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정정수의 익스테리어 프로포즈, ‘빌라 데스테’와 ‘알함브라궁전’의 정원

빌라 데스테의 분수. 솟아오르는 분수는 떨어지며 모인 물을 폰드pond에 가두고, 폰드를 넘치는 물은 작은 폭포가 되어 흘러내린다. 이 작은 폭포는 위아래의 폰드를 연결시키고 있다. 마치 바닷가 바위 위로 파도가 뒤덮였다가 바위 사이사이로 흘러내리는 작은 폭포들처럼 디자인되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전원의 삶을 추구하며 전원주택을 선택한 사람들은 각자가 꿈꾸던 크고 작은 정원을 전원 속에 갖추게 된다. 내가 갖게 된 꿈의 정원을 좀 더 수준 높게 익스테리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꿈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유명 서양화가이자 조경가인 정정수 JJPLAN 대표의 글을 연재한다. 미술과 건축(조경)을 접목해 새로운 지평을 연 그의 깊은 식견과 경험은 독자 여러분의 정원을 더욱 풍성하고 품격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진행 이형우 기자│글 자료 정정수(ANC 예술컨텐츠연구원 원장)
익스테리어의 결정체 ‘빌라 데스테’
익스테리어Exterior를 연재하면서 빌라이지만 식물원보다 높은 차원으로 개방하고 있는 ‘빌라 데스테Villa d’Este’ 정원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상에 만들어져 있는 모든 조경공간들은 면적과 크기가 서로 달라서 크게는 식물원도 있고, 작게는 주택의 정원도 있다.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시계에 비교해 본다면, 벽시계와 손목시계는 규모가 매우 다르다. 하지만 손목시계가 벽시계에 비해 크기가 작다고 해서 값이 저렴하거나 가치가 낮은 게 아니다. 오히려 더 비싸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떠한 형태로라도 기능이 있는 물건은 크기가 작다고 해서 부속품의 일부가 생략될 수 없으며, 작든 크든 있을 건 다 있어야 제 기능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화로움을 이루게 된다. 벽시계와 손목시계를 비교하는 것처럼 조경공간이 크다고 해서 벽시계를 큼직하게 만들듯 빈 공간을 남겨서는 안 된다. 커다란 벽시계나 조경공간도 손목시계를 만들듯 디테일하게 완성한다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익스테리어(벽시계)가 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커다란 벽시계가 작은 손목시계처럼 디테일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얼핏 상상이 되지 않는 추상적인 이야기 같겠지만 이탈리아의 로마 인근 티볼리Tivoli에 있는, 16세기 르네상스 때 건축된 ‘빌라 데스테를 본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빌라 데스테’의 수공간은 ‘물의 정원’이라는 이름으로도 손색이 없다. 손목시계의 디테일한 기술을 벽시계에 적용한 예로 비견해 볼 수도 있다.
‘Villa’라는 단어는 고대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된 말로 장원莊園을 말한다. 대도시를 벗어나 지방에 있는 대형 주택이나 그에 딸린 농원을 아울러서 일컫는 말로서 프랑스의 샤토chateau와도 비슷하다. (두산백과사전)
여기서 잠깐! 빌라Villa는 우리나라에서처럼 4층짜리 연립주택에 붙여지는 이름이 아니라, 건축과 정원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있는 부호나 영주 등이 땅을 소유하는 형태에 붙여지는 명칭이다. 우리나라의 빌라에 주소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친분 있는 이탈리아인에게 한국의 빌라 주소를 전해줬다고 가정해 보자. 주소를 보내주면서 한국에 올 때 한번 찾아오라고 했다면, ‘빌라 데스테’를 알고 있는 그는 한국 친구의 재산 정도와 사회적 지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현실감에 대해 심히 우려가 된다.
다른 조경공간에 비해 일반적이지 않고 특별한 디자인 감각을 갖고 완성된 ‘빌라 데스테’의 익스테리어는 가파른 지형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했기에 가능한 디자인이었다. 이렇게 자연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자기다움을 극복하게 되면서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현장을 내 아이디어에 맞추려는 생각을 없애 버리고 현장 지형의 조건에 내가 맞출 수 있는 디자이너라면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크다고 헛되지 않고 작다고 허술치 않았을 때 벽시계도 손목시계도 모든 숨결이 디테일에 깃들게 된다.
우리나라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에 분수보다는 폭포를 선호한다. 반면에 서양은 자연을 지배하려는 사고로부터 만들어진, 물의 순리를 역행하는 분수를 수공간에 주로 배치한다. ‘빌라 데스테’는 벽천과 분수를 디자인해 분수와 폭포가 한 장소에서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동서양 문화의 만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 당시에는 지구를 둘로 나눠 놓은 동양 문화의 개념보다는 르네상스가 지향하는 문화를 표현한 것이겠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이상한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들에게는 이루고자 하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져 있으면 손(모든 창작)으로 그것들을 쉽게 표현하며 생각을 구현해 낸다. 몸과 정신이 그곳을 향해 있으면 저절로 나타내는 능력자들의 존재 덕분에 인류가 발전하고 있다.
