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에 떠밀린 사선"... 한국 중령의 광기가 부른 일병 北 납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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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강원도 DMZ 인근 최전방 부대에서 발생한 이른바 유운학 중령 일병 강제 납치 사건은 군 지휘권 남용이 초래한 참혹한 비극이자, 시대적 배경 속에 묻혔던 안보 잔혹사다.

지휘관의 권총 협박 앞에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강제로 북으로 끌려가야 했던 한 병사의 억울한 사연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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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1977년, 정기적인 지휘 점검을 위해 군용 차량에 탑승한 유운학 중령과 운전병, 그리고 오봉주 일병 세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민감한 DMZ 접경 지역에 들어서자 유 중령은 돌연 태변하여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는 운전병에게 북한 방향으로 차를 몰라는 황당하고도 반역적인 지시를 내렸으나, 투철한 군인 정신을 가진 운전병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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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거부는 곧바로 비극으로 이어졌다.

유 중령은 주저 없이 운전병을 사살했고, 차 안은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이 됐다.

유 중령은 피 흘리며 쓰러진 운전병을 뒤로하고, 공포에 질린 오봉주 일병에게 총구를 돌렸다.

네가 운전해서 북으로 간다는 강압 앞에 오 일병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직후, 그는 생존을 위해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북쪽으로 향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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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직후, 군당국은 이를 장교와 병사의 동반 월북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냉전이 극에 달했던 군사정권 시절, 지휘관에 의해 병사가 강제로 납치됐다는 치욕적인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단순 월북으로 치부하는 것이 조직 보위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오 일병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월북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낙인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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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주 일병의 비극은 본인에게서 끝나지 않았다.

연좌제가 실존하던 시기, 월북자 가족이라는 꼬리표는 남겨진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신원조회 불이익, 사회적 냉대, 취업 제한 등 유가족들은 오 일병이 강제로 끌려갔다는 진실을 외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숨죽여 살아야 했다.

이는 국가가 보호하지 못한 장병과 그 가족에게 가한 명백한 2차 가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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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학 중령의 월북 동기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개인 비리 은폐, 이념적 전향, 혹은 돌발적인 정신 이상 등 다양한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인 지휘권 남용과 장병 인권 문제에 경종을 울린다고 지적한다.

억울하게 희생된 오 일병의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은 우리 군이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