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집 살 때 FIRE 택한 30대의 최후

“나는 남들보다 빨리 자유를 얻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월세도 감당이 안 돼요.”
올해 38세인 박준영(가명) 씨는 5년 전, FIRE족(파이어족·조기 은퇴자) 대열에 올랐다. 당시 직장에서 연봉 7천만 원을 받던 그는 부동산 대신 ETF, 배당주, 리츠에 몰입하며 “집 사느니 은퇴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실제로 그는 2억 원을 모은 뒤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FIRE 생활을 시작했다. 카페에서 책을 읽고, 유튜브를 만들고, 장을 직접 보고, 아침마다 산책을 했다.
“처음엔 진짜 천국 같았죠.”
하지만 그 천국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금리, 물가, 그리고 예기치 않은 진공 상태
2022년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과 고물가는 그의 FIRE 계산을 빠르게 무너뜨렸다. 계획했던 연 4% 수익률은커녕, 주식은 하락했고 리츠 배당은 반토막이 났다. 한 달에 80만 원이면 살 수 있다던 월세도 지금은 11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자산은 안 느는데, 돈은 계속 빠져나가는 거예요. 심장이 철렁하죠.”
게다가 생각보다 일상의 ‘빈 공간’이 컸다. 친구들은 여전히 출근 중이고, 가족은 은퇴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전 10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일이 더 이상 여유가 아닌 '공허'가 되었다. “내가 사회에서 사라진 느낌이 들었어요. 무언가 쓸모 있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죄책감이 몰려왔죠.”
다시 일하려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는 결국 작년 말,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력서 한 줄이 문제였다. “‘공백기 4년’이라는 말이 무섭더라고요.” 재취업은 녹록지 않았다. 예전 동료들은 팀장이 되었고, 박 씨는 ‘왜 다시 일하려 하느냐’는 질문부터 받아야 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건 인근 도서관에서 주 3일 일하는 아르바이트였다. 시간당 1만 2천 원. 고작해야 월 50만 원 정도의 수입이지만, 그는 “그나마 덜 외롭다”라고 말했다.
FIRE,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그때는 지금처럼 금리가 오를 줄 몰랐다. 세금이나 건강보험료가 이렇게 클 줄도 몰랐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월 100이면 된다’는 수많은 FIRE 블로그 글들을 믿었지만, 실제 삶은 숫자만으로 계산되지 않았다.
“사실 가장 외로웠던 건, 내 삶을 함께 설계해 줄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집을 안 사고 자유를 택했지만, 지금은 집이 주는 안전함이 그립기도 해요.”
현재 그는 ‘세미파이어’로 삶의 방향을 수정하고 있다. 주 3일 아르바이트 외에도 온라인에서 중고책 판매, 블로그 글쓰기, 단기 영상편집 등으로 수입을 다변화하는 중이다. “이제는 FIRE가 끝이 아니라, 하나의 전환점이라는 걸 알았어요.”
당신이라면,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나요?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조기 은퇴’. 하지만 그 선택 뒤엔 냉정한 숫자뿐 아니라, 감정과 관계,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이 따라온다. 박 씨는 말한다. “그땐 '남들보다 먼저'만 생각했지, '남들과 다르게' 사는 건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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