‘빌라 데스테’는 박물관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는데, 특히 분수로 유명하다. 이폴리토 2세가 건축했으며, 르네상스 문화의 특징을 종합적인 모습으로 가장 세련되게 보여 주는 곳이다. 분수와 화려하게 장식된 연못 등을 비롯해 정원 안에 설치된 건축 요소들과 정원 자체의 독창적인 설계는 16세기 이탈리아 정원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유럽 정원의 발전을 이끈 초기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유네스코 유산목록 참조)
‘빌라 데스테’를 소개하는 문헌들을 보면서 필자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쉽게 드러나 보이는 분수에 집중할 수도 있으나, 폭포인 듯 아닌 듯 존재하며 연결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폭포들에 주목하면 ‘빌라 데스테’의 가치를 좀 더 깊게 이해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 돌, 식물은 조경의 기본 소재이다. 익스테리어의 기본 소재인 돌을 이용해 디테일한 벽천을 만들었다.‘100의 분수’가 작게 솟아오르고 흘러내리며 만들어내는 주변의 습기가 이끼류를 포함한 수변식물들에게 좋은 생태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돌을 이용해 폰드를 만들어 물을 가두고 식물이 함께하는 돌과 물, 식물 세 가지로 이루어진 환경은 서로 최고의 연결점이 되어 ‘빌라 데스테’라는 환상의 합을 만들었다.
수공간이 만들어내는 이상적인 환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의 생태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정원에 존재하는 모든 익스테리어에는 식물이 함께하므로 조화로움이 연출된다. 눈에 보이는 수생식물과 수변식물들이 물을 정화하는 능력은 30% 정도이다. 나머지 정화는 미생물들의 몫인 만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비로소 자연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의 수공간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를 선호한다. 이렇게 떨어지는 폭포 물에게 다시 오르기를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과 같아서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선택해 그렇게 흐르기 때문이다.
무질서하게 놓은 듯 축조된 현무암 위로 흐르는 폭포의 디자인은 인위적이되 작위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진은 2007년 작업한 래미안○○아파트 ‘초심원’으로 인도에서 개최된 2008 IFLA(세계조경가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건설업체 최초로 ‘굿디자인’에 선정됐고, 환경디자인부문 우수상, 에코팰리스상을 수상하면서 국내외 상을 쓸어 담았다.
문화적 사치
“사치를 하라면 문화적 사치를 하겠다”며 구체적인 예를 들던 선배님 생각이 난다. 우리가 정원이 딸린 집을 갖고 있다 해도 대부분은 넉넉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익스테리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시공은 쉽고 가격은 저렴한 것을 찾아 발품을 파는 이들도 많다. 이렇게 저렴한 것을 찾아 쉽게 결정해서는 후일 천덕꾸러기가 돼서 두고두고 후회하는 걱정거리로 남게 된다. 발품보다는 문화적 소양을 기르기 위한 머리품에 관심을 기울이기를 강추한다.
건축이나 조경을 이어주는 익스테리어도 디자인이 깊숙이 스며있어 맨 아래부터 저 높은 데까지 디자인의 격차가 천차만별이다. 백화점에는 명품보다도 더 위에 있는 명품이 있어서 이름조차 생소한 브랜드가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이렇게 각별한 차이 때문에 내가 선택한 모든 결정이 지금의 내 것을 만들었다는 걸 알기에 사람들은 남들과 비교해서 더 가치 있는 것을 갖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한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이러한 명품이 반드시 예산을 많이 사용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피카소의 작품 값이 비싼 이유가 비싼 재료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조경도 익스테리어도 마찬가지다. 물질적 가치가 곧 익스테리어의 가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올바른 예술적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즉, 예술적 가치가 물질적 가치 위에 있는 것이다. 점심식사를 해야 할 때 가격이 저렴한 분식집에서 할 것인가 아니면 좀 더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할 것인가는 주머니 사정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그러나 식사는 하루 세 끼 기회가 주어지지만 익스테리어는 한번 자리잡으면 수십 년을 나와 내 집이 운명을 같이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많은 앎 속에서 선택하는 심사숙고가 필요한 것이다.
조경과 익스테리어 그리고 건축이 나란히 같은 장소에 있다고 해서 같이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어떻게 같이 있느냐에 따라 함께 있다는 느낌이 없을 때도 많은데 깍지 낀 손처럼 관계가 되도록 시공 과정에서 연결된다면 이 연결고리를 통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빌라 데스테’는 수공간 위주로 형성된 익스테리어의 본보기로 더없이 훌륭하다. 수공간에 반드시 필요한 벽천의 개념을 뒤집었고 현대에도 각광을 받을 디테일한 익스테리어를 보여주고 있다. 존재의 가치는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이 함께 조화로울 때 조용히 빛나게 된다.
