센 곰으로 만들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강한 이미지로 만들다 보니까 처음엔 어린이들이 마스코트 인형을 보면 무서워하기도 했어요.”

김태준 전 두산 홍보팀장의 이야기다.

베어스의 상징색에도 변화가 있었다. 1982년 원년부터 채택한 ‘페르시안 블루(남색)’는 베어스의 기본 색상. OB 베어스 시대에는 남색과 함께 빨간색, 흰색의 세 가지 색이 어우러졌다. OB 베어스 모자 역시 삼색 모자로 빅히트를 쳤다. 그런데 두산 베어스로 바뀌면서 빨간색 대신 노란색을 채택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철웅이 시대’에 다시 빨간색이 돌아왔지만, 노란색이 두산의 상징색 일부였던 시대가 있었다.

두산 베어스 김정균 구장관리팀장은 “OB 베어스가 두산 베어스로 바뀌니까 항간에는 ‘야구단이 팔리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고, 구단 직원들도 삼삼오오 모이면 베어스의 앞날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한다”면서 “두산 베어스로 이름이 정해지고 나서는 ‘두산’을 한글로 쓸 것이냐 영어로 ‘DOOSAN’이라고 쓸 것이냐 등등 많은 얘기가 오갔다”며 지난날을 추억했다.

김 팀장은 이어 바뀐 마스코트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강한 인상의 털복숭이 곰 마스코트를 두고 일부에서는 ‘깡패곰’, ‘조폭곰’이라는 말도 나왔다”면서 “그만큼 캐릭터가 강했다. 그래서 나중엔 귀여운 아기곰을 만들었다”며 뒷얘기를 전했다.

◆ 성적 좋아지자 두산 베어스도 빠르게 안착

두산 베어스 깃발과 막대풍선 응원봉을 흔들며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팬들 ⓒ두산베어스📷

두산 베어스로 팀명이 바뀐 뒤 이어진 팬들의 반발은 어쩌면 익숙함 대신 어색함에서 오는 자연스런 반응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반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산 베어스’라는 이름과 이미지가 빠르게 팬들 사이에 흡수되고 안착했다.

가장 큰 이유는 성적이었다. 두 차례 우승이 있었지만 암흑기가 길었던 OB 베어스 시절과는 달리 두산 베어스는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고, 강팀의 이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재밌는 일화도 있다. 강건구 사장은 1994년 OB 베어스 단장으로 부임한 뒤 1998년 8월에 OB 베어스 사장으로 승격됐다. 말없이 기다릴 줄 아는 ‘외유내강(外柔內剛)’ 형의 인물. 강 사장은 서두르기보다는 “우리는 한 단계씩 올라가자. 올해부터 4-3-2-1로 하나씩 올라가 보자”고 했다.

그런데 OB 베어스 시대의 마지막 시즌인 1998년 페넌트레이스 막판부터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베어스는 9월 초만 하더라도 꼴찌였으나 두 차례 4연승을 올려 탈꼴찌에 성공하더니, 시즌 마지막 8경기에서 8연승 올리는 기적의 레이스를 펼쳤다. 그러면서 가을잔치 마지막 티켓이 걸린 4위 자리를 확보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두산 베어스 시대로 접어든 1999년 3위에 올랐다. 그리고 2000년 2위(한국시리즈 준우승), 2001년 1위(한국시리즈 우승)가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강 사장의 말처럼 매년 한 계단씩 신분이 상승해 우승까지 이르렀다.

결국 ‘만병통치약’은 승리였다. 김태준 전 홍보팀장은 “두산 베어스로 이름이 바뀐 뒤 팀 성적이 좋다 보니 팬들의 거부감도 줄어들었다”면서 “오히려 힘 있는 야구, 뚝심의 야구로 두산 베어스가 팬들에게 빠르게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OB 베어스’를 기억하는 팬들은 여전히 ‘OB 시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있다. 그러나 두산 베어스는 OB 베어스가 만들어내지 못한 새로운 황금기를 열었고 결이 다른 스토리를 생산해내고 있다.

‘믿음의 야구’로 대표되는 김인식 감독 시대에는 ‘우동수(타이론 우즈-김동주-심정수) 트리오’의 파워와 장타력이 돋보였다. 김경문 감독 시절에는 선 굵은 야구와 함께 이종욱 고영민 오재원 등을 앞세운 ‘육상부’가 위력을 발휘했다. 김태형 감독 시대에는 ‘판타스틱4’로 대표되는 탄탄한 마운드와 파괴력 넘치는 타선의 조화 속에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대역사를 썼다. 2023년부터는 '국민타자' 이승엽 감독 시대가 개막해 팬들에게 새로운 기대감을 심어주고 있다

[베팬알백]은 앞으로 두산 베어스 시대의 기록과 기억, 환희와 눈물로 점철된 흥미진진한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나갈 예정이다.

두산 베어스 선수단과 반달가슴곰 마스코트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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