건축과 조경 모두를 연결시켜 주는 익스테리어에 주목해야 한다. 필자 사진 속의 손동작은 만남이란 깍지 낀 손가락처럼 연결고리가 끼워져 있어야 바람직한 생태적 관계가 형성된다는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익스테리어의 절정 ‘알함브라궁전’
필자가 알함브라궁전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기타를 배우면서 수준이 좀 높아졌을 때였다. 미술대학을 다닐 때니까 조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때라서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곡 제목으로만 받아들이고 열심히 곡을 익혔었다. 후일 조경과 관련된 작업으로 시야를 넓히기 시작하면서 알함브라궁전은 나를 깊은 감동에 빠져들게 했다. (타래가의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을 기타 연주로 듣기 강추)
스페인의 그라나다 지방에 있는 알함브라궁전은 중세에 스페인을 지배했던 이슬람의 나스르 왕조가 14세기에 완성한 건축물이다.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진홍빛’이란 뜻이라고 한다. 바닥과 기둥, 천장 등을 수놓은 아랍풍의 기하학적 무늬와 태양빛에 따라 변하는 성벽의 오묘한 빛깔로 각광을 받고 있다. 15세기 이슬람 왕조가 스페인을 떠난 후 스페인 왕가의 별궁으로 쓰였다. (네이버 참조)
알함브라궁전 ‘헤네랄리페 정원’의 익스테리어는 건축과 수공간 그리고 식물들과의 연결이 긴밀하다는 것을 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좌우에서 솟아오른 분수는 가운데 수경을 향한다. 물줄기는 아치의 곡선을 그리며 주변 건축과 수공간의 익스테리어를 한 몸처럼 연결시키고 있다.
알함브라궁전에서 익스테리어된 장소 중 가장 아름다운 ‘헤네랄리페 정원’의 부분이다. 솟아오르는 물줄기로 만들어진 분수가 일반적인 것에 비해, 물방울로 연결된 앙증스런 곡선은 감상하는 이들에게 이야기를 걸어오고 있다. 수면 위로 떨어져 튕겨진 모습에서는 묘하게도 촛불을 불멍하며 볼 수 있는 것 같은 서정성도 느끼게 한다.
건축가는 정원을 연결시키고 싶어 한 것 같다. 정원에 대해 회랑의 기둥 사이로 건축을 열게 하고 식물과 건축이 하나가 된 듯한 자연스러움으로 디자인된 것이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과 식물 그리고 하늘을 수공간이라는 그릇에 담아낸다.
우리는 인위적으로라도 조경을 통해서 자연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현실에서 구현하고 있지만, 조경의 본질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멋진 계획을 실행하려 해도 규정이라는 벽에 부딪칠 때가 많다. 그런 맹점은 있지만 다행히도 현대인에게는 자연의 대리물인 조경이라는 것이 만들어졌고, 사회 시스템도 이러한 조경의 역할을 인정해 법과 제도로 조경공간을 만들도록 나름 규정해 놓고 있다.
건축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는 준공검사라는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데 기본적인 조경의 조건을 충족해야 준공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준공기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조경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준공검사 기준에 적합한 판정을 받은 후에는 그렇게 식재된 나무마저 없애고 그 공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규정이란, 규정 이하로 잘못되는 공사를 규정이라는 선까지라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지만, 규정 이상으로 가치 있는 공사를 시도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높은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규정이라는 잣대로 끌어내리기도 한다.
건축가들은 조경적 요소에 소극적이고, 조경가들은 건축적 요소에 소극적이다. 물론 전공을 넘어서는 간극이 원인이겠으나 본고에서 제시한 ‘알함브라궁전’이나 ‘빌라 데스테’와 같이 조경과 건축을 이어주는 능력 있는 클라이언트를 만나 손가락을 깍지 끼운 손처럼 적극적으로 연결된 관계를 갖는 작품이 탄생되기를 기대해본다.
아래 그림의 우측 부분을 확대한 것으로 작은 리조트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그렸다. 작은 기도실, 바위가 드문드문 있는 백사장, 가산 위 가제보, 가제보 있는 섬으로 건너는 다리, 공연장, 파고라 등이 설명돼 있다.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숨은그림 찾기도 재미있을 것이다.
시공이 되지 못하고 기획단계에서 끝난 스케치로 2017년 작업하다 쉬기 위해 타히보차 한 잔을 마시며 배경으로 찍었다. 다구에 비교해서 보면 그림이 그다지 크지 않은 걸 알 수 있다. 왼쪽 붉은 화살표 위치의 GATE는 따로 그렸다.
게이트는 사람 통행과 차량 통행으로 구분됐고, 관리실은 큰 창으로 밖의 동세를 파악할 수 있으며, 출입문은 안팎으로 통하게 했다. 자연스러운 예술적인 관계는 조화로움을 위해 서로 양보와 존중을 갖는 성향으로부터 만들어지며, 그 가치의 레벨이 형성된다. 두 개 이상의 관계되는 것이 만나면 물리적으로 닫혀 있다 해도 그 경계는 시각적으로 열려 있어야 연결이라는 관계가 